약이라는 물건은 이상하다. 손톱만 한 알약 한 알의 값이, 어떤 것은 몇십 원이고 어떤 것은 몇만 원이다. 똑같이 생긴 흰색 알약인데도 그렇다. 그 값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 산업의 사슬 전체가 보인다. 이번 여행은 그 알약의 이력서를 거꾸로 읽는 일이다. 약국 봉투에서 시작해, 그 약이 태어난 자리까지 거슬러 오른다.
그리고 이 사슬에는, 앞서 반도체에서 봤던 그림이 거의 그대로 한 번 더 나타난다. 만드는 일은 세계 최고인데, 무엇을 만들지를 정하는 일은 남의 손에 있다는 그림 말이다.
알약 한 알의 이력서
약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대략 여섯 개의 고리를 지난다. 맨 앞은 원료의약품, 그러니까 약효를 내는 화학물질이나 단백질 그 자체를 만드는 자리다. 그다음이 신약개발, 어떤 물질이 어떤 병에 듣는지를 찾아내는, 사슬에서 가장 길고 가장 많이 실패하는 고리다. 후보 하나를 찾으면 임상시험으로 넘어간다. 사람에게 안전한지, 정말 듣는지를 몇 해에 걸쳐 확인하는 관문이다. 이 문을 통과한 물질만이 제조 단계로 간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 내는 자리다. 그 뒤로 특허가 풀린 약을 복제하는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이 있고, 마지막으로 병원과 약국까지 실어 나르는 유통이 있다.
돈은 이 여섯 고리에 고르게 흩어지지 않는다. 한쪽으로 심하게 쏠린다. 가장 두껍게 남는 곳은 신약의 특허다. 세상에 없던 약을 처음 만들어 낸 회사는, 이십 년 안팎의 특허 기간 동안 그 약의 값을 사실상 혼자 부른다. 병을 앓는 사람에게는 대체할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약들의 정체다. 반대로 특허가 풀린 뒤 남들이 똑같이 만들어 파는 제네릭은, 여러 회사가 같은 물건을 놓고 값만 깎는 자리라 남는 게 얇다. 유통은 더 얇다. 남의 약을 실어 나를 뿐이니, 값을 부를 여지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여섯 고리 중 어디에 서 있을까. 답을 먼저 말하면 이렇다. 우리는 만드는 고리, 곧 제조와 복제에서 세계 정상에 있고, 값을 처음 부르는 고리인 원천 신약에서는 아직 문 앞에 서 있다. 이 어긋남이 이 산업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먼저, 약의 지도 한 장
사슬을 따라가기 전에, 이 세계가 어떻게 나뉘는지부터 간단히 짚어 두자. 몇 개의 단어만 알면 뒤의 이야기가 훨씬 쉬워진다.
가장 큰 갈림길은 약을 만드는 방식이다. 하나는 화학 공장에서 분자를 조립해 만드는 합성의약품이다. 우리가 흔히 삼키는 작은 알약 대부분이 여기 속한다. 고혈압약도 진통제도 그렇다. 다른 하나는 살아 있는 세포를 배양해 만드는 바이오의약품이다. 항체 치료제, 백신, 인슐린처럼 분자가 크고 복잡한 약들이다. 합성약이 레고 조립이라면, 바이오약은 미생물을 키워 단백질을 받아 내는 농사에 가깝다. 만드는 난이도가 다르니, 돈이 남는 방식도 다르다.
다음은 그 약이 새것이냐 베낀 것이냐다. 세상에 없던 약을 처음 만든 것이 신약이다. 특허라는 울타리로 한동안 혼자 팔 수 있어 값이 비싸다. 그 특허가 풀리면 남들이 똑같이 만들어 싸게 파는데, 합성약을 베낀 것을 제네릭(복제약), 바이오약을 비슷하게 만든 것을 바이오시밀러라 부른다. 다만 둘은 난이도가 다르다. 합성약 복제는 화학식만 알면 여럿이 만들 수 있어 남는 게 얇지만, 바이오약은 살아 있는 세포로 만들어 완전히 똑같이 베끼기가 어려워, 그 복제조차 세계에 몇 회사만 할 수 있다. 그 사이에, 기존 약의 제형이나 용법을 조금 개선한 개량신약이 있다.
약을 누가 만드느냐도 갈린다. 자기 약을 자기가 만드는 회사가 있고, 자기 약 없이 남의 약을 대신 만들어 주는 공장만 하는 회사가 있다. 뒤엣것을 CDMO(위탁개발생산), 그러니까 남의 부엌을 대신 맡는 일이라 부른다. 마지막으로, 약효를 내는 실제 성분을 원료의약품(API)이라 하고, 그 원료를 알약이나 주사제로 빚어낸 것을 완제의약품이라 한다. 이 지도를 머리에 넣고, 이제 사슬로 들어가 보자.
마진이 그리는 사다리
같은 제약회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도, 사슬 어느 고리에 서 있느냐에 따라 남기는 몫이 전혀 다르다. 2025년 성적표를 영업이익률이 높은 순서로 세워 보면, 돈이 어디에 남는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마지막 칸에는 그 회사가 무엇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지를 적었다.
| 회사 (2025·연결) | 뿌리 | 매출 | 영업이익 | 이익률 | 무엇으로 사는가 |
|---|---|---|---|---|---|
| 알테오젠 | 바이오 | 2,159억 | 1,069억 | 49.5% | 정맥주사를 피하주사로 바꾸는 제형변환 원천기술을 빅파마에 빌려주고 로열티 |
| 삼성바이오로직스 | 바이오 | 4조 5,570억 | 2조 692억 | 45.4% | 짓는 데 수년 걸리는 세계 최대 생산능력, 곧 시간의 벽 |
| SK바이오팜 | 바이오 | 7,067억 | 2,039억 | 28.9% | 자체 신약 세노바메이트 + 미국 직접판매로 밸브까지 쥠 |
| 셀트리온 | 바이오 | 4조 1,625억 | 1조 1,685억 | 28.1% | 바이오시밀러 선점 + 유통까지 수직계열화 |
| 한미약품 | 전통 | 1조 5,475억 | 2,578억 | 16.7% | 지속형 플랫폼으로 후보물질을 만들어 기술수출 |
| 에스티팜 | 바이오 | 3,317억 | 549억 | 16.6% | 올리고핵산 원료 CDMO 세계 3위 |
| 대웅제약 | 전통 | 1조 5,709억 | 1,968억 | 12.5% | 보툴리눔·개량신약으로 마진 방어 |
| JW중외제약 | 전통 | 7,753억 | 945억 | 12.2% | 수액이라는 필수의약품 과점 + 도입 신약 |
| HK이노엔 | 전통 | 1조 632억 | 1,109억 | 10.4% | 자체 신약 케이캡을 국산 블록버스터로 |
| 유유제약 | 전통 | 1,409억 | 110억 | 7.8% | 은행엽 타나민이라는 좁은 니치를 오래 수성 |
| 씨젠 | 바이오 | 4,742억 | 345억 | 7.3% | PCR 분자진단, 코로나 특수 뒤 정상 궤도 |
| 보령 | 전통 | 1조 174억 | 651억 | 6.4% | 국산 신약 카나브 + 항암 브랜드를 사들여 회전 |
| 환인제약 | 전통 | 2,552억 | 130억 | 5.1% | 정신과 처방 1위, 익숙함으로 좁은 고리를 수성 |
| 유한양행 | 전통 | 2조 1,866억 | 1,044억 | 4.8% | 렉라자를 발굴하되 세계 판매 밸브는 얀센에 넘기고 로열티 |
| 종근당 | 전통 | 1조 6,924억 | 806억 | 4.8% | 제네릭·개량신약 국내 영업력 |
| 삼천당제약 | 바이오 | 2,318억 | 85억 | 3.7% | 점안제 + 경구용 바이오시밀러에 미래를 건다 |
| 녹십자 | 전통 | 1조 9,913억 | 691억 | 3.5% | 혈액제제·백신 국내 과점 |
| 광동제약 | 전통 | 1조 6,595억 | 310억 | 1.9% | 매출 절반이 음료·유통, 약은 곁다리 |
| 동아에스티 | 전통 | 8,088억 | 6억 | 0.1% | 오랜 전문약 포트폴리오, 신약 공백으로 바닥 |
| 국전약품 | 바이오 | 1,310억 | -26억 | -2.0% | 약의 원료를 국산화하려 투자 중 |
| 리가켐바이오 | 바이오 | 1,416억 | 영업손실 | — | ADC 원천기술을 완성 전에 미리 판다 |
| 펩트론 | 바이오 | 56억 | 영업손실 | — | 지속형 비만약 플랫폼에 매출 전부터 크게 투자 |
※ FY2025 연결 기준(DART). 삼성바이오로직스 매출 +30.3%·영업이익 2조 원 첫 돌파, 셀트리온 매출 +17%·영업이익 +137.5%(사상 첫 매출 4조·영업이익 1조 동시 달성), SK바이오팜 매출 +29.1%·영업이익 +111.7%. 녹십자는 본업 흑자에도 지분법·일회성 손실로 순손실(-297억 원)을 냈고, SK바이오팜은 이연법인세 등으로 순이익(2,533억 원)이 영업이익을 웃돌았다.
이 사다리를 위에서 아래로 훑으면, 숫자가 49%에서 마이너스까지 미끄러진다. 아득한 낙차다. 같은 산업, 같은 나라, 다 같은 흰 가운의 세계인데 왜 이렇게 벌어질까. 자리 때문이다.
맨 위의 알테오젠은 약도 공장도 없이 49%를 남긴다. 정맥주사로 맞던 약을 피부 밑 주사로 바꿔 주는 제형변환 기술 하나를 세계의 거대 제약사들에 빌려주고 로열티를 받는 회사다. 남이 복제하지 못하는 원천 기술이, 공장도 영업사원도 없이 절반에 가까운 이익을 부른다.
그 바로 아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남의 약을 대신 만들어 주는 회사다. 제 이름을 단 약은 없다. 그런데도 45%를 남긴다. 비밀은 그 공장을 짓는 데 걸리는 시간에 있다. 바이오의약품 공장은 하나 짓는 데 몇 조 원과 몇 년이 들고, 다 지어도 각국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는 데 또 몇 년이 걸린다. 세계에서 이만한 규모와 신뢰를 갖춘 공장은 손에 꼽는다. 이 회사는 5공장까지 지어 78만 리터가 넘는, 단일 기업으로 세계 최대의 생산능력을 쥐었다. 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그것이 이 고리를 좁게 만든다. 반도체 편에서 봤던 것과 같은 종류의 벽이다.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시간으로만 쌓이는 벽.
아래쪽의 녹십자는 다르다. 혈액제제와 백신을 만들어 주로 국내에 판다. 좋은 회사이고 없어서는 안 될 회사지만, 파는 물건의 상당수가 이미 값이 정해진 시장에 놓여 있다. 국내 약값은 건강보험이 눌러 정하고, 남들도 비슷한 걸 만든다. 그래서 2조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도 3.5%만 남는다. 유한양행과 종근당이 나란히 4.8%에 머무는 이유도 같다. 매출의 큰 몫이 남의 약을 들여와 파는 상품 판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값을 부르는 게 아니라, 정해진 값 위를 얇게 미끄러진다.
사다리의 맨 밑은 더 극단적이다. 물과 남의 약을 함께 파는 광동제약은 1조 6천억 원을 팔고도 2%를 못 남기고, 약의 원료를 국산화하려는 국전약품은 아직 이익을 낼 때가 아니라 적자로 앉아 있다. 넓고 붐비는 자리에서는 매출이 아무리 커도 돈이 남지 않는다.
사다리 위쪽, 28% 언저리에 셀트리온과 SK바이오팜이 나란히 서 있는 건 흥미롭다. 하는 일이 정반대인데 마진이 같다. 셀트리온은 특허가 풀린 남의 블록버스터를 복제하는 회사다. 복제라 값은 원본보다 싸지만, 이 회사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대규모 복제 능력을 무기로 규모의 벽을 세웠다. SK바이오팜은 반대다.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라는, 세상에 없던 자기 약 하나로 저 숫자를 만든다. 복제로 규모를 쌓은 자와, 원천 하나로 값을 부르는 자가 같은 자리에 선 셈이다. 그리고 뒤에서 보겠지만, 이 둘의 앞날은 전혀 다르다.
표를 세로로 읽으면 또 하나가 보인다. 전통 제약 쪽은 마진이 대체로 얇다. 낮게는 1% 안팎, 높아야 17%다. 대신 이들은 오래된 판매망과 익숙한 브랜드라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자리를 지킨다. 바이오 쪽은 편차가 극단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45%에서 리가켐바이오의 적자까지 한 화면에 있다. 좁은 고리를 이미 쥔 소수와, 그 고리를 아직 만드는 중인 다수가 같은 뿌리에서 갈린다.
분자는 우리가, 밸브는 그들이
여기서 이 산업의 목줄이 드러난다. 돈이 가장 두껍게 남는 자리, 곧 세상에 없던 신약을 발견해 세계 시장에 파는 자리를 한국은 아직 온전히 쥐지 못했다. 우리는 분자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 분자를 몇 년에 걸쳐 세계 규모의 임상으로 검증하고, 각국의 판매망에 실어 나르는 마지막 좁은 고리는 대개 빅파마가 쥔다. 그래서 한국 회사들은 그 문 앞에서 분자를 판다. 기술수출이라 부르는 거래다.
유한양행의 폐암약 렉라자가 그 전형이다. 이 물질은 원래 국내의 작은 회사가 발견해 유한양행에 넘겼고, 유한양행은 그것을 임상 초기 단계이던 2018년에 존슨앤드존슨 계열의 얀센에 총 1조 6천억 원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그리고 2024년, 렉라자는 얀센의 다른 약과 짝을 이뤄 미국 FDA의 1차 치료제 승인을 받았다. 한국이 발견한 첫 항암 신약이 세계 시장의 문을 연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약을 지금 세계에 파는 것은 얀센이다. 분자는 유한양행이 만들었고, 그 분자를 세계에 흘려보내는 밸브는 얀센이 쥐고 있다. 유한양행에게는 매출의 일부가 로열티로 돌아온다. 가장 두꺼운 몫이 어디로 가는지는, 저 표에서 유한양행의 영업이익률 4.8%가 조용히 말해 준다.
한미약품도 지난 몇 해 동안 여러 건의 신약 후보를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해 왔다. 발견하는 힘은 있는데 세계에 파는 힘이 없으니, 중간에서 판다. 이것이 돈이 남는 곳(원천 신약)과 목줄을 쥔 곳(글로벌 상업화)이 갈라져 있는 한국 제약의 초상이다.
SK바이오팜이 특별한 건 바로 이 대목이다. 이 회사는 엑스코프리를 남에게 팔지 않았다. 미국에 자회사를 세워, 제가 발견한 약을 제 영업조직으로 직접 판다. 한국 회사가 자체 신약을 미국에서 직접 파는 첫 사례다. 그래서 이 약의 미국 매출 6천억 원어치가 통째로 이 회사의 것이 된다. 분자와 밸브를 한 손에 쥔 것이다. 좁은 고리를 중간에 팔지 않고 끝까지 쥐면, 남는 몫이 이렇게 달라진다.
불안이라는 성장 시장
잠깐 사슬에서 눈을 떼고, 이 약들을 사는 사람들 쪽을 본다. 요즘 나는 주변에서 잠을 잘 못 잔다는 이야기, 마음이 자꾸 가라앉는다는 이야기를 부쩍 자주 듣는다.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다. 국내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2020년 84만 명에서 2024년 111만 명으로, 다섯 해 만에 32%가 늘었다.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는 사람도 한 해 130만 명을 넘어섰다. 세계로 넓혀도 방향은 같다. 항우울제 한 품목의 시장만 따져도 2024년 190억 달러에서 2034년 380억 달러로, 십 년에 두 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와 인지장애 쪽은 인구가 늙어 가는 속도만큼 확실하게 커진다.
반도체 편에서 인공지능이 웨이퍼 수요를 구조적으로 밀어 올린다고 했다. 정신과 뇌의 건강은, 조금 쓸쓸하지만, 그와 비슷한 종류의 구조적 수요다. 세상이 복잡하고 불안해질수록, 그리고 사람이 오래 살수록, 이 약을 찾는 손은 마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커지는 수요를 향해 한국 제약사들은 어떤 자리에 서 있을까. 여기서도 사슬의 오래된 규칙이 되풀이된다.
가장 오래되고 순한 접근은 은행잎이다. 유유제약의 타나민이 그 대표다. 은행잎에서 뽑아낸 추출물로 만든 이 약은, 기억력이 떨어지는 기질성 뇌기능장애와 말초순환장애, 어지러움과 이명에 쓰인다. 병원 처방과 약국 판매 양쪽에 걸쳐 오래 팔려 온, 순하고 익숙한 뇌 영양제 같은 약이다. 앞의 사다리에서 유유제약은 영업이익률 7.8%, 대웅제약 아래이자 유한양행 위에 놓였다. 나쁘지 않지만 크지도 않은, 딱 중간의 숫자다. 왜 하필 이 자리일까. 은행잎 때문이다.
잎이냐 특허냐
은행잎 추출물 제제는 유유제약만 만드는 게 아니다. SK케미칼의 기넥신에프도 같은 은행엽건조엑스로 만든, 사실상 같은 계열의 약이다. 적응증도 겹친다. 같은 잎에서 뽑은 같은 성분을 여러 회사가 만들어 파는 것이다. 이것이 얇게 남는 이유다. 은행잎은 아무도 대체 못 하는 좁은 고리가 아니라, 여러 회사가 나눠 선 넓은 고리다. 앞서 본 제네릭과 같은 자리다. 수요가 아무리 커져도, 넓은 고리에서는 돈이 남지 않는다.
같은 뇌와 정신의 수요를 향한 전혀 다른 접근이, 공교롭게도 같은 그룹 안에 함께 있다. SK바이오팜의 세노바메이트다. 앞에서 값을 스스로 부르는 드문 예로 봤던 그 뇌전증 약이다. 이건 은행잎이 아니다. 뇌의 발작을 억제하도록 설계된, 세상에 없던 합성 신약이다. 잎에서 뽑은 게 아니라 분자를 처음부터 지어 올렸고, 그 분자에는 특허가 걸려 있다. 좁은 고리다. SK케미칼의 은행잎이 7~8%의 세계라면, SK바이오팜의 합성 신약은 28%의 세계다. 같은 SK라는 이름을 달고 같은 뇌를 겨냥하는데, 한쪽은 잎이고 한쪽은 특허라서 남기는 몫이 서너 배로 갈린다.
이 대조가 이 편 전체의 명제를 손바닥만 한 크기로 요약한다. 돈은 잎에 남지 않고 특허에 남는다. 넓은 고리가 아니라 좁은 고리에 남는다. 정신과 뇌의 건강이라는, 앞으로 확실히 커질 수요를 앞에 두고도, 그 값을 가장 많이 받아 내는 자리는 은행잎을 달이는 쪽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분자를 지어 올리는 쪽이다.
여기에 한 겹을 더 벗기면 조금 서늘해진다. 은행잎 제제 안에서조차, 돈이 남는 좁은 고리는 따로 있다. 타나민이 유효성분으로 쓰는 원료는 독일의 한 회사가 오래전 표준화한 규격품이다. 은행잎에서 무엇을 얼마나 남기고 무엇을 걸러 낼지를 정하는 그 추출 공정의 원천이, 잎을 달이는 자리가 아니라 잎을 표준화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캐는 자리가 아니라 정제하는 자리,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 설계하는 자리. 사슬의 어디를 봐도 돈은 그 좁은 고리로 흘러든다. 희토류의 값이 캐는 광산이 아니라 정제하는 손에 남는 것과, 반도체에서 돈이 웨이퍼가 아니라 설계도에 남았던 것과, 결국 같은 이야기다. 은행잎 한 알에도 그 규칙은 예외 없이 새겨져 있다.
익숙함이라는 또 다른 벽
잎과 특허 사이에, 정신과에는 제3의 벽이 하나 더 있다. 익숙함이다.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약은 다른 약과 다른 데가 있다. 어렵게 몸에 맞는 약을 하나 찾으면, 환자도 의사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조금 더 싼 약이 나와도, 잘 듣던 약을 굳이 바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이 처방의 관성이 그대로 진입장벽이 된다.
그 관성의 자리를 오래 지켜 온 회사가 환인제약과 명인제약이다. 환인제약은 매출의 80%가 넘게 항우울제와 항정신병약 같은 정신과 약에서 나오는, 국내 정신과 처방 1위의 전문 회사다. 명인제약도 정신신경계 약에서 국내 처방 규모 1위를 다툰다. 커지는 우울증과 불안의 수요가 이들의 처방으로 꾸준히 흘러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처방 1위를 오래 쥐고도, 환인제약의 영업이익률은 5% 남짓이다. 앞의 유유제약보다도 얇다. 왜일까. 이들이 파는 약의 상당수가 해외에서 발명된 원천 약의 제네릭이거나 그 변형이기 때문이다. 익숙함의 벽은 남이 내 자리를 빼앗는 것은 막아 주지만, 그 약을 처음 발명한 값까지 불러 주지는 못한다. 관성으로 자리는 지키되, 값은 여전히 원천을 쥔 자에게로 흐르는 것이다.
같은 뇌와 정신의 사슬에서, 값을 제대로 부르는 회사는 따로 있었다. 앞서 본 SK바이오팜이다. 이 회사는 뇌전증이라는 좁은 문에서 세상에 없던 자기 약을 만들어 미국에 직접 판다. 익숙함이 아니라 발명으로 세운 벽이다. 그래서 환인제약이 5%를 남길 때, SK바이오팜은 그 다섯 배를 부른다. 익숙함의 벽과 발명의 벽, 정신과라는 한 사슬 안에서도 이 둘의 높이가 이렇게 다르다.
값을 누르는 손
내수 제약이 왜 그렇게 얇게 남기는지에는, 시장 말고 손이 하나 더 있다. 정부다. 국내에서 팔리는 약값은 대부분 건강보험이 정한다. 그리고 2026년, 그 손이 다시 한 번 값을 눌렀다. 정부는 3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복제약 값을 원본의 53.55%에서 45%로 낮추는 약가 제도 개편을 의결했고, 개편된 산정 체계는 그해 하반기부터 시행됐다. 이미 등재된 약 4천5백 품목도 대상인데, 등재 시점에 따라 그룹을 나눠 십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정한다. 2012년에 등장한 53.55%라는 숫자가 십오 년 만에 사라지는 셈이다.
이 개편에는 두 얼굴이 있다. 환자와 재정에는 이롭다. 같은 성분의 복제약을 더 싸게 쓰게 되고, 아낀 돈으로 희귀질환 신약의 보험 적용을 앞당긴다. 반대로 복제약에 기대 온 중소 제약사에는 매섭다. 안 그래도 얇던 마진이 더 깎이니, 복제약만 만들던 회사는 고사 위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 정책의 방향을 이 책의 언어로 옮기면 뜻이 분명해진다. 정부는 여럿이 나눠 선 넓은 고리의 값은 더 누르고, 아무도 대신 못 만드는 좁은 고리의 값은 우대한다. 시장이 이미 갈라놓은 값의 사다리를, 정책이 한 번 더 밀어 기울이는 셈이다. 돈은 좁은 고리에 남는다는 이 편의 규칙이, 시장뿐 아니라 정부의 손으로도 다시 새겨진다.
원료라는 더 깊은 상류
은행잎 이야기는 유유제약 한 곳의 사정이 아니다. 한국 제약 전체가 딛고 선 더 깊은 바닥이 거기 있다. 알약이든 주사제든 약효를 내는 실제 성분을 원료의약품, 곧 API라 부르는데, 한국은 이 원료를 대부분 밖에서 사 온다. 국내에서 만들어 쓰는 비율, 곧 자급률이 2022년에는 11.9%까지 떨어졌다. 열 알 중 아홉 알의 알맹이가 수입이라는 뜻이다. 이듬해 25%대로 반등하긴 했지만 여전히 낮고, 그 수입의 절반 넘게가 지금도 중국과 인도에서 온다.
완제약을 아무리 잘 지어도, 그 안에 든 원료를 캐고 합성하는 맨 위 칸은 중국과 인도가 쥐고 있는 것이다. 앞서 배터리에서 돈이 중국의 리튬 정련으로 새어 나갔듯, 제약에서도 한 축은 완제약 밖, 원료라는 상류로 흘러간다. 코로나 때 원료 하나가 막혀 약값이 출렁였던 것도 그래서다. 국전약품 같은 회사가 원료 국산화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아직은 몇 품목의 첫걸음이다. 완제 약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 앞의 원료가 막히면 라인은 선다. 종속은 늘 한 층 더 아래에 숨어 있다.
반도체보다 헐거운 목줄
이쯤에서 앞선 여행이 겹쳐 온다. 반도체에서 한국은 메모리를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지만, 그 칩을 설계하는 근본 도구와 가장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노광 장비는 밖에 있었다. 만드는 일은 세계 최고인데,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를 정하는 원천은 남의 것이었다. 제약바이오는 그 그림의 판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에서 약을 가장 많이 만들 수 있는 회사지만, 그 공장에서 무엇을 만들지는 고객인 빅파마가 정한다. 설계도는 남의 것이고, 우리는 그 설계도대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찍어 낼 뿐이다.
다만 결이 다른 데가 하나 있다. 그리고 이 차이가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하다. 반도체의 원천, 곧 설계 도구나 노광 장비는 우리가 몇 해 안에 따라잡기 어려운 물건이다. 반면 신약의 원천은 조금 다르다. 후보 물질 하나를 발견하는 데까지는 이미 여러 번 해냈다. 렉라자가 그랬고, 엑스코프리가 그랬다. 우리에게 없는 건 발견하는 머리가 아니라, 그 발견을 세계 규모의 임상으로 끝까지 밀어붙일 자본과 판매망이다.
그러니 이 목줄은 반도체의 목줄보다 조금 헐겁다. SK바이오팜은 이미 그 헐거운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물론 얇게 남는 고리에도 나름의 무기는 있다. CDMO는 값을 세게 부르지는 못해도, 인공지능 신약과 바이오의약품 시대가 열릴수록 만들 물량이 구조적으로 늘어난다. 세계의 신약이 점점 더 복잡한 단백질과 항체로 옮겨 갈수록, 그것을 대신 만들어 줄 공장은 더 필요해진다. 반도체 소재가 웨이퍼 한 장마다 소모되는 밀가루였다면, CDMO 캐파는 신약이 늘 때마다 더 필요해지는 부엌이다. 값을 못 불러도 부엌을 가진 자는 배를 곯지 않는다.
부엌을 넓히는 자
그 부엌을 가진 자가 지금 부엌을 넓히고 있다. 세계 제약 시장을 통째로 흔드는 새 마당이 열렸기 때문이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로 대표되는 비만·당뇨 치료제, 이른바 GLP-1 약이다. 살을 빼 주는 이 주사약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은 2035년 2백조 원 규모로 커질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이 약의 몸통은 항체가 아니라 펩타이드라는 다른 종류의 물질이라, 그동안 항체 CDMO로 세계 1위에 오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부엌으로는 곧바로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6년 7월, 스위스의 펩타이드 CDMO 폴리펩타이드를 2조 7천억 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한국 제약·바이오 역사상 가장 큰 인수이고, 지분 100% 확보를 목표로 그해 말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비만약이라는 새 마당에 부엌 하나를 통째로 사서 들여놓는 셈이다. 다만 이 인수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이익률은 한동안 낮아진다. 폴리펩타이드 실적이 2027년부터 연결에 잡히면, 뒤에서 볼 45%라는 숫자가 30% 후반에서 40% 초반으로 내려앉을 것으로 증권가는 본다. 좁은 고리를 하나 더 사들이는 값이다. 정작 그 약을 발명한 건 덴마크와 미국의 회사들이지만, 그 약을 세계가 쓸 만큼 대량으로 찍어 낼 부엌은 한국이 쥐려 한다.
약으로 못 부른 값, 옆 마당
본업에서 값을 크게 못 부르니, 제약사들은 옆 마당으로 눈을 돌린다. 규제가 덜하고 마케팅으로 값을 부를 수 있는 시장,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과 반려동물이다. 처방약 값은 건강보험이 누르지만, 크림 한 병과 유산균 한 통의 값은 회사가 부른다.
동국제약의 더마 화장품 센텔리안24는 상처 연고에 쓰던 성분을 크림으로 옮겨 누적 매출 1조 원을 넘겼고, 동아제약은 파티온이라는 화장품과 반려동물 영양제·샴푸로 라인을 넓혔다. 종근당 계열의 락토핏은 유산균이라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약보다 익숙한 이름이 됐다. 반려동물 시장만 해도 2032년 20조 원으로 큰다는 전망이니, 약을 만들던 기술과 신뢰를 그 옆 마당에 옮겨 심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것이 값을 못 부르던 자가 값을 부르러 가는 이동이라는 점이다. 규제가 값을 누르는 처방약의 세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값을 매길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선 것. 다만 그 옆 마당도 안전하지는 않다. 화장품과 건기식은 진입장벽이 낮아, 이번엔 좁은 고리가 아니라 붐비는 넓은 고리에서 다시 브랜드로 겨뤄야 한다.
같은 바이오, 다른 자리
부엌이라는 이 자리가 얼마나 다른 운명을 만드는지는, 세 회사를 나란히 세워 보면 선명해진다.
| 회사 | 선 자리 | 매출 | 영업이익 | 이익률 |
|---|---|---|---|---|
| 삼성바이오로직스 | CDMO (남의 약 대신 제조) | 4조 5,570억 | 2조 692억 | 45% |
| 셀트리온 | 바이오시밀러 (자체 약) | 4조 1,625억 | 1조 1,685억 | 28% |
| 롯데바이오로직스 | CDMO (후발·건설 중) | 1,961억 | -1,326억 | 적자 |
※ 2025년 연결 기준.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비상장(감사보고서). 영업이익률은 반올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부엌 그 자체다. 자기 약은 거의 없이 남의 약을 대신 찍어 주는데도, 4조 5천억 원이 넘는 매출에 영업이익률이 45%에 이른다. 웬만한 제조업이 한 자릿수 마진에 허덕이는 걸 생각하면 비현실적인 숫자다. 비결은 규모다. 세계에서 가장 큰 생산 설비를 쌓아 올려, 세계의 큰 제약사들이 줄을 서게 만들었다. 부엌은 크게 짓고 꽉 채울수록 돈이 남는다. 규모가 곧 벽인 자리다.
셀트리온은 조금 다른 자리에 섰다. 매출은 삼바와 비슷한 4조 원대지만, 이 회사는 남의 약을 찍는 게 아니라 자기 약을 판다. 특허가 풀린 비싼 바이오의약품을 똑같이 만들어 값싸게 내놓는 바이오시밀러가 본업이다. 영업이익률은 28%로 삼바보다 낮지만, 파는 약의 권리가 자기 것이라 흥행이 이어지면 후속 수익도 자기 몫이다. 2025년 처음으로 매출 4조와 영업이익 1조를 함께 넘겼다. 부엌을 빌려주는 대신 자기 이름의 요리를 파는 길이다.
그리고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있다. 2022년 뒤늦게 부엌 사업에 뛰어들어 미국 공장을 사들이고 인천 송도에 거대한 새 부엌을 짓는 중이다. 하지만 2025년 성적표는 매출 1,961억 원에 영업손실 1,326억 원. 삼바와 같은 부엌을 노렸는데 정작 그 부엌이 아직 덜 데워졌다. 미국 공장 가동률은 74%에서 올해 초 14%까지 떨어졌고, 송도의 대형 설비는 2027년에야 돈다. 부엌은 크게 지어 꽉 채우기 전까지는 돈이 남기는커녕 줄줄 샌다. 삼바가 십수 년 걸려 쌓은 규모의 벽을, 후발주자는 그만큼의 시간과 적자를 견뎌야 넘는다.
세 회사의 갈림길이 말해 주는 건 하나다. 같은 바이오라도 어느 자리에 서느냐가 값을 가른다. 남의 약을 찍는 부엌으로 규모의 벽을 쌓거나, 자기 약의 권리를 쥐거나. 그 둘 중 어디에도 아직 이르지 못한 후발주자는, 벽이 완성되는 날까지 돈을 쏟아붓는 수밖에 없다.
2025년 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한 걸음을 더 뒀다. 삼성에피스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새로 세워 바이오시밀러 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그 아래로 넘기고, 자신은 순수한 CDMO 회사로 남는 인적분할이다. 이유는 부엌의 논리 그 자체에 있다. 남의 약을 대신 만들어 주는 부엌이 정작 자기 약도 만들면, 그 부엌을 빌리려던 손님은 내 경쟁자에게 내 비밀을 맡기는 건 아닌가 망설이게 된다. 그 이해상충을 없애 중립적인 부엌이라는 신뢰를 사려는 것이다. CDMO에서는 그 신뢰가 곧 자산이니 논리는 정석에 가깝다. 다만 실제로 더 많은 손님을 불러올지는, 2025년 11월 24일 나란히 다시 상장한 두 회사의 앞날이 답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듬해 여름, 정반대의 재편도 있었다. 동아제약을 거느린 지주회사 동아쏘시오홀딩스가 오히려 그 알짜 자회사 동아제약을 흡수합병하기로 한 것이다. 2026년 7월 이사회에서 의결했고, 합병기일은 그해 10월 1일이다. 이미 지분을 100% 쥐고 있어 새로 내줄 주식이 없는 소규모 합병이라, 주주 구성도 지분율도 그대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사업을 쪼개 순수해졌다면, 동아는 사업을 합쳐 지주회사가 직접 장사에 나서는 쪽이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노림수는 닮았다. 박카스로 꾸준히 현금을 버는 동아제약을 품으면, 배당만 받아 실탄이 마르던 지주회사가 그 현금을 신약 개발과 인수에 곧바로 쓸 수 있다. 마침 정부가 한 그룹의 회사를 여럿 상장시키는 관행을 원칙적으로 막는 쪽으로 제도를 손보는 중이라, 자회사가 따로 상장돼 생기던 지주사 할인도 미리 털어 내는 셈이 된다. 쪼개든 합치든, 결국은 돈이 남는 자리를 어떻게 더 잘 쥐느냐의 문제다.
스물다섯 배로 갈리는 몫
이제 이 사슬을 사람의 눈금으로 다시 재 본다. 흰 가운 한 사람이 한 해에 얼마를 굴리고 얼마를 남기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 회사 | 직원수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 | 1인당 매출 | 1인당 영업이익 |
|---|---|---|---|---|---|
| SK바이오팜 (자체 신약) | 약 270명 | 약 1억 900만 원 | 약 6.3년 | 약 26.0억 원 | 약 7.5억 원 |
| 알테오젠 (제형변환) | 약 161명 | 약 1억 4,900만 원 | 약 4.1년 | 약 13.4억 원 | 약 6.6억 원 |
| 셀트리온 (바이오시밀러) | 약 3,150명 | 약 1억 800만 원 | 약 6.2년 | 약 13.2억 원 | 약 3.7억 원 |
| 삼성바이오로직스 (CDMO) | 약 5,460명 | 약 1억 1,400만 원 | 약 4.9년 | 약 8.4억 원 | 약 3.8억 원 |
| 한미약품 (개량신약) | 약 2,380명 | 약 8,600만 원 | 약 8.9년 | 약 6.5억 원 | 약 1.1억 원 |
| 대웅제약 (개량신약) | 약 1,794명 | 약 7,700만 원 | 약 6.8년 | 약 8.8억 원 | 약 1.1억 원 |
| 유한양행 (내수·유통) | 약 2,150명 | 약 1억 원 | 약 12.7년 | 약 10.2억 원 | 약 0.5억 원 |
| 씨젠 (분자진단) | 약 822명 | 약 9,500만 원 | – | 약 5.8억 원 | 약 4,200만 원 |
| 유유제약 (은행엽·내수) | 약 248명 | 약 6,100만 원 | 약 5.9년 | 약 5.7억 원 | 약 4,400만 원 |
| 에스티팜 (올리고 CDMO) | 약 1,560명 | 약 6,800만 원 | 약 6.8년 | 약 2.1억 원 | 약 3,500만 원 |
| 녹십자 (혈액·백신) | 약 2,350명 | 약 7,300만 원 | 약 9.9년 | 약 8.5억 원 | 약 0.3억 원 |
| 환인제약 (정신과 전문) | 약 671명 | 약 7,500만 원 | – | 약 3.8억 원 | 약 1,900만 원 |
| 리가켐바이오 (ADC 신약) | 약 180명 | 약 1억 5,700만 원 | 약 4.8년 | 약 7.9억 원 | 영업손실 |
※ 직원수·평균 연봉·근속은 각 사 2025년 사업보고서(별도, 남녀 가중평균). 1인당 수치는 연결 실적을 별도 인원으로 나눈 어림값이다. 연결 매출이 섞인 회사는 1인당 매출이 실제 인력의 몫보다 크게 잡힌다. 리가켐바이오는 기술수출 매출이 해마다 들쭉날쭉해 1인당 매출의 의미가 크지 않고, 2025년은 영업손실(순손실 916억 원)을 냈다. 평균 근속을 공시하지 않은 곳은 빈칸으로 둔다.
이 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맨 위 SK바이오팜이다. 270명 남짓이 한 사람당 26억 원의 매출과 7억 5천만 원의 이익을 만든다. 이 산업에서 가장 좁은 고리, 곧 자기 약의 특허를 온전히 쥔 자리를 소수의 사람이 지키고 있는 셈이다. 돈이 좁은 고리에 남는다는 말은, 그 고리를 지키는 사람 수가 적을수록 한 사람 몫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편 끝에는 녹십자가 있다. 한 사람이 8억 5천만 원어치를 파는데, 남기는 이익은 3천만 원이다. SK바이오팜의 스물다섯 분의 일이다. 파는 물량은 적지 않은데 남는 게 얇다. 유한양행도 한 사람이 10억 원을 팔아 5천만 원을 남긴다. 내수와 유통이라는, 값을 못 부르는 자리의 숙명이다. 같은 흰 가운을 입고 같은 시간을 일해도, 어느 고리에 서 있느냐가 한 사람의 몫을 스물다섯 배로 갈라놓는다.
근속연수도 벽의 종류를 증언한다. 유한양행 12.7년, 녹십자 9.9년. 오래된 내수 제약사의 사람들은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값은 얇아도 회사가 흔들리지 않는, 습관처럼 견고한 자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4.9년, 리가켐바이오는 4.8년으로 짧다. 한쪽은 공장을 쉬지 않고 지어 대며 몸집을 불리는 중이고, 다른 쪽은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하는 신약 개발에 미래를 건 젊은 조직이다. 자라나는 벽 곁에서는 사람도 빠르게 드나든다.
가장 묘한 건 맨 아래 리가켐바이오다. 이 회사는 2025년에 이익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평균 연봉은 1억 5천만 원으로, 이 표에서 가장 높다. 이익을 못 내는 회사가 가장 많은 돈을 사람에게 준다는 이 역설은, 신약 개발이라는 일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항체에 약물을 매다는 ADC라는 어려운 기술로 언젠가 세상에 없던 약을 만들어 낼지 모르는, 그 가능성 하나에 값을 매기는 것이다. 아직 아무 데도 남지 않은 돈을, 언젠가 남을 것이라 믿고 미리 당겨 사람에게 치른다. 좁은 고리를 만들어 내려는 자의, 조금 무모하고 조금 아름다운 셈법이다.
여기까지가 알약 한 알의 이력서다. 거슬러 올라 보니, 우리는 약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다만 무엇을 만들지, 그 약을 세계에 얼마에 팔지를 정하는 가장 좁은 고리는 아직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이번 여행 끝에 한 가지는 조금 다르게 느꼈다. SK바이오팜이 그 문을 이미 반쯤 밀고 들어갔고, 리가켐바이오 같은 회사들이 이익도 나기 전에 사람에게 큰 값을 치르며 다음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 처음에 말한, 값이 제각각이던 그 알약들을 다시 떠올린다. 그 안의 알약 가운데 언젠가 하나쯤은, 값을 스스로 부르는 우리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판단을, 조금 더 미뤄 두기로 한다.
이 흰 가운의 세계가 특허와 규제라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값을 지켰다면, 다음 사슬의 벽은 한층 더 눈에 띄지 않는다. 뚫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존재를 실감하지 못하는 벽, 신뢰와 자격이 곧 값이 되는 세계, 정보보안이다. 다음 여행은, 보안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