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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점 시리즈 · 2026-07-17

[과점기업-3] 이름을 빌려주는 사람들 (건설 5대사)

대한민국 밸류체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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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보러 다녀 본 사람은 안다. 우리는 사실 집을 사는 게 아니라, 이름을 산다. 래미안, 자이,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같은 동네, 비슷한 평수, 엇비슷한 콘크리트인데도, 문패에 어떤 이름이 붙어 있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벽돌과 시멘트 값이 아니라, 그 앞에 붙은 브랜드 이름 때문에 더 받는 돈이다. 조금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는 대체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지난 과점은 설탕과 맥주, 그러니까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이었다. 이번엔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 사는 것, 집이다. 그런데 이 시장을 들여다볼수록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어긋남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분명 그 이름값을 치르는데, 정작 그 돈은 이름의 주인에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건 그 어긋남에 관한 이야기다.

수만 개의 회사, 다섯 개의 이름

한국에 건설 회사는 수만 개나 된다. 2025년 시공능력평가를 받은 회사만 7만 곳이 넘는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아파트를 짓는 이름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평가액 맨 위 다섯 자리는 오랫동안 거의 같은 익숙한 이름들이 지킨다. 삼성물산이 34조 원이 넘는 평가액으로 열두 해째 1위이고, 그 뒤를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GS건설이 잇는다. 우리가 아는 아파트 브랜드의 주인들이다.

순위회사평가액대표 브랜드
1삼성물산34조 7,219억래미안
2현대건설17조 2,485억힐스테이트 · 디에이치
3대우건설11조 8,969억푸르지오
4DL이앤씨11조 2,183억e편한세상 · 아크로
5GS건설10조 9,454억자이

※ 2025년 시공능력평가 기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먼저 털어놓아야겠다. 이 다섯은 사실 아파트만 짓는 회사가 아니다. 삼성물산이 2025년에 새로 따낸 일감 가운데 주택은 2조 원 남짓이고, 나머지 열몇 조 원은 반도체 공장과 해외 플랜트다. 우리가 래미안의 회사라고 부르는 그곳의 진짜 본업은, 실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을 짓는 일에 더 가깝다. 현대건설도 마찬가지여서, 매출의 절반은 플랜트에서 나오고 주택은 그중 일부다. 그런데도 우리 머릿속에서 이 이름들은 오직 아파트로만 남는다. 그 간극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누가 누구에게 돈을 내는가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소비자가 건설사에게 돈을 내고 아파트를 산다고. 그런데 재건축과 재개발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조금 다르다. 낡은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짓기로 한 그 동네의 집주인들이 모여 조합을 만든다. 발주하는 것도, 다 지은 뒤 남는 집을 일반에 분양하는 것도 이 조합이다. 건설사는 그 조합에 고용된 시공사일 뿐이다. 자기 이름을 빌려주고, 공사를 하고, 그 대가로 도급비를 받는다.

그러니 우리가 아파트 이름에 얹어 내는 그 프리미엄은, 엄밀히 말하면 건설사의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는다. 새 아파트값이 오르면 그 이득은 조합원, 그러니까 원래 그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자산이 된다. 건설사가 가져가는 건 공사비에 붙는 얇은 마진뿐이다. 이름의 프리미엄을 실제로 누리는 사람과, 그 이름을 만든 사람이 서로 다르다.

갑인가, 을인가

그렇다면 이 다섯 개의 거대한 이름은, 이 관계에서 갑일까 을일까. 뜻밖에도 을에 가깝다. 시공사를 고르는 쪽은 조합이다. 어느 건설사에 맡길지를 두고 조합원들이 표를 던지고, 건설사들은 그 표를 얻으려 서로 경쟁한다. 더 좋은 이름, 더 많은 이주비, 더 화려한 특화 설계, 더 낮은 공사비를 내걸고. 강남의 노른자 재건축 하나를 따내려고 대형사 두셋이 몇 달을 다투는 풍경은, 갑이 아니라 을의 구애에 가깝다.

브랜드는 바로 그 구애의 무기다. 아크로나 디에이치 같은 최상위 이름이 따로 만들어진 것도, 결국 더 까다로운 조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였다. DL이 2013년에 아크로를, 현대가 2015년에 디에이치를 앞세운 것은, 소비자를 향한 광고이기 이전에 조합을 향한 명함이었다. 우리가 신분처럼 여기는 그 이름들은, 을이 갑 앞에 내미는 가장 값비싼 명함인 셈이다.

그럼 이들은 무엇으로 버는가

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하나 생긴다.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것도 아니고, 프리미엄을 걷어 가는 것도 아니고, 조합 앞에서는 을이라면, 이 회사들은 대체 무엇으로 버는 걸까.

우선 아파트에서는 생각보다 적게 번다. 재건축 도급은 물량이 크고 안정적이지만, 공사비의 대부분이 자재와 인건비로 나가고 남는 마진은 얇다. 최근 몇 해 사이 시멘트와 철근, 인건비가 한꺼번에 뛰면서 그 마진은 더 얇아졌다. 때로는 직접 땅을 사서 스스로 분양하는 자체 사업으로 크게 벌기도 하지만, 그건 그만큼 크게 잃을 수도 있는 도박에 가깝다.

진짜 돈은 대체로 아파트 바깥에 있다. 삼성물산은 반도체 공장을 지어 벌고, 현대건설은 해외 플랜트와 원전을 지어 번다. 우리가 이름조차 잘 모르는 그 현장들이 실은 회사를 먹여 살린다. 그러니까 조금 얄궂게도, 우리가 열광하며 웃돈을 얹는 그 아파트 이름은 정작 마진이 얇고, 회사의 곳간을 채우는 건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는 공장과 플랜트다. 이름과 돈이 서로 다른 곳에 있다.

초양극화, 그러나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이 다섯이 진짜로 힘을 발휘하는 무대는 따로 있다. 재건축과 재개발, 이른바 도시정비다. 낡은 동네를 헐고 새 아파트를 올리는 이 노른자 시장에서, 2025년 열 개 대형 건설사가 따낸 일감은 48조 원이 넘어 역대 최대였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쏠림이 심하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단 두 곳이 전체의 40%가량을 가져갔고, 상위 다섯이 그 아래 다섯보다 세 배 넘게 수주했다. 한쪽에는 1조 원짜리 수주가 쌓이고, 다른 한쪽에는 한 건도 못 딴 회사들이 있다.

여기서 이 과점의 진짜 성격이 드러난다. 이건 값을 마음대로 부르는 과점이 아니다. 공사비는 조합과의 협상과 원가에 묶여 있고, 수주는 경쟁 입찰로 정해진다. 이들이 쥔 것은 값을 부르는 힘이 아니라, 불려 갈 자격이다. 좋은 이름을 가진 을에게만 갑이 몰리고, 이름 없는 을에게는 애초에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 가격의 과점이 아니라, 자격의 과점이다.

값을 부를 수 없는 과점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어떤 회사가 진짜 벽 안에 있는지 가늠할 때, 나는 늘 이렇게 묻는다. 이 회사는 값을 스스로 부를 수 있는가. 설탕 세 회사는 은밀히 값을 맞췄고, 카스는 절반이 넘는 점유율로 값을 지탱했다. 그런데 건설 다섯 회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답이 조금 다르게 나온다. 이들은 값을 잘 부르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분명히 벽 안에 있다. 값이 아니라 이름으로 지어진 벽이다. 수십 년 무너지지 않고, 하자가 적고, 되팔 때 값을 받쳐 줄 것 같은 신뢰. 그 신뢰는 돈으로 하루아침에 살 수 없고, 그래서 새 이름이 이 안으로 비집고 들어올 틈이 거의 없다. 설탕이 담합으로, 맥주가 점유율로 지은 벽이라면, 건설의 벽은 신뢰로 지어졌다. 같은 과점이라도 재료가 다르다.

같은 침체, 다른 성적표

실적표도 같은 말을 한다. 2025년은 건설업 전체가 힘든 해였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고 공사비가 치솟으면서, 다섯 회사의 매출은 대부분 뒷걸음쳤다. 그런데 이익은 극명하게 갈렸다.

2025년매출영업이익당기순이익
삼성물산 (건설부문)14조 1,480억5,360억—
현대건설31조 629억6,530억5,591억
대우건설8조 546억-8,154억-9,161억
DL이앤씨7조 4,024억3,870억3,702억
GS건설12조 4,503억4,378억934억

기준: FY2025 연결 재무제표(단위: 억원). 삼성물산은 건설부문 실적이라 순이익은 부문 미공시. 현대건설 연결은 현대엔지니어링 등 자회사를 포함한다.

현대건설은 1조 원이 넘던 적자를 털고 흑자로 돌아섰고, DL이앤씨와 GS건설은 이익을 절반 가까이 불렸다. 반면 대우건설은 8천억 원대 적자로 돌아섰고, 삼성물산의 건설 이익은 반 토막이 났다. 같은 침체가 어떤 회사는 일으켜 세우고, 어떤 회사는 주저앉혔다. 침체는 모두를 똑같이 가난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옥석을 가려낸다.

이름을 짓는 사람들

이 다섯 개의 이름을 실제로 짓는 사람들은, 어떤 조건에서 일할까.

2025년직원수평균 연봉평균 근속1인당 매출1인당 영업이익
삼성물산 (건설부문)5,828명전사 1억 2,307만원15.4년부문 24.3억원약 9,200만원
현대건설6,900명1억 1,749만원13.8년별도 23.9억원약 3,600만원 (흑자전환)
대우건설5,146명1억 195만원16.5년13.9억원약 -1억 6,000만원 (적자전환)
DL이앤씨4,742명1억 635만원13.5년10.0억원약 4,800만원 (+42.8%)
GS건설4,996명1억 881만원15.4년16.2억원약 9,600만원 (+53.1%)

기준: FY2025(2025-12-31) 사업보고서. 삼성물산은 건설부문 인력·부문 실적(연봉은 전사 평균), 나머지는 별도 재무제표 기준. 1인당 영업이익의 흑자·적자전환은 전년 대비.

연봉은 대체로 1억 원 안팎, 근속은 13년에서 16년 사이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해에도, 대우건설이 8천억 원대 적자를 낸 해에도, 이 다섯 회사의 조건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노른자를 나눠 갖는 이름값의 벽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리까지 함께 받쳐 주는 셈이다.

다만 맨 오른쪽 칸은 정직하다. 같은 1억 원대 연봉을 받아도, 어떤 회사는 한 사람이 9천만 원대 이익을 만들고, 어떤 회사는 한 사람당 1억 6천만 원의 손실을 나눠 진다. 그리고 여기서 앞의 이야기가 다시 돌아온다. 이 숫자들은 아파트가 아니라 회사 전체의 것이다. 대우건설의 적자도 아파트가 아니라 해외 토목 현장에서 났다. 손실의 대부분이 거기서 나왔다. 이름의 벽은 사람들의 자리를 받쳐 주지만, 회사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정작 그 이름이 붙지 않는 먼 현장들이다.

집이 곧 성벽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성벽을 원한다고 썼다. 그런데 브랜드 아파트야말로 가장 눈에 보이는 형태의 성벽인지도 모른다. 어느 이름의 어느 단지에 사느냐가 하나의 신분처럼 읽히는 사회에서, 그 이름을 사는 일은 집을 사는 게 아니라 성벽을 한 채 들이는 일에 가깝다.

다만 이제는 그 성벽의 이름표가 어디서 왔는지를 안다. 그것은 을의 자리에서, 조합이라는 갑 앞에 이름을 걸고 경쟁한 끝에 따낸 것이다. 우리가 웃돈을 얹어 사는 그 이름은, 누군가 을로서 얻어 낸 이름이다. 벽을 만든 사람과 벽 안에 사는 사람, 그 사이 어디쯤에서 이름값은 조용히 값을 바꾼다.침체가 깊어질수록 이 구조는 오히려 또렷해진다. 못 짓는 곳에는 아무도 가지 않고, 좋은 자리에는 모두가 달려든다. 시장이 어려워질수록 좋은 이름을 가진 쪽으로 모든 것이 쏠린다. 벽은, 바깥이 추워질 때 더 선명해진다.

다음 이야기는 다시 식탁으로 돌아간다. 이번엔 빨간 국물 한 그릇이다. 비 오는 날 우리가 무심코 끓이는 그것, 라면. 신라면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하나의 국민 표준이 되었는지, 그 얼큰한 과점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글은 서사를 맡고, 숫자는 플랫폼이 맡습니다. 이 글의 산업을 데이터로 이어서 보려면 — 밸류체인 지도 · 저평가 스크리너 · Value-chain Analy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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