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를 보았으니, 매일 드나드는 건물의 물리적인 속을 보고자 한다. 우린 아마도 매일 드나드는 어느 건물 속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별생각 없이 벽에 손바닥을 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차갑고, 단단하고, 조금 까끌한 감촉. 페인트 한 겹 아래는 콘크리트이고, 그 콘크리트를 굳게 만든 것은 시멘트라는 잿빛 가루다. 앞의 이야기들에서 나는 매일 먹는 것들을 봤다. 설탕, 맥주, 라면. 이번엔 먹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그 안에 들어앉아 사는 것의 이야기다. 나는 이 가루를 만드는 회사의 이름을 평생 몇 번 소리 내어 부를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잠들고 일하고 밥 먹는 거의 모든 공간의 벽 뒤에, 이 몇 안 되는 회사들이 서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가장 물리적인 벽이다.
다섯이 나눠 쥔 잿빛 시장
국내 시멘트는 대여섯 개 회사가 사실상 전부를 만든다. 쌍용C&E, 한일시멘트, 아세아시멘트, 성신양회, 삼표시멘트. 오랫동안 쌍용이 1위였는데, 2025년 한일시멘트가 계열사를 합치기로 하면서(7월 결의, 11월 통합 출범) 순위가 뒤집혔다.
| 회사 | 내수 점유율 | 비고 |
|---|---|---|
| 한일시멘트그룹 | 약 21.8% | 2025.7 합병 결의(11월 출범), 1위 등극 |
| 쌍용C&E | 약 21.2% | 2024년 상장폐지(사모펀드 인수) |
| 아세아 · 성신 · 삼표 등 | 각 10% 안팎 | 나머지를 나눠 가짐 |
※ 출하량 기준 추정치로, 조사 기관과 연도에 따라 편차가 있다.
시멘트에는 이 과점을 유난히 단단하게 만드는 특징이 하나 있다. 무겁다는 것이다. 시멘트는 멀리 나르면 운임이 상품의 가격을 넘어선다. 그래서 각 회사는 대체로 자기 공장 주변 지역을 나눠 맡는다. 서로의 앞마당을 굳이 넘보지 않아도 각자 먹고살 수 있는 구조다. 전국을 놓고 보면 몇 개 회사가 균형 있게 나눠 쥔, 교과서에 나올 법한 과점이다.
무거움의 문제는 그다음 단계에서 한 번 더 커진다.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 물을 섞어 반죽한 것이 레미콘인데, 이 반죽은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굳어 버린다. 대체로 90분, 한여름에는 그보다도 빨리. 그래서 레미콘은 굳기 전에 현장에 부어야 하고, 공장에서 90분 안에 닿는 거리가 곧 그 공장의 영업 구역 전부가 된다. 시멘트 공장이 원료가 나는 산속에 있다면, 레미콘 공장은 콘크리트를 부을 도심 한복판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이 가루는 이렇게 두 번, 거리에 묶인다.
발밑의 돌, 아궁이의 쓰레기
이 가루가 유난히 국산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멘트의 주원료는 석회석인데, 이 돌이 하필 이 땅에 흔하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다. 철도, 구리도, 석유도 대부분 사서 쓴다. 한때 금이며 아연이며 캐던 광산들도, 소득이 오르고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파내 봐야 남는 게 없어 하나둘 문을 닫았다. 그런데 석회석만은 예외다. 강원도 영월과 삼척, 충북 단양과 제천의 산에는 이 하얀 돌이 지천으로 묻혀 있고, 지금도 국내에서 캐내는 광물의 70% 넘게가 석회석이다. 밖에서 사 오지 않아도 되는, 이 나라의 몇 안 되는 국산 자원인 셈이다. 시멘트 공장이 죄다 강원과 충북의 산골에 모여 있는 것도 그래서다. 무거운 완제품을 나르느니, 돌이 나는 자리에 가마를 짓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만들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거칠다. 석회석에 점토와 규석, 약간의 철 성분을 섞어, 1,450도가 넘는 거대한 가마 안에서 구워 낸다. 그 열에 원료들이 반쯤 녹아 엉겨 붙으면 클링커라는 회색 알갱이가 되고, 여기에 굳는 속도를 조절하는 석고를 조금 넣어 곱게 빻으면 비로소 시멘트가 된다. 우리가 벽에서 만지는 그 매끈한 회색은, 산에서 캔 돌을 불에 구워 가루로 만든 것이다.
그 가마를 데우는 연료 이야기도 해 둘 만하다. 원래 시멘트 가마는 수입 유연탄을 태워 돌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자리를 폐타이어와 폐비닐, 폐합성수지 같은 것들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버려질 쓰레기를 태워 가마를 데우니, 연료값도 아끼고 온실가스도 줄이고 폐기물도 처리한다. 아세아시멘트 같은 곳은 이 순환자원으로 연료의 60% 이상을 대신한다. 시멘트 회사가 슬그머니 친환경과 저탄소를 말하기 시작한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물론 쓰레기를 태워 만든 시멘트라는 꺼림칙함도 함께 따라붙지만, 어느 쪽이든 이 산업이 예전의 그 단순한 시멘트 공장은 아니게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값을 부르던 시절
여럿이 나란히 서서 같은 물건을 팔면, 오래지 않아 같은 유혹이 찾아온다. 서로 눈치껏 값을 맞춰 올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앞마당이 이미 나뉘어 있으니, 값을 맞추는 일은 그만큼 쉽다. 시멘트업계는 그 유혹에 여러 번 넘어갔다.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쌍용을 비롯한 6개 시멘트사가 2011년부터 3년간 점유율과 가격을 짜고 맞춘 사실을 적발해, 1,994억 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쌍용 한 곳에만 874억 원이었다. 같은 해 드라이몰탈이라는 또 다른 제품에서도 3개사가 담합으로 573억 원을 물었다.
이건 이 과점의 오래된 습성이다. 나란히 선 벽은, 서로 약속만 하면 값을 함께 올릴 수 있다. 앞서 본 설탕 회사들이 그랬듯이. 시멘트도 오랫동안, 값을 스스로 부를 수 있는 벽이었다.
그런데, 값을 불러도
2025년, 이 벽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값을 부르는 힘은 그대로인데, 살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 2025년 | 매출 | 영업이익 | 영업이익 증감 | 당기순이익 |
|---|---|---|---|---|
| 쌍용C&E | 1조4,886억 | 1,060억 | -43% | -156억 |
| 한일시멘트 | 1조4,239억 | 1,327억 | -51% | 811억 |
| 아세아시멘트 | 1조228억 | 771억 | -45% | 164억 |
| 성신양회 | 1조2,163억 | 437억 | -18% | 260억 |
| 삼표시멘트 | 6,769억 | 766억 | -26% | 408억 |
기준: FY2025 연결 재무제표(단위: 억원). 영업이익 증감은 전년 대비. 쌍용C&E는 당기순손실(-156억)로 전환.
건설이 멈췄다. 새 아파트도, 새 도로도 예전만큼 짓지 않는다. 그 여파가 시멘트까지 내려오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결국 내려왔다. 2025년 시멘트 출하량은 약 3,650만 톤으로, 34년 전인 1991년 이래 가장 적었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4분의 1이 넘게 줄었다. 한 시장 분석 매체는 이걸 두고 30년 만의 균열이라고 불렀다.
얼마 전 퇴근길에, 나는 오래 멈춰 있는 공사장 하나를 지났다. 철골이 반쯤 올라간 채로 방진막이 바람에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며 생각했다. 저 멈춘 자리 하나하나가, 어딘가의 소성로에서 팔리지 못한 잿빛 가루로 남아 있겠구나.
여기서 이야기가 한 번 뒤집힌다. 값을 부를 수 있는 벽. 시멘트는 담합으로 그것을 여러 번 증명했다. 그런데 2025년의 텅 빈 공사장은 그 힘의 뒷면을 보여 준다. 값을 부를 수 있어도, 그 값에 살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높은 벽도, 그 안의 마당이 마르면 힘을 잃는다. 그 원인은 너무나 복합적이다. 건설경기가 힘을 잃게 된 것은 원자재 상승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정부의 주택 정책이 영향을 미치게 되고, 허가에서 착공에 이르기까지 건설사가 실행하는 그 시간의 텀이 3~5년은 족히 걸린다. 이는 또 자금을 조달하는 PF의 문제도 함께 엮이게 된다.
불을 끄지 않는 자리
시멘트는 한번 불을 붙이면 좀처럼 끄지 않는 거대한 가마, 소성로로 만든다. 24시간 돌아가는 장치산업이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오래 머문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 회사 | 직원수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 | 1인당 매출 | 1인당 영업이익 |
|---|---|---|---|---|---|
| 쌍용C&E | 1,091명 | 1억 162만원 | 16.9년 | 약 13.6억원 | 약 9,700만원 |
| 한일시멘트 | 980명 | 8,456만원 | 16.4년 | 약 14.5억원* | 약 1.4억원* |
| 아세아시멘트 | 495명 | 9,533만원 | 9.8년 | 약 9.2억원 | 약 8,600만원 |
※ FY2025 DART 공시 기준. 쌍용C&E는 연결(2025년 12월 합병으로 마지막 공시), 아세아는 별도 기준. *한일은 연결 실적(매출 1조4,239억·영업이익 1,327억)을 본사 인원으로 나눈 어림값.
천 명 남짓한 사람들이 1인당 한 해 10억 원어치가 넘는 가루를 만들고, 16년씩 머문다. 장치산업의 밀도란 이런 것이다. 사람보다 가마가 크고, 가마의 시간에 맞춰 사람의 시간도 길어진다. 16년이면 신입으로 들어온 사람이 소성로의 버릇을 제 몸처럼 알게 되는 시간이다. 그런데 2025년에는 그 밀도가 통째로 눌렸다. 1인당 10억이라는 두터운 숫자는 어디까지나 마당에 살 사람이 있을 때의 숫자였고, 수요가 무너지자 세 회사의 이익은 반 토막 안팎으로 함께 주저앉았다. 밀도가 높은 산업일수록, 눌릴 때도 다 같이 눌린다.
그리고 2025년에는 그 단단한 공장에서도 소성로의 불을 잠시 끄는 일이 생겼다. 팔 데가 없으니 만들 이유도 줄어든 것이다. 좀처럼 끄지 않던 가마를 끈다는 건, 이 산업이 겪어 본 적 없는 종류의 겨울을 지나고 있다는 뜻이다. 벽이 아무리 견고해도, 마당이 비면 그 안의 불도 하나둘 꺼진다.
부동산 공급 절벽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고 있다. 거주해야 할 아파트 가격에 대한 우려에는 집중하고 있으면서, 그 밑바탕이 되는 산업의 생존은 무심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매일 생활하며 살고 있는 이 건물의 그 차갑고 단단한 감촉은 어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 나는 어떠한 정책과 현상이 그 단단함을 무르게 하며, 값을 부를 힘을 갖고도 살 사람을 잃은 회사들의 사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잠시 꺼진 가마를 떠올리며, 시멘트 산업의 2025년을 보면 향후 몇 년간 시멘트 업계의 직원들은 구조적 변화로 인해 찾아온 겨울을 버텨야만 할 것을 알 수 있다. 나라의 성장이 감소하게 되며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이 시간이 어쩐지 조금 쓸쓸하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다시 식탁으로 돌아가, 밥과 빵과 과자의 맨 밑에 깔린 또 다른 과점을 본다. 시멘트가 값을 불러도 팔지 못한 해에, 정반대로 값을 불러 제대로 재미를 본 회사들이 있다. 최근 사상 최대의 담합 과징금을 나란히 맞은, 밀가루와 전분의 회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