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한국거래소가 문이 방금 열린 벽이었다면, 이번 회사들은 문이 오래전부터 열려 있던 벽이다. 그런데 그 문의 존재를 우리는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회사들 자체가 우리 눈에 거의 안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보험에 든다. 실손보험, 자동차보험, 화재보험. 그런데 그 보험회사에 정말 큰일이 한꺼번에 터지면, 대형 태풍이나 항공기 사고처럼 감당하기 힘든 청구가 몰리면, 보험회사는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할까. 답은 조금 허무하다. 보험회사도 보험에 든다. 그걸 재보험이라 부른다.
보험사가 드는 보험
재보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업이다. 우리가 직접 재보험에 들 일은 평생 없다. 오직 보험회사만이 고객이다. 그래서 대중은 이 시장의 존재조차 잘 모르지만, 이 시장에도 오랫동안 사실상 하나뿐인 회사가 있었다. 코리안리다. 이 회사는 1963년 대한손해재보험공사라는 국영기업으로 출발했고, 오랫동안 국내에서 나오는 재보험 물량을 먼저 넘겨받는 제도의 보호를 받았다. 강원랜드가 법으로 카지노를 독점했듯, 코리안리는 제도의 힘으로 재보험을 독점했다.
그런데 이 벽에는 처음부터 문이 나 있었다. 해외의 거대한 재보험사들이다. 우선출재제도(국내 재보험 물량을 코리안리가 먼저 가져가는 제도)가 폐지되고 이들이 들어오면서, 코리안리의 국내 점유율은 2022년 68.9%에서 2024년 56.5%까지 조금씩 내려앉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거래소에서 봤던 그 역설이 또 나타난다. 점유율이 깎이는 와중에도, 2025년 코리안리의 순이익은 3,220억 원으로 창사 이래 가장 컸다. 비결의 절반은 굴리는 돈에 있었다. 수십 년 쌓아 온 자산의 운용수익률이 6%에 가까웠고, 큰 사고 없이 손해율이 안정된 한 해가 나머지 절반을 채웠다. 벽이 낮아지는 순간에도, 오래 모은 돈이 회사를 떠받쳤다.
코리안리가 못 쥐는 것
그러나 코리안리가 국내 1위라는 말에는 숨은 각주가 있다. 정말 크고 까다로운 위험은, 이 1위가 쥐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 이전에 기업인수합병을 진행할 때 매도자 측이 요구해서 알게 된 보험의 형태인데, 기업을 인수합병할 때 드는 W&I라는 보험이 있다. 매도인이 ‘이 회사에 숨은 문제가 없다’고 한 약속이 나중에 틀린 것으로 드러날 때를 대비하는 보험이다. 그런데 이 보험에서 국내 보험사들이 소화할 수 있는 것은 1천억 원을 넘지 않는 작은 거래까지다. 그보다 큰 거래의 위험은 해외 재보험사들의 자본이 받치고, 국내 회사는 증권을 발행하는 창구 역할에 가깝다.
게다가 이런 큰 거래를 보험사와 연결해 주는 중개마저 국내 회사의 몫이 아니다. 마쉬(Marsh)와 에이온(Aon)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두 보험중개사가 이 시장을 사실상 나눠 쥐고 있다. 보험중개사란 보험에 드는 쪽과 그 위험을 떠안는 보험사 사이에 서서, 위험을 설계하고 보험료를 협상해 계약을 붙여 주는 회사다. 각각 미국과 영국에 뿌리를 둔 이 두 회사는 전 세계 대형 기업보험과 M&A 보험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어서, 한국 기업이 조 단위 인수합병에 보험을 들려 해도 결국 이들의 문을 거쳐야 한다.
위험을 떠안는 자본도, 그 위험을 중개하는 손도 모두 바다 건너에 있는 셈이다. 무역과 해운에서 배가 사고를 낼 때를 대비하는 P&I 보험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는 오래전부터 몇 개의 글로벌 상호보험 조합이 사실상 세계를 나눠 쥐고 있어서, 한국 선주들도 대부분 그 문을 통해 보험에 든다. 요컨대 코리안리의 벽은 문이 열려 있는 정도가 아니라, 가장 값나가는 방들은 처음부터 해외가 차지하고 있었다. 국내 1위라는 자리는, 남이 다 가져가고 남은 것들 중의 1위이기도 했던 셈이다.
계약서 뒤의 보증
같은 ‘안 보이는 보험’ 중에서도, 정반대로 문이 거의 없는 회사가 있다. 서울보증보험이다. 우리가 부동산 사무실에서 무심코 서명한 안내문 뒤에 서 있던 회사가 바로 여기다. 우리는 이 회사와 직접 계약한 기억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전세 계약을 하거나 할부로 물건을 사거나 건설사가 공사를 맡을 때, 심지어 회사에 취업할 때조차, 그 계약서 뒤편에는 종종 서울보증의 보증이 조용히 끼어 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대신 물어 주겠다는 보증이다.
실제로 일상에서는 어떤 회사는 신규 직원에게 입사 조건으로 신원보증을 요구하는데, 예전 같으면 보증을 서 줄 사람을 직접 구해야 했을 그 자리를, 이제는 서울보증이 발행하는 신원보증보험 한 장이 대신한다. 직원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회사에 대신 물어 주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이 회사의 독점은 아주 노골적이다. 보험업법이 보증보험을 전업으로 하는 회사를 사실상 하나만 허락하기 때문이다. 코리안리의 문은 늘 열려 있었지만, 서울보증의 문은 법이 아예 잠가 두었다.
2025년 서울보증은 순이익 2,684억 원을 냈고, 3월에는 증시에 상장까지 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진짜 흥미로운 대목은 그 이익이 어디로 가느냐에 있다. 서울보증은 그해 2,000억 원을 배당했고, 그 배당을 가장 많이 받는 주주는 상장 뒤에도 지분 83.85%를 쥔 예금보험공사, 다시 말해 정부다. 앞서 나는 국민 맥주 카스의 이익이 벨기에 본사로 흘러간다고 적었다. 서울보증은 정확히 그 반대다. 이 독점의 이익은 국경을 넘기는커녕 곧장 국고로 돌아간다. 과거 이 회사를 살리는 데 들어간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굴리는가, 보험료가 남는가
여기서 두 회사가 실제로 얼마를, 그리고 어디서 버는지를 들여다보자.
보험사의 살림은 조금 특이하다. 매출에 해당하는 것이 ‘보험수익’, 곧 한 해 거둬들인 보험료이고, 이익은 크게 두 군데서 나온다. 하나는 받은 보험료에서 나간 보험금과 사업비를 빼고 남는 보험영업손익, 다른 하나는 그 보험료를 쌓아 두고 굴려서 얻는 투자손익이다. 보험사는 보험을 파는 회사이면서, 동시에 그 보험료를 굴리는 거대한 펀드이기도 한 셈이다.
| 회사 | 대주주 | 매출(보험수익) | 보험영업손익 | 투자손익 | 당기순이익 |
|---|---|---|---|---|---|
| 코리안리 (재보험) | 지배주주 없음 | 약 5.0조 | 2,265억 | 2,432억 | 3,220억 |
| 서울보증 (보증보험) | 예금보험공사 83.85% | 약 2.2조 | 2,523억 | 1,234억 | 2,684억 |
※ FY2025 연결(IFRS17). 매출은 한 해 인식한 보험료(보험수익)이고, 보험영업손익과 투자손익을 더한 것이 영업이익이다. 코리안리 순이익 3,220억 원은 창사 이래 최대다.
표의 두 손익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보험의 보험’인데도 돈이 남는 자리가 정반대다. 코리안리는 두 손익을 합친 영업이익 4,709억 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2,432억 원이 보험이 아니라 투자에서 나왔다. 전 세계에서 받은 재보험료를 쌓아 굴리는 자산이 워낙 커서, 큰 사고만 터지지 않으면 이 곳간이 본업만큼, 어떤 해엔 본업보다 더 번다. 재보험사는 위험을 떠안는 회사인 동시에, 그 대가로 받은 돈을 굴리는 펀드에 가깝다.
서울보증은 정반대다. 영업이익 3,757억 원의 3분의 2가 보험영업에서 나왔다. 보증보험은 계약자가 약속을 지키는 한 사고가 나지 않고, 그러면 받은 보증료가 거의 그대로 이익으로 남는다. 대신 경기가 나빠져 부도와 미이행이 늘면 대신 물어 줘야 할 돈이 불어나 이 이익이 출렁인다. 2025년은 사고가 적었던 해였고, 그래서 본업에서만 2,523억 원을 남겼다. 한쪽은 굴려서 벌고, 다른 한쪽은 사고가 안 나서 번다.
돈이 남는 자리만 다른 게 아니라, 그 돈의 임자도 정반대다. 코리안리는 창업주 원혁희 회장의 가문, 곧 지금의 원종규 사장과 형제들이 경영한다. 그런데 정작 오너 일가의 지분은 다 합쳐도 20%가 될까 말까 하다. 확고한 지배주주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주인이 뚜렷하지 않은 회사다.
애초에 이 가문이 국영으로 출발한 회사의 주인이 된 내력부터가 특이하다. 창업주라 부르는 원혁희 회장은 이 회사를 세운 사람이 아니라, 원래 건설회사 풍림산업을 이끌던 사업가였다. 그가 1998년 외환위기로 값이 크게 떨어진 대한재보험의 지분을 사들여 대주주가 됐고, 2002년 이름을 지금의 코리안리로 바꿨다.
국가가 세워 민영화한 재보험 독점을, 위기의 한복판에서 한 사업가가 사들여 손에 넣은 셈이다. 이런 부분은 이전에 다뤄본 한국알콜의 사례와 언듯 비슷하다. 한국알콜도 초대회장인 지창수 회장이 국세청 고위공무원 출신이었는데, 과거 유공이 쪼개지며 SK와 한국에탄올로 민영화 되면서 한국에탄올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공업용에탄올 면허를 잠궈버리며 독점 기업이 되었던 그 일례이다.
어떻든 창업주는 이후 재보험에 정통한 ‘업계의 대부’로 불렸고, 2013년 아들 원종규가 사장으로 뒤를 이었다. 다만 그때 사들인 지분이 회사를 완전히 장악할 정도는 아니었던 탓에, 최대주주라야 지금도 창업주의 부인이 쥔 6%대 지분이 전부다. 그래서 경영권을 어떻게 지키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어떻게 세울지가 늘 이 회사를 따라다니는 숙제다.
반대로 서울보증은 지분의 83.85%를 정부, 곧 예금보험공사가 쥔 사실상의 공기업이다. 한쪽의 이익은 주인이 흐릿한 채 흩어진 주주들에게 돌아가고, 다른 쪽의 이익은 배당이 되어 또렷한 하나의 주인, 국고로 향한다. 그리고 바로 그 국고로 돈을 보내는 주인, 예금보험공사가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통장 뒤의 마지막 안전판
서울보증의 주인이라는 그 예금보험공사는, 사실 이 파이프라인의 맨 안쪽에 앉은 회사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어떤 벽과도 다르다. 코리안리의 문은 늘 열려 있었고 서울보증의 문은 법이 잠갔지만, 예금보험공사에는 애초에 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예금보험을 대신 해 줄 다른 회사를 상상해 보라.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벽이니까.
하는 일은 단순하다.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저축은행 같은 금융회사들에게서 보험료를 걷어 커다란 기금을 쌓아 두고, 어느 금융회사가 무너져 고객의 예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면 그 돈을 대신 지급한다. 우리가 통장에 돈을 맡기며 ‘망하면 어쩌지’를 거의 걱정하지 않는 건, 이 보이지 않는 안전판이 통장 뒤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2025년 9월에는 그 안전판이 조금 더 넓어져, 보호 한도가 24년 만에 5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올랐다. 금융회사들이 이 보험을 위해 예보에 내는 돈은 2025년에만 2조 5천억 원을 넘는다. 우리가 한 번도 낸 적 없는 이 보험료가, 사실은 우리 예금의 안전을 떠받치고 있다. 그 거대한 안전판을 지키는 사람은, 정작 800명이 채 안 된다.
이윤이 아니라, 신뢰를 지키는 벽
여기서 이 회사는 앞의 모든 벽과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지금까지 본 벽들은 예외 없이 돈을 벌기 위해 서 있었다. 카지노도, 통신사도, 심지어 값을 못 부르던 코리안리조차 이익을 남기려 애썼다. 그런데 예금보험공사는 이익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주가도, 배당을 노리는 주주도 없다. 이 벽은 돈이 아니라 신뢰를 지키기 위해, 나라가 일부러 세운 것이다.
그래서 이 회사 앞에서는 이 책이 줄곧 던져 온 질문마저 미끄러진다. ‘값을 스스로 부를 수 있는가’라고 물어도, 예보는 애초에 값을 부르려는 회사가 아니다. 오직 하나의 임무, 사람들이 은행 앞에 줄 서지 않게 하는 것 만이 있다. 이 벽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 무언가 무너질 때뿐이다. 외환위기 때 부실 금융회사를 정리하며 공적자금을 쏟은 것도,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때 예금자들의 돈을 대신 물어 준 것도 이 회사였다. 앞서 본 서울보증의 주인이 예보였던 것도, 그렇게 쏟아부은 공적자금을 되찾는 과정에서 생긴 인연이다.
지금까지의 독점들이 ‘막아서 번다’였다면, 이 벽은 ‘막아서 지킨다’에 가깝다. 어떤 벽은 누군가의 지갑을 불리려고 서 있고, 어떤 벽은 모두의 지갑을 지키려고 서 있다. 그러니 독점을 볼 때, 우리는 하나를 더 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벽은, 대체 누구를 위해 서 있는가.
이름 모를 뒷방, 부러운 자리
| 회사 | 직원수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 | 1인당 순이익 |
|---|---|---|---|---|
| 코리안리 | 446명 | 1억 7,650만원 | 10.7년 | 약 7.2억원 |
| 서울보증보험 | 1,547명 | 1억 1,999만원 | 13.9년 | 약 1.7억원 |
| 예금보험공사 | 약 780명 | 약 9,400만원 | 약 14.5년 | - |
※ 2025년 공시 기준(예금보험공사는 공공기관 ALIO 최근 공시 집계). 1인당 순이익은 2025년 순이익(코리안리 3,220억 원, 서울보증 2,684억 원)을 직원 수로 나눈 어림값이며, 예금보험공사는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 1인당 순이익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 조용한 벽 안의 삶은, 두 회사 모두 금융권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연봉이다. 코리안리의 평균 연봉은 공시 기준 1억 7,650만 원에 이르고 평균 근속은 11년에 가까우며, 서울보증도 평균 1억 2천만 원 안팎이다. 대중은 이름도 모르는 이 뒷방이, 정작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게다가 뽑는 인원이 워낙 적어서, 이런 회사들은 은행이나 대기업을 노리는 문과 졸업생들 사이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직장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눈에 띄지 않는 벽일수록, 정작 그 문을 통과하기는 더 좁은 셈이다. 그런데 이 표에서 내가 자꾸 되돌아가게 되는 숫자는 연봉이 아니라 맨 왼쪽에 있다. 446명. 이 나라 모든 보험의 뒤를 받치는 회사가, 인원으로만 보면 중소기업이다.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1년에 7억 원씩을 남긴다. 안 보이는 벽일수록, 사람의 밀도는 높아진다. 벽이 조용할수록, 그 안은 대체로 안온하다.
재보험과 보증, 그리고 예금보험. 우리가 평생 그 이름을 몇 번 마주칠 일 없이 살아갈 회사들이다. 그런데 이 셋을 나란히 놓으면, 문이 조금씩 닫혀 가는 스펙트럼이 보인다. 코리안리의 문은 늘 열려 있어 가장 값나가는 자리를 해외에 내주었고, 서울보증의 문은 법이 잠가 견고하되 그 이익이 국고로 돌아가며, 예금보험공사에 이르면 문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진다. 문이 얼마나 열렸는가, 그 안의 이익이 어디로 흐르는가, 그리고 그 벽은 누구를 위해 서 있는가. 같은 ‘안 보이는 독점’도 이 질문들 앞에서 저마다 다른 얼굴을 보인다. 다음에 어딘가에 또 도장을 찍을 일이 생기면, 나는 그 서류 뒤에 서 있는 회사의 이름을 한 번쯤 떠올리게 될까. 아마 그때도 나는 무심히 서명할 것이다. 다만 조금 다르게 무심할 것이다.
다음 이야기의 회사들은, 문이 또 다른 방식으로 잠긴 곳이다. 해외의 거인들이 분명히 있는데도 국내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면허라는 자물쇠로 잠긴 과점. 회사의 신용에 알파벳으로 등급을 매기는 세 회사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