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습관적으로 밥을 먹다 말고 스마트폰을 꺼내 주식 앱을 열었다. 오래 들고 있던 종목 하나를 정리하기로 한 참이었다. 빨간 버튼과 파란 버튼 사이에서 잠깐 망설이다 파란 쪽을 눌렀고, 잠시 뒤 화면에 ‘체결’이라는 두 글자가 떴다. 나는 그 두 글자를 확인하고 식사를 마저 이어갔다. 내 주문이 어디로 가서 누구의 주문과 만났는지는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은 채로.
그런데 그 짧은 순간, 내 주문과 누군가의 주문이 만난 장소가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 그 장소를 지난 70년간 단 하나의 회사가 운영해 왔다. 한국거래소, 흔히 KRX라고 부르는 곳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벽들을 지나왔다. 카지노와 담배, 전기와 가스, 앱과 요금제, 그리고 우리가 매일 먹는 것들. 이제 그 벽들 밑으로 한 층 내려간다. 돈이 흐르는 배관이다. 평상시엔 전혀 보이지 않다가, 무언가 열리거나 무너지는 순간에만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독점들. 그 첫 번째가, 우리가 주식을 하면 할 수록 알아서 배가 불러가는 이 회사이다.
70년의 벽
이 벽은 유난히 완벽했다. 한국거래소는 주식이 상장되는 문도, 매매가 체결되는 마당도, 거래가 최종적으로 청산되는 뒷정리까지도 홀로 쥐고 있었다. 앞서 본 벽들 중에는 법이 세운 것도, 습관이 세운 것도 있었는데, 이 벽은 그 모두에 가까웠다. 자본시장이라는 건물의 현관이자 로비이자 지하 배관실을, 한 회사가 통째로 관리해 온 셈이다.
왜 하나여야 했을까
그런데 왜 하필 하나였을까. 거래소가 여럿이면 안 되는 걸까. 여기에는 이 사업의 독특한 성질이 있다. 시장은 사람이 모인 곳으로 더 많은 사람을 부른다. 내가 주식을 팔려면 사 줄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려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 곧 가장 빨리, 가장 좋은 값에 거래되는 곳이다. 그래서 거래는 자연히 한자리로 쏠린다. 유동성이 유동성을 부르는 것이다. 거래소를 열 곳으로 쪼개 놓으면, 주문은 열 군데로 흩어져 서로를 좀처럼 못 만나고, 값은 제각각이 되며, 결국 아무도 득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의 거래소는 대체로 하나이거나, 많아야 두엇이다. 이건 누가 억지로 세운 독점이라기보다, 시장이 스스로 골라낸 독점에 가깝다.
한국은 그 위에 법을 한 겹 더 얹었다. 자본시장법이 오랫동안 거래소를 하나로 못 박아 두었다. 자연이 쏠리게 만든 자리를, 제도가 다시 한번 잠근 셈이다. 그래서 이 벽은 유독 두꺼웠고, 70년이나 갔다.
문이 열린 해
그런데 2025년 3월, 그 문이 열렸다. 넥스트레이드라는 이름의 대체거래소가 문을 열면서, 70년 만에 처음으로 주식을 체결할 수 있는 장소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놀라운 건 속도였다. 새 거래소는 문을 연 지 두 달여 만에, 거래 가능 종목 기준으로 전체 거래대금의 4분의 1을 가져갔다. 반년 뒤에는 3분의 1에 다가섰다. 강원랜드의 카지노 면허나 서울보증의 보험업법처럼, 한국거래소의 벽도 결국 제도가 세운 것이었고, 제도가 마음을 바꾸자 그 벽에 순식간에 금이 갔다.
이 새 거래소를 세운 건 정부가 아니다. 금융투자협회가 발기하고, 미래에셋과 삼성, KB, 한국투자 같은 증권사 수십 곳에 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페이 같은 IT 회사, 예탁결제원·코스콤 같은 유관기관까지 34개사가 함께 출자한 민간 컨소시엄이다. 초대 대표는 금융결제원장을 지낸 김학수가 맡았다. 흥미로운 건 어느 한 곳도 이 새 노다지를 독차지하지 못하도록 지분을 잘게 나눠 놓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원래 한국거래소의 회원사, 그러니까 70년간 거래소에 통행료를 내 온 고객이었다. 통행료를 내던 사람들이 힘을 모아, 통행료를 걷는 두 번째 문을 직접 낸 셈이다.
다만 문이 활짝 열린 것은 아니다. 대체거래소는 전체 거래의 15%까지만 맡을 수 있게 법으로 묶여 있다. 유동성이 너무 흩어지면 시장 전체가 손해라는, 앞서 말한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넥스트레이드는 순식간에 그 15%를 훌쩍 넘어 버렸고, 이제는 그 빗장을 얼마나 풀어 줄지가 다음 숙제가 되었다. 문을 열되, 유동성이 한곳으로 쏠리는 자연의 힘까지 풀어 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런데, 가장 많이 벌었다
여기서 이 이야기의 역설이 시작된다. 70년 독점이 깨진 바로 그해, 한국거래소는 창사 이래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
| 한국거래소 (연결, 억원) | 2025년 | 2024년 |
|---|---|---|
| 매출 (영업수익) | 16,258 | 13,449 |
| 영업이익 | 5,772 | 3,776 |
| 금융수익 | 7,655 | 5,507 |
| 당기순이익 | 7,089 | 4,243 |
※ FY2025 연결 감사보고서(억원). 거래소는 매출을 ‘영업수익’으로 잡는다. 당기순이익이 영업이익보다 큰 것은 쌓인 자산에서 나오는 금융수익 때문이며, 연결 실적에는 자회사 한국예탁결제원·코스콤 등이 포함된다. 다만 이 금융수익 7,655억 원은 총액이라, 반대편의 금융원가(2,442억)·기타비용(2,101억)과 상당 부분 상쇄된다.
거래소가 돈을 버는 방식은 뜯어보면 단순하다. 주식이 상장될 때 한 번, 매매가 체결될 때 또 한 번, 그 거래가 청산될 때 다시 한 번. 지날 때마다 아주 작은 통행료를 뗀다. 그 통행료는 정말로 작다. 주식을 사고팔 때 거래소가 가져가는 몫은 거래금액의 0.0027%, 1억 원어치를 거래해도 2,700원 남짓이다. 그런데 그 티끌이 한 해에 오간 수천조 원의 거래마다 일일이 곱해지면, 거래와 청산에서만 5,684억 원이 된다. 여기에 그 모든 거래가 남긴 시세와 데이터를 되팔아 또 번다. 한 번 깔아 둔 배관 위로 거래가 지나가기만 하면 되는 장사라, 거래가 늘수록 이익은 거의 그대로 불어난다.
애초에 이 회사엔 원가라고 할 것이 별로 없다. 사 올 원재료도, 쌓아 둘 재고도 없이 파는 것이 오직 체결이라는 서비스뿐이라, 비용이라고 해 봐야 대부분 직원 월급과 매매 시스템을 돌리는 돈이다. 그래서 거래가 두 배로 늘어도 비용은 좀처럼 두 배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2025년 매출은 한 해 만에 21% 뛰었는데, 그걸 처리하는 비용은 8% 남짓 늘었을 뿐이다. 그렇게 남은 것이, 영업수익 1조 6천억 원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5,772억 원이다.
헷갈리기 쉬운데, 이 통행료는 우리가 증권사 앱에서 매매할 때마다 떼이는 그 수수료와는 다른 돈이다. 투자자가 내는 거래수수료는 주문을 대신 넣어 준 증권사의 몫이고, 거래소는 그 뒤에서 증권사, 곧 회원사로부터 따로 이용료를 받는다. 우리 눈에는 증권사 수수료만 보이고, 거래소가 떼는 통행료는 그 안쪽에 한 겹 숨어 있는 셈이다.
거래소가 한 해에 별도 기준으로 벌어들인 영업수익을 항목별로 뜯어보면 그림이 더 분명해진다. 절반을 훌쩍 넘는 4,508억 원이 매매에서 떼는 거래수수료다. 그다음이 거래를 최종 정리하는 청산결제수수료 1,175억 원, 그 모든 거래가 남긴 시세와 데이터를 되파는 시장정보 이용료 766억 원 순이다. 정작 흥미로운 건 ‘상장’으로 버는 돈이 생각보다 작다는 점이다. 기업을 처음 증시에 올릴 때 받는 상장수수료는 다 합쳐 193억 원, 상장사들이 해마다 내는 유지비까지 더해도 260억 원 남짓이다. 아무리 큰 기업이 화려하게 상장해도 거래소가 그때 받는 입장료는 한 줌이고, 진짜 돈은 그 뒤로 매일같이 오가는 거래의 통행료에서 나온다. 거래소는 문을 한 번 열어 주는 장사가 아니라, 그 문으로 끝없이 지나다니게 하는 장사인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절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거래소에는 오래 쌓인 거대한 곳간이 있다. 회원사들이 맡긴 증거금과 스스로 벌어 모은 유보금까지, 자산이 24조 원에 가깝다. 이 돈을 굴려 얻은 이자와 투자수익만 그해 7,655억 원. 통행료로 남긴 영업이익보다도 큰 돈이, 쌓아 둔 자산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한국거래소는 통행료를 받는 회사이면서, 동시에 그 통행료를 굴리는 거대한 펀드이기도 하다. 사상 최대 순이익 7,089억 원의 절반가량은, 사실 매매가 아니라 그 곳간에서 나온 셈이다.
그리고 2025년, 이 두 엔진에 한꺼번에 불이 붙었다. 증시로 돈이 몰려 거래가 폭발하자 통행료가 불었고, 시장이 뜨거워지자 곳간의 투자수익까지 함께 부풀었다. 비결은 벽이 아니라 날씨에 있었던 셈이다. 벽에 금이 가는 소리를, 창밖의 요란한 축제 소리가 덮어 버린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붐비는 마당 한구석에는 내 국수 값만 한 주문도 끼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수수료를 낸 기억조차 없는데, 그 기억나지 않는 돈들이 모여 사상 최대라는 숫자를 만들었다. 이건 앞서 반도체에서 본 역설과 닮았다. 몫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시장 전체가 커지면 당장의 이익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다만 그 이익은 벽이 튼튼해서가 아니라, 마당이 잠시 붐벼서 나온 것이다. 착시는 대체로, 가장 좋아 보일 때 가장 위험하다.
천 명과 백 명
| 회사 | 직원수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 | 1인당 순이익 |
|---|---|---|---|---|
| 한국거래소 | 1,005명 | 1억 3,198만원 | 약 13년 | 약 7.1억원 |
| 넥스트레이드 | 약 100여 명 | 1억 3천만원 안팎 | - | 약 2.0억원 |
※ 2025년 공시 기준. 1인당 순이익은 한국거래소는 연결 순이익 7,089억 원, 넥스트레이드는 순이익 205억 원을 각각 직원 수로 나눈 어림값이다. 넥스트레이드는 비상장이라 정확한 직원 수가 공시되지 않아, 급여 총액(약 137억 원)과 개장 첫해 규모로 100여 명 안팎으로 추정했다.
이 조용한 벽 안의 삶은 역시 평안하다. 한국거래소 직원의 평균 근속은 13년에 이르고, 평균 연봉은 1억 3천만 원을 넘는다. 시장의 인프라를 관리하는 회사답게, 사람들은 오래 머문다. 그런데 이 표에서 정말 들여다봐야 할 숫자는 맨 오른쪽에 있다. 천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모든 매매를 관리하고, 한 사람이 1년에 7억 원씩을 남긴다. 배관이라는 자리의 밀도는 이런 것이다. 벽이 열린 해에도 그 안의 시간표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벽의 균열과 벽 안 사람들의 안정은, 종종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표 아래쪽, 이제 막 문을 연 회사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넥스트레이드의 인력은 백 명 남짓으로, 한국거래소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이 작은 회사가 2025년 개장 첫해에 매출 644억 원, 순이익 205억 원을 남기며 곧바로 흑자를 냈다. 70년 된 벽이 사상 최대 이익을 내던 바로 그해, 그 벽을 두드린 신생 회사도 첫해부터 돈을 번 것이다. 붐비는 마당은 오래된 주인과 새 도전자를 한꺼번에 배불렸다. 다만 한쪽은 천 명이 13년을 머무는 회사이고, 다른 쪽은 백 명이 이제 막 첫 페이지를 쓰기 시작한 회사다.
한국거래소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오래된 벽 옆에 다른 사업자가 새 문을 내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보여 준 회사다. 다만 그 문은 체결이라는 한 겹에만 났을 뿐, 청산과 상장이라는 더 두꺼운 벽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곁에서 오히려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는 사실이야말로, 독점을 볼 때 손익계산서의 맨 윗줄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어느 겹의 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그리고 그것이 남의 파이를 나눈 것인지 파이 자체를 키운 것인지를 함께 봐야 한다. 다음에 내가 파란 버튼을 누를 때, 그 체결은 여전히 같은 마당에서 일어날까, 아니면 어느새 다른 마당으로 건너가 있을까. 화면의 두 글자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두 회사는, 한쪽이 다른 쪽을 무너뜨리는 대신 규제가 그어 준 선 안에서 나란히 공존하게 된 드문 사례로 남을 것이다. 정규장에서는 같은 주문을 두고 겹쳐 경쟁하지만, 청산이라는 안쪽 벽은 여전히 한국거래소가 홀로 쥔 채로.
그런 눈으로 보면, 금융의 배관에는 저마다 다르게 열린 문들이 있다. 한국거래소는 문이 방금 열린 곳이다. 다음 이야기의 회사는, 문이 늘 열려 있었던 곳이다. 우리가 보험이라 부르는 것들의 뒤편에서, 그 보험을 다시 보증하는 회사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