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뉴스를 넘기다가, 어느 건설사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 내려갔다는 기사를 읽었다. A+가 A가 되었다는, 알파벳에서 기호 하나가 떨어져 나간 이야기였다. 나는 그 회사의 채권을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잠깐 마음이 어두워졌고, 커피가 식기 전에 그 일을 잊었다. 그런데 그 떨어져 나간 기호 하나 때문에, 어딘가에서는 수백억 원의 이자가 새로 계산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글자를 매기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일까. 그날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앞의 재보험이 문이 열려 있는 벽이었다면, 이번 회사들의 문은 면허라는 자물쇠로 잠겨 있다. 해외의 거인들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들이 국내로 직접 들어오지 못하는 벽이다.
회사에도 성적표가 있다. 알파벳 세 글자, AAA에서 시작해 D까지. 이 짧은 기호 하나가 그 회사가 돈을 빌릴 때 물어야 하는 이자를 좌우한다. AAA와 BBB 사이에서 수백억 원의 조달 비용이 갈리기도 한다. 그러니 이 알파벳은 꽤 무거운 글자다. 그런데 이 무거운 글자를 매기는 회사는, 한국에 딱 셋뿐이다.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NICE신용평가.
셋이 나눠 선 벽
세 회사가 나눠 가진 몫은 거의 완벽하게 균등하다. 셋을 합치면 국내 회사채 신용평가 시장의 99%에 이르고, 그 점유율은 오랫동안 3분의 1씩, 마치 자를 대고 그은 듯 나뉘어 있었다. 이건 담합의 결과가 아니다. 신용평가업은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아야만 할 수 있는 면허 사업이고, 회사채에 등급을 매기는 시장의 면허는 사실상 이 셋에 머물러 왔다. 새 경쟁자가 들어오려야 들어올 문이 없었다. 강원랜드의 카지노 면허, 서울보증보험의 보험업법 벽과 같은 계보다. 다만 이번엔 그 벽 안에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 앉아 있을 뿐이다.
이 균등함에는 제도가 한몫한다. 우리나라에서 웬만한 회사가 회사채를 찍으려면, 신용등급을 한 곳이 아니라 둘 이상에서 받아 오는 것이 오랜 관행이다. 한 장의 성적표에 최소한 두 개의 도장이 필요하니, 발행이 있을 때마다 일감은 자연스럽게 세 회사로 흩어진다.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눠 갖도록 설계된 시장에 가깝다.
벽의 절반은 뉴욕에 있다
세 회사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이건 나도 지분 구조를 찾아보고 조금 놀랐는데, 이 셋 중 둘은 한국 회사가 아니다. 한국신용평가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분 100%를 가진 자회사이고, 한국기업평가의 대주주는 또 다른 글로벌 3대 평가사 피치다. 오직 NICE신용평가만이 국내 자본 소유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전 세계 신용평가 시장 역시 무디스, S&P, 피치라는 단 세 회사가 95%를 넘게 나눠 갖고 있다. 앞 장에서 코리안리의 가장 값나가는 방들을 해외가 차지하고 있었듯, 신용등급의 세계에서도 국내 벽의 절반 이상은 이미 뉴욕과 런던의 것이다. 다만 방식이 다르다. 면허로 문이 잠겨 있으니, 이들은 문 대신 창문으로 들어왔다. 국내 회사의 지분을 통째로 사들이는 방식이다. 그리고 한신평과 한기평이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은, 결국 배당이 되어 그 창문 밖으로 흘러 나간다.
돈을 주는 손에 점수를 매기다
이 벽에는 누가 봐도 이상한 구조가 하나 숨어 있다. 신용등급을 받는 데는 돈이 드는데, 그 돈을 평가받는 회사 자신이 낸다는 것이다. 채권을 발행하려는 기업이 평가사에 수수료를 내고 등급을 받아 온다. 여기엔 분명한 긴장이 있다. 나에게 돈을 주는 고객에게, 나는 얼마나 냉정한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이 긴장이 현실이 된 적도 있다. 2013년 동양그룹이 무너지며 그 계열사가 찍은 회사채와 어음이 휴지가 됐을 때, 수만 명의 개인 투자자가 돈을 잃었다. 문제는 그 종이들이 무너지기 직전까지도 ‘투자할 만하다’는 등급을 달고 팔렸다는 데 있었다. 돈을 주는 쪽에 후한 점수를 준다는 오랜 의심이, 가장 아픈 방식으로 확인된 사건이었다. 발행사는 등급이 짜면 옆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고, 평가사는 그 발길을 붙잡아야 먹고산다. 이른바 ‘등급 쇼핑’이 가능한 구조에서, 점수는 조금씩 위로 미끄러지기 쉽다.
그런데 이 수수료가 한 번 내고 마는 돈이 아니라는 데, 이 사업의 진짜 힘이 있다. 회사채에 한 번 등급을 받으면 끝이 아니라, 해마다 ‘정기평가’로 그 등급을 다시 확인받아야 한다. 발행사로서는 등급을 사실상 매년 갱신하는, 구독에 가까운 구조다. 구독경제라는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이 회사들은 한 번 맺은 고객에게서 해마다 수수료를 받아 온 셈이다.
등급이 필요한 곳도 회사채 시장만이 아니다.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하거나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하려면, 나라장터 같은 곳에서 ‘신용평가등급확인서’를 요구받는다. 내가 이 거래를 감당할 만큼 튼튼한 회사라는 걸 제3자의 도장으로 증명하라는 것이다. 원청 대기업이 아예 특정 평가사를 지정해 두는 경우도 있어서, 협력사들은 해마다 그 지정된 곳에 등급을 받으러 간다. 돈을 빌릴 때도, 물건을 팔 때도, 입찰을 넣을 때도 등급이 따라붙으니, 한국 기업이 웬만큼 크면 신용평가사와의 거래는 선택이 아니라 통과의례에 가깝다. 여기에 그 모든 평가가 쌓아 올린 리서치와 등급 정보를 투자자에게 되파는 정보사업까지 더해진다. 남에게 점수를 매기는 일이, 이렇게 여러 겹의 꾸준한 매출로 돌아온다.
그런데도,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세 회사의 장사는 꾸준히 잘된다. 셋이 2025년에 올린 매출과 순이익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다.
| 회사 | 대주주 | 매출 | 당기순이익 | 이익이 흘러가는 곳 |
|---|---|---|---|---|
| 한국기업평가 | 피치 (글로벌 3대) | 590억원 | 220억원 | 배당 → 국외 |
| 한국신용평가 | 무디스 100% | 494억원 | 185억원 | 배당 → 국외 |
| NICE신용평가 | NICE (국내) | 504억원 | 131억원 | 국내 |
※ FY2025 별도(개별) 기준 — 자회사·계열사를 뺀, 등급을 매기는 본체만의 실적이다(한국기업평가는 자회사를 더한 연결 매출이 1,098억 원이지만 여기서는 본체만 본다). NICE신용평가는 개인 신용조회로 알려진 NICE평가정보와는 다른, 회사채 등급을 전담하는 계열사다. NICE신용평가의 순이익이 전년(234억 원)보다 44% 준 것은 본업 부진이 아니라 전년 일회성 이익이 빠진 기저효과이며, 영업이익은 오히려 142억 원에서 159억 원으로 늘었다.
매출을 뜯어보면 이 사업의 본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 회사가 버는 돈의 거의 전부는 ‘평가수수료’, 곧 회사채나 기업어음에 등급을 매겨 주고 그 발행사에게서 받는 돈이다. 한국신용평가는 매출 494억 원의 94%가, NICE신용평가는 504억 원의 거의 전부가 이 수수료다. 셋 중 한국기업평가만 매출 590억 원의 4분의 1가량을 부동산 개발 같은 사업의 타당성을 따져 주는 사업성 평가에서 벌어, 그나마 조금 다각화돼 있다. 요컨대 이들은 남에게 ‘등급을 팔아’ 사는 회사다.
해외 자본이 가진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가, 국내 자본의 NICE신용평가보다 조금 더 많이 번다. 그리고 그 위쪽 두 회사의 이익은 배당이 되어 뉴욕과 런던의 모회사로 흘러 나간다. 특히 한국기업평가는 2025년 실적으로 주당 8천 원이 넘는 현금배당을 결정했는데, 이는 그해 한 주가 벌어들인 이익을 오히려 웃도는 규모다. 곳간에 쌓아 둔 것까지 꺼내 나눠 주는 셈인데, 그 대부분이 대주주인 피치의 몫이다. 한신평도 앞선 해에 160억 원이 넘는 배당을 결의해 무디스에게 보냈다. 평가받는 우리 기업들이 낸 수수료가, 등급이라는 종이 한 장을 거쳐 결국 바다 건너로 건너간다. 코리안리 편에서 본 ‘가장 값나가는 자리를 해외가 가져가는’ 그림이, 여기서는 배당이라는 더 직접적인 형태로 되풀이된다.
신의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
지금까지 나는 이런 벽 안의 사람들이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고 적어 왔다. 그런데 신용평가사에서는, 처음으로 조금 다른 장면이 보인다. 신용평가사는 오래도록 여의도의 ‘신의 직장’으로 불렸다. 세 회사 모두 평균 연봉이 1억 원을 훌쩍 넘는다. 급여는 높고 자리는 안정적인, 부러움을 사던 직장이었다.
| 회사 | 직원수 | 평균 연봉 | 1인당 순이익 |
|---|---|---|---|
| 한국기업평가 | 172명 | 1억 2,757만원 | 약 1.3억원 |
| 한국신용평가 | 125명 | 약 1억 5,300만원 | 약 1.5억원 |
| NICE신용평가 | 134명 | 약 1억 1,700만원 | 약 1.0억원 |
※ 직원수는 2025년 말 기준. 1인당 순이익은 각 사 별도 순이익(한국기업평가 220억·한국신용평가 185억·NICE신용평가 131억 원)을 직원 수로 나눈 어림값이다. 평균 연봉은 상장사인 한국기업평가는 사업보고서, 비상장인 두 곳은 감사보고서·공개 집계 기준이라 산정 방식이 조금씩 달라 단순 비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 표에서 눈이 머무는 곳은 역시 맨 왼쪽이다. 172명, 125명, 134명. 세 회사를 다 합쳐도 431명이다. 이 나라에서 발행되는 회사채의 등급 전체를, 고작 431명이 매긴다. 한 사람이 1년에 1억 원이 훌쩍 넘는 순이익을 남기는 밀도다. 그런데 밀도는 양면의 말이다. 한 사람의 어깨에 실리는 보고서와 책임의 무게 역시 그만큼이라는 뜻이니까.
그런데 최근 몇 년, 입사 1~2년 차의 젊은 애널리스트들이 줄지어 회사를 떠났다. 대부분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로 옮겨 갔다. 한 사람이 써야 하는 등급 보고서가 늘고 업무가 무거워지면서, 높은 연봉만으로는 붙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이 소수 정예의 밀도가 만들어 내는 이익과, 그 밀도가 사람을 지치게 하는 속도. 두 가지는 같은 숫자의 앞면과 뒷면이다. 벽은 여전히 견고한데, 그 안의 젊은 사람들이 먼저 벽 밖을 내다본다. 이 책에서 처음 보는 풍경이다.
신용평가 3사는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셋이 나란히 등급을 매기고, 가끔은 같은 회사에 서로 다른 점수를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진짜로 겨루는 것은 등급의 정확성이라기보다, 등급을 받아 갈 고객의 마음이다. 평가받는 자가 돈을 내는 구조에서, 세 개의 벽은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중 두 벽의 주인은 바다 건너에 있다. 다음에 어느 회사의 등급이 내려갔다는 기사를 읽으면, 나는 이제 알파벳보다 그 뒤에 있는 사백여 명의 밤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 밤들이 쌓아 올린 글자 하나가, 수백억 원을 움직인다.
여기까지가 돈이 흐르는 파이프라인이었다. 거래소도, 재보험과 보증도, 예금보험도, 그리고 이 신용등급도, 전부 돈과 위험이 오가는 관이었다. 그런데 그 돈은 결국 무언가를 만들고 사고 나르기 위한 것이고, 그중엔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하루아침에는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간으로 쌓인 사슬 위에서만 나오는 것들. 이제 돈의 파이프라인에서 손을 떼고, 그 물건이 실제로 태어나는 자리까지 사슬을 거슬러 올라가 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