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길에, 전봇대 위에 얹힌 잿빛 원통을 올려다본 적이 있다. 가까이 서면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는 물건. 수십 년을 그 밑으로 지나다녔으면서, 그것이 변압기라는 걸 나는 이 원고를 쓰면서야 제대로 알았다. 앞 여행에서 본 인공지능 반도체는, 켜 두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전기를 마신다. 데이터센터 하나가 도시 하나만큼 전기를 먹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진짜 고민은 반도체를 어떻게 더 구하느냐가 아니라, 그걸 돌릴 전기를 어디서 끌어오느냐다. 이번 여행은 그 전기의 사슬을 거슬러 오른다.
다만 이 사슬은 반도체만큼이나 길고 갈래가 많아, 세 편에 나눠 걷는다. 이번 첫 편은 전체 지도를 펼친다.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져 우리에게 오는지, 그 긴 사슬의 어느 자리에 이익이 남는지, 그리고 한국은 그중 어디에 서 있는지를.
우선 말부터 하나 풀고 가자. 전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 사슬 전체를 계통, 정확히는 전력계통이라 부른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고(발전), 그걸 수십만 볼트의 초고압으로 바꿔 먼 거리를 실어 나른다(송전). 도시 어귀에서 쓸 만한 전압으로 낮추고(변전), 다시 집과 공장으로 잘게 나눠 보낸다(배전). 이 네 단계가 하나의 거대한 그물로 이어진 것이 계통이다.
여기엔 까다로운 성질이 하나 있다. 전기는 물처럼 큰 탱크에 담아 둘 수가 없어서, 쓰는 만큼을 바로 그 순간에 만들어 내야 하고, 계통 전체가 실시간으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어느 한 길목이라도 막히면 그물 전체가 출렁이고, 심하면 도시가 통째로 깜깜해진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정확히 그것이다. 데이터센터라는 거대한 새 소비자가 갑자기 나타났는데, 그 전기를 실어 나를 계통, 그중에서도 변압기와 송전망이 낡고 좁아 받아 주질 못한다. 병목은 전기를 만드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만든 전기를 나르는 계통에 있다.
그런데 이 계통 전체를 누가 쥐고 있는지부터 짚어야 한다. 답은 하나, 한국전력공사(한전)다. 발전만 여러 회사가 나눠 맡을 뿐, 나머지 송전과 배전, 그리고 소비자에게 파는 일은 한전 한 곳이 통째로 쥔다. 발전을 맡은 여섯 공기업(한수원과 발전5사)마저 실은 한전의 자회사다. 한전은 이 자회사들과 민간 발전사가 만든 전기를 전력거래소에서 도매로 사들여, 자기가 소유한 전국의 송전탑과 전봇대와 변압기로 실어 나르고, 정부가 정한 요금으로 집집마다 판다. 말하자면 전기 사슬의 혈관이자 계산대다. 그러니 이 사슬에서 돈이 어디에 남는지를 보려면, 전기를 만드는 발전과, 그것을 나르고 파는 한전을 함께 놓고 봐야 한다.
전기 사슬의 지도
반도체에서 그랬듯, 전기의 사슬에서도 돈은 고루 흐르지 않는다. 대체 불가능한 좁은 고리 몇 곳에만 남고, 나머지 넓은 고리에서는 얇아진다. 사슬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며, 이익이 남는 자리와 한국의 자리를 함께 짚어 본다.
| 사슬 단계 | 무엇을 하나 | 이익의 성격 | 한국의 자리 | 대표 기업 |
|---|---|---|---|---|
| 연료·핵심 소재 | LNG·우라늄·전기강판 | 자원 보유국이 쥔다 | 거의 전량 수입, 전기강판만 강 | 한국가스공사·포스코 |
| 발전설비 제조 | 가스터빈·원자로·터빈 | 소수만 만드는 고리 | 원전 세계 최고, 가스터빈 세계 5번째 | 두산에너빌리티 |
| 발전 운영 | 원전·화력·재생 발전 | 규제 아래 안정 | 강함 (공기업 6사+민간) | 한수원·발전5사 |
| 송배전 운영·판매 | 전기를 실어 나르고 소비자에 판다 | 독점(규제로 값 눌림) | 유일 | 한국전력 |
| 송배전 기기 | 초고압 변압기·케이블 | 지금 돈이 가장 무섭게 몰림 | 세계 최고 | HD현대·효성·LS |
| 정비·유지보수 | 발전소를 평생 고쳐 살림 | 30~60년 반복 매출 | 강함(정비 수출국) | 한전KPS |
한눈에 드러나는 게 있다. 한국은 사슬의 앞쪽, 곧 연료와 핵심 소재에서는 약하다.
발전에 쓰는 LNG도 원전 연료인 우라늄도 거의 전량을 수입하고, 태양광의 바탕 소재인 폴리실리콘 시장도 중국에 내줬다. 다만 그 소재 중에도 예외가 하나 있다. 변압기의 심장인 철심을 만드는 방향성 전기강판인데, 세계에서 몇 곳만 만드는 이 까다로운 소재를 한국의 포스코가 쥐고 있다. 변압기라는 좁은 고리 안의 더 좁은 고리인 셈이고, 변압기가 품귀가 되자 이 철심 소재도 덩달아 값이 오른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한다.
그런데 사슬의 가운데와 아래로 내려오면 그림이 뒤집힌다. 발전설비를 만들고(두산의 원전과 가스터빈), 발전소를 굴리고(공기업 여섯), 그 전기를 실어 나를 초고압 기기를 만들고(변압기 3사), 설비를 평생 정비하는(한국전력공사KPS) 자리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앞 여행의 반도체에서 한국이 상류(설계·소재·장비)에 약하고 중·하류(메모리·본딩)에 강했던 것과 묘하게 닮은 지형이다. 그리고 지금, 이 사슬에서 이익이 가장 극적으로 늘기 시작한 두 자리가 있다. 하나는 전기를 실어 나르는 초고압 변압기, 다른 하나는 그 모든 설비를 평생 고쳐 살리는 정비다. 다음 두 편이 각각 그 자리를 판다.
누가 전기를 만들고, 어떻게 사고파는가
계통의 첫 단계, 전기를 만드는 발전부터 들여다보자. 한국의 전력 구조에는 묘한 이중성이 있다. 만드는 쪽은 여러 회사가 나눠 맡는데, 그걸 사서 소비자에게 파는 쪽은 오직 한 곳뿐이다.
발전은 한전의 여섯 자회사인 원자력과 수력을 맡은 한국수력원자력, 그리고 석탄과 가스를 때는 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다섯 곳에 더해, SK와 GS, 포스코 같은 대기업이 세운 민간 발전사들이 함께 만든다.
발전은 이렇게 여러 회사가 경쟁하지만, 그 전기를 사서 실어 나르고 파는 쪽은 앞서 본 한전 하나뿐이다. 사는 사람이 사실상 한 명인, 단일 구매자 구조다.
그럼 돈은 어떻게 매겨질까. 발전사들이 만든 전기는 전력거래소(KPX)라는 도매시장에 모이고, 그 시각 필요한 만큼을 연료비가 싼 발전기부터 차례로 돌려 채운다. 값싼 원자력과 석탄이 먼저 돌고, 모자라는 만큼을 비싼 가스 발전기가 채우는데, 재미있게도 그날의 도매가격은 그중 가장 비싼, 맨 마지막에 켠 발전기의 연료비로 정해진다. 이것을 계통한계가격(SMP)이라 부른다.
그래서 값싼 원전을 아무리 많이 돌려도, 국제 가스값이 뛰면 도매 전기값 전체가 따라 뛴다. 한전은 이 값에 전기를 사서, 정부가 규제하는 요금으로 소비자에게 판다. 문제는 사는 값과 파는 값이 어긋날 때 터진다. 2021년부터 연료값이 폭등하자 한전은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느라 3년 동안 34조 원이 넘는 적자를 쌓았고, 이후 요금을 올리고 연료값이 내리며 2024년 8조, 2025년엔 13조 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그 몇 해가 남긴 빚이 200조 원을 넘겨, 사상 최대 흑자를 낸 지금도 이 회사의 발목을 잡는다.
한 가지 더 짚어 둔다. 방금 말한 SMP는 화석연료 발전의 값이고,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는 값이 하나 더 붙는다.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다. 신재생 발전소는 전기 1메가와트시를 만들 때마다 이 인증서를 함께 받아, 전기값(SMP)에 인증서값(REC)을 얹어 판다.
이 인증서를 사 주는 건 대형 발전사들이다. 정부가 발전사에 발전량의 일정 비율(2025년 14%, 2030년 25% 목표)을 신재생으로 채우라고 의무를 지웠는데(RPS 제도), 스스로 못 채운 만큼을 REC를 사서 메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재생의 수익은 SMP와 REC 두 다리로 서 있었다.
그런데 그 한 다리가 이제 사라지는 참이다. 정부가 RPS를 폐지하고, 해마다 필요한 만큼의 재생에너지를 경매에 부쳐 20년짜리 장기계약으로 사는 입찰시장으로 갈아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REC 현물시장을 닫는 법안이 2026년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 2027년을 목표로 REC라는 인증서 장사 자체가 저물어 가고 있다. 값이 매일 춤추던 인증서를, 몇 년치를 미리 못 박는 계약이 밀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지어진 발전소가 하루아침에 수익을 잃는 건 아니다. 기존에 20년짜리 고정가격계약을 맺어 둔 사업자는 계약이 끝날 때까지 REC를 계속 받도록 경과조치를 뒀다(2026년에 계약했다면 2046년까지). 신규 REC 발급이 2026년 말에 멈추고 RPS 제도 자체가 2029년 말 사라진 뒤로는, 정부가 해마다 필요한 재생에너지 용량을 경매에 부쳐 낙찰자와 장기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간다. 그래서 앞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성은 들쭉날쭉한 REC 시세가 아니라, 그 경매에서 얼마에 낙찰되느냐로 갈린다. 가격이 매일 출렁이던 인증서 거래가 사라지고, 앞으로 받을 값을 몇 년치 미리 정해 두는 계약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럼 이 발전사들은 저마다 얼마를 벌고, 몇 사람이 그 일을 할까. 앞의 여섯 회사를 실적과 사람 수로 나란히 놓아 본다.
| 회사 | 발전원 | 매출 | 영업이익 | 이익률 |
|---|---|---|---|---|
| 한국수력원자력 | 원전·수력 | 15조 3,000억 | 2조 4,783억 | 16.2% |
| 한국남동발전 | 화력·신재생 | 6조 5,096억 | 4,107억 | 6.3% |
| 한국남부발전 | 화력·신재생 | 6조 4,795억 | 5,230억 | 8.1% |
| 한국중부발전 | 화력·신재생 | 5조 7,904억 | 3,118억 | 5.4% |
| 한국서부발전 | 화력·신재생 | 5조 4,961억 | 2,920억 | 5.3% |
| 한국동서발전 | 화력·신재생 | 5조 512억 | 6,455억 | 12.8% |
※ 발전공기업 2025년 연결 결산 기준(각 사 감사보고서·ALIO·보도 취합). 매출엔 연료비가 그대로 포함돼 크게 잡히고, 이익률은 SMP·정산제도로 규제된다. 2025년 국제 연료값과 도매가(SMP)가 내리며 발전5사 이익은 대부분 줄었다(원전·동서 제외). 판매·송배전을 맡는 한전은 2025년 영업이익 13조 5천억으로 흑자다.
| 회사 | 직원수 | 평균 연봉 | 1인당 매출 | 1인당 영업이익 |
|---|---|---|---|---|
| 한국수력원자력 | 12,782명 | 약 1억 748만 | 약 12.0억 | 약 1.9억 |
| 한국남동발전 | 3,050명 | 약 8,925만 | 약 21.3억 | 약 1.3억 |
| 한국남부발전 | 3,148명 | 약 8,600만 | 약 20.6억 | 약 1.7억 |
| 한국중부발전 | 2,892명 | 약 9,470만 | 약 20.0억 | 약 1.1억 |
| 한국서부발전 | 2,763명 | 약 9,477만 | 약 19.9억 | 약 1.1억 |
| 한국동서발전 | 2,640명 | 약 9,700만 | 약 19.1억 | 약 2.4억 |
※ 직원수·평균급여는 각 사 2025년 사업보고서 직원현황 확정치다(1인평균급여는 임원 제외 전체 직원·기간제 포함 기준). 1인당 매출·영업이익은 2025년 연결 실적을 직원수로 나눈 어림값이다. 발전사 매출에는 연료비가 값에 얹혀 회수되는 몫이 크게 포함돼(특히 LNG는 매출의 60~70%), 실제로 남기는 몫보다 매출과 1인당 매출이 부풀려 보인다. 평균 연봉은 2025년 기준. 1인당은 2025년 연결 실적을 직원수로 나눈 어림값이라, 연료비가 포함된 매출 탓에 발전5사가 커 보인다.
물론 전기를 만드는 게 공기업만은 아니다. 발전의 한 축은 민간이 맡는다. 에스케이이앤에스(SK E&S)와 지에스이피에스(GS EPS), 포스코인터내셔널 같은 대기업 계열이 주로 LNG복합화력과 열병합발전소를 돌린다. 값싼 기저부하인 원전과 석탄은 공기업이 쥐고 있어, 민간은 대체로 연료비가 비싼 가스 발전에 몰려 있다. 그래서 그날의 도매가(SMP)를 정하는 마지막 발전기가 이들인 경우가 많다. 규모로는 순수 발전 민간사인 GS EPS가 2025년 매출 1조 3,147억, 영업이익 1,219억 원으로 이익률 9%대를 냈는데, 발전5사 한 곳의 5분의 1쯤 되는 몸집이다.
다만 이들도 발전이라는 규제 시장 안에 있어, 값을 스스로 부르기보다 정부가 짠 요금과 국제 연료값 사이에서 움직인다는 점만은 공기업과 다르지 않다.
두 표가 함께 말하는 게 있다. 발전사의 매출은 수조에서 십수조로 거대하지만, 그 큰 몫의 대부분은 연료값이 그대로 가격에 반영되어 지나간 것이고, 실제로 남는 이익률은 대부분 5~8%에 그친다. 값을 스스로 부르는 게 아니라, 정부가 정한 요금과 국제 연료값 사이에서 정해지는 규제된 값이기 때문이다.
그중 그나마 나은 자리는 사고 없이 발전소를 잘 돌린 동서(13%)와, 연료비가 거의 없는 원자력(한수원 16%) 정도다. 실제로 2025년엔 연료값과 도매가(SMP)가 내리면서 발전5사의 이익이 대부분 줄었다. 뒤에서 볼 초고압 변압기 회사들이 20%대의 이익률을 부르고, 원전 정비의 유자격자들이 두둑한 마진을 쥐는 것과 견주면, 정작 전기를 만드는 이 거대한 회사들의 이익률은 의외로 얇다. 이익은 전기를 만드는 자리보다, 그 전기를 실어 나르고 설비를 고치는 좁은 고리에 더 두껍게 남는다. 다음 두 편이 바로 그 자리다.
그럼 이 전기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나. 2025년 한국의 발전을 발전원별로 갈라 보면 이렇다.
| 발전원 | 2025년 비중 | 설비용량 | 평균 가동률 | 성격 |
|---|---|---|---|---|
| 원자력 | 31.0% | 약 26GW | 약 82% | 연료비 싼 24시간 기저부하, 탄소 없음, 안전·폐기물 논란 |
| 석탄 | 28.7% | 약 40GW | 약47% | 값싼 기저부하였으나 탄소·미세먼지로 퇴출 수순 |
| LNG(가스) | 27.4% | 약 46GW | 약 46% | 빨리 켜고 끄는 첨두(Peak)발전, 비싸서 그날 도매값을 정함 |
| 신재생 | 11.4% | 약 35GW | 약 15~26% | 탄소 없지만 해·바람 따라 들쭉날쭉, 계통에 부담 |
※ 2025년 발전량 비중(한전통계). 기타(수력 등) 1.5%는 뺐다.
표를 보다 헷갈릴 대목을 하나 짚어 둔다. 설비용량과 발전량은 다른 것이다. 설비용량은 발전기가 최대로 낼 수 있는 힘, 자동차로 치면 최고 속도이고, 발전량은 그 발전기가 한 해 실제로 만든 전기의 총량, 곧 한 해 달린 거리다. 최고 속도가 높아도 차고에 세워 두면 주행거리가 짧듯, 설비가 커도 자주 안 돌리면 발전량은 적다. 그래서 원자력은 설비가 26기가와트로 가장 작은데도 쉬지 않고 24시간 돌아 발전량은 1위(31%)이고, 태양광은 설비는 커도 해가 있을 때만 도니 발전량 비중이 11%에 그친다. 발전소의 숫자로도 이 성격 차이가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원자로가 26 기 남짓 5곳의 원자력발전소에 모여 있고, 석탄화력은 61 기가 충남·경남·강원의 해안에 늘어서 있다. 반면 태양광은 큰 것 작은 것을 합쳐 수십만 곳에 흩어져 있다. 큰 발전소 몇 곳이 쉬지 않고 도는 원전·석탄과, 수십만 곳이 낮에만 조금씩 도는 태양광 같은 전기를 만들어도 생김새가 이렇게 다르다.
발전 믹스의 큰 방향은 뚜렷하다. 값싸고 탄소 없는 원자력을 바닥에 깔고, 탄소 많은 석탄을 장기적으로 줄이며, 들쭉날쭉한 신재생을 늘려 가는 것이다. 2024년에는 원자력이 18년 만에 석탄을 제치고 최대 발전원에 올랐고 신재생이 사상 처음 10%를 넘었는데, 2025년에도 원자력이 31%로 1위를 지키고 신재생은 11%대로 한 걸음 더 올라섰다. 다만 발전원마다 성격이 판이해서, 비중의 숫자만 바꾸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진짜 문제가 숨어 있다.
그리고 기저발전인 석탄을 줄인다는 이 방향은 말뿐이 아니라 일정표로 짜여 있다. 2025년 초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낡은 석탄발전소 28기를 2036년까지 순차로 문을 닫고 그 자리를 LNG로 바꾸기로 했다. 2037~2038년에 수명이 다하는 12기는 양수·수소·암모니아 같은 무탄소 발전으로 갈아탄다. 지금 짜이고 있는 제12차 계획은 그 시계를 더 당겨, 석탄을 아예 걷어내는 쪽을 논의하는 중이다. 실제로 보령과 삼천포의 노후 석탄기들은 이미 하나둘 가동을 멈췄다. 지금 28%를 차지하는 이 석탄이 앞으로 십수 년에 걸쳐 LNG와 재생에너지로 옮겨 가는 것. 그것이 이 믹스 표가 앞으로 그려 갈 변화의 큰 줄기다.
그런데 왜 그 길이 막혔나
발전을 아무리 늘려도, 그 전기가 쓰는 곳까지 닿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계통이 병목이 된다. 이유는 세 겹이다.
첫째, 만드는 곳과 쓰는 곳이 멀찍이 어긋나 있다. 원자력과 석탄 발전소는 바닷물로 식혀야 해서 동해안과 서해안에 몰려 있고, 태양광은 볕 좋은 호남에 쏠려 있는데, 정작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수도권과 그 언저리에 새로 들어서는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다. 만든 전기를 그 먼 거리만큼 초고압 송전망으로 실어 날라야 하는 것이다. 둘째, 그 송전망을 새로 까는 일이 지독하게 느리다. 송전탑이 지나갈 땅의 주민이 반대하고 인허가가 얽혀, 동해안의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선 하나 놓는 데 십수 년이 걸린다. 오래전 밀양의 송전탑 갈등이 그 상징이었다. 셋째, 재생에너지는 해가 지고 바람이 자면 뚝 끊긴다. 실시간으로 수요와 공급을 맞춰야 하는 계통에 이 들쭉날쭉함은 큰 부담이라, 전기가 남아도 계통이 감당 못 해 발전기를 강제로 멈추는 일까지 벌어진다. 요컨대 발전은 늘어나는데 그걸 실어 나를 길이 좁고 낡고 느린 것. 이것이 전력망이 이 시대의 병목이 된 구조적 이유다.
전기를 직접 구하러 나선 사람들
이 전기 부족이 얼마나 절박한지는, 전기를 가장 많이 쓸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면 안다. 먼저 국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짓는 반도체 클러스터는 다 지어지면 전기만 10기가와트를 넘게 먹는다. 전국 발전설비를 다 합친 게 153기가와트이니, 그 15분의 1을 반도체 단지 하나가 통째로 가져가는 셈이다. 큰 원자력발전소로 치면 7~8기가 필요한 수준이고, 우리나라 원전 설비 전체(약 26기가와트)의 40%에 육박한다. 이걸 어디서 끌어올까.
우선 2030년 무렵까지는 단지 안에 LNG 발전소를 직접 세우고 가까운 송전선을 보강해 초기 전기를 댄다. 그다음엔 기존 송전선의 용량을 늘린다. 최종적으로는 2042년까지 동해안과 중부의 발전력을 장거리 송전망으로 끌어온다. 원래 2053년에나 끝날 일정을 11년이나 앞당긴 것인데, 그만큼 급하다는 뜻이다. 호남과 동해안에서 용인까지 전기를 실어 나를 그 공용 송전망은 한전이 비용을 대기로 했다. 결국 반도체를 지으려면 발전소와 송전망을 함께 지어야 하는, 앞서 본 계통 병목이 국내에서 그대로 되풀이되는 셈이다.
바다 건너에서는 더 극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한 곳은 이제 300에서 500메가와트, 웬만한 도시 하나를 상시로 켜 둘 전기를 쉬지 않고 먹는다. 해가 지면 끊기는 태양광으로는 이 24시간 허기를 댈 수가 없다. 그런데 미국의 전력망 연결 대기줄은 2천600기가와트어치가 밀려 평균 5년을 기다려야 하고, 그중 열에 여덟은 지쳐서 신청을 접는다.
기다릴 수 없게 된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전력망을 우회해 스스로 발전소를 구하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원자력으로의 회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고로 문 닫았던 쓰리마일 아일랜드 원전을 되살려 20년간 통째로 사 쓰기로 했고, 구글은 소형 모듈 원전(SMR)을, 아마존은 원전 바로 옆에 데이터센터를 붙이는 계약을 맺었다. 지난 한 해에만 빅테크가 약정한 원전 용량이 10기가와트를 넘는다. 여기에 데이터센터 부지에 아예 가스 발전기를 직접 놓는 회사들도 늘고 있다. 전력망이 못 대주니, 전기를 사슬 바깥에서 직접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두 장면이 말하는 건 같다. 이제 전기는, 반도체와 인공지능이라는 이 시대의 주인공들이 목이 말라 스스로 우물을 파러 나설 만큼 귀해졌다. 앞 편에서 이익은 가장 좁은 고리로 남는다고 했는데, 그 고리가 이번엔 반도체 사슬 바깥, 그 모든 칩을 돌리는 전기 쪽으로 넘어온 것이다. 조연이던 전기가 주연이 되었다는 말은, 가장 힘센 손님들이 전기 앞에 줄을 서는 풍경으로 나타난다.
세 편에 걸쳐
지도를 펼쳤으니, 이제 돈이 남는 자리로 내려간다. 다음 편(②)은 오래 남의 나라 전력회사에 을이던 한국의 변압기 회사들이, 낡은 미국 전력망과 인공지능 앞에서 갑이 된 이야기다. 그다음 편(③)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자리, 곧 발전소를 짓는 게 아니라 이미 지어진 발전소를 30년 60년 멈추지 않고 고쳐 살리는 사람들에게로 간다. 돈은 언제나 가장 좁고 대체 불가능한 고리에 남는다. 전기의 사슬에서 그 고리가 어디인지를, 다음 두 편이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