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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 저니 · 2026-07-23

[밸류체인 저니-6] 심장은 문 밖에 있다 - 건설기계

대한민국 밸류체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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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착기 한 대에는 사실 이름이 둘 붙어 있다. 노란 몸통에 큼직하게 박힌 이름과, 정작 벽을 부수는 팔 끝의 쇠붙이에 작게 새겨진 또 다른 이름. 하나는 기계를 조립한 회사이고, 다른 하나는 그중 가장 힘든 일을 하는 부위를 만든 회사다. 그 두 이름이 각각 얼마를 남기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 산업의 사슬 전체가 드러난다. 이번 여행은 굴착기 한 대를 부품 단위로 되짚어, 그 쇠붙이들이 태어난 자리까지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일이다.

그리고 이 사슬에도, 앞서 반도체에서 봤던 그림이 거의 그대로 한 번 더 나타난다. 완성품은 세계에서 손꼽게 잘 만드는데, 그 안에서 가장 정밀한 부품을 만드는 일은 남의 손에 있다는 그림 말이다.

굴착기 한 대의 이력서

굴착기 한 대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대략 다섯 개의 고리를 지난다. 맨 앞은 소재와 부품이다. 쇳물을 두들겨 만든 단조 부품, 땅 위를 밀고 나가는 무한궤도, 그러니까 하부주행체, 팔을 접었다 펴는 유압실린더 같은 것들이 이 자리에서 나온다.

그다음이 핵심 시스템이다. 힘을 내는 엔진, 그 힘을 팔과 궤도로 전하는 유압과 동력전달장치. 사슬에서 돈이 가장 많이 남아야 마땅한 자리다. 그 부품과 시스템을 한데 모아 노란 몸통으로 조립해 내는 자리가 완성기다. 굴착기와 휠로더와 지게차가 여기서 태어난다.

완성기의 팔 끝에는 다시 부착장치인 브레이커, 버킷, 집게가 매달린다. 마지막으로 그 기계를 건설 현장과 광산에, 그리고 요즘은 나라 밖 재건 현장에까지 실어 나르는 딜러와 렌탈이 있다. 그 끝에는 건설과 광산과 인프라라는, 좀처럼 마르지 않는 수요가 놓여 있다.

이익은 이 다섯 고리에 고르게 흩어지지 않는다. 나는 앞선 여행들에서 그렇게 배웠다. 돈은 가장 좁은 고리, 아무도 쉽게 대신할 수 없는 고리로 흘러 남는다고. 그렇다면 한국의 건설기계는 이 고리들 가운데 어디에 서 있을까. 답을 먼저 말하면 조금 뜻밖이다. 우리가 가장 크게 이름을 붙이는 자리인 완성기 조립이 오히려 가장 얇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부품 몇 곳이 두껍다. 그리고 정작 가장 많이 남아야 할 자리는, 뒤에서 보겠지만 이 표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숫자로 보면 분명해진다.

굴착기 한 대를 뜯어보면

한 회사가 굴착기를 통째로 만드는 게 아니다. 노란 몸통을 조립하는 회사 뒤로, 단계마다 주인이 다른 수십 개의 회사가 길게 늘어선다. 굴착기 한 대가 어떤 손들을 거쳐 완성되는지 펼쳐 보면 이렇다.

단계하는 일주요 기업
완성기 (조립·브랜드)굴착기를 조립하고 이름을 붙인다HD현대건설기계·HD현대인프라코어·두산밥캣·현대에버다임(콘크리트펌프·크레인) / (해외) 캐터필러·코마츠·XCMG
유압 (심장)펌프·밸브·모터로 힘을 나눈다가와사키·KYB(일본)·보쉬렉스로스(독일) / 국내는 디와이파워(실린더)
엔진동력을 낸다HD현대인프라코어(자체 생산) / 대형은 커민스
하부주행체궤도·롤러·스프라켓으로 굴러간다진성티이씨(캐터필러 납품)·흥국·대창단조·동일금속
어태치먼트팔 끝의 브레이커·크러셔수산세보틱스(국내 1위)·대모엔지니어링
유통·정비(MRO)판 뒤에 부품·수리로 오래 번다혜인(캐터필러 국내 딜러) 등

※ 이 가운데 돈이 가장 깊이 남는 급소는 유압(펌프·밸브)이고, 그 자리를 일본과 독일이 쥐고 있다.

마진이 뒤집힌 사다리

2025년 성적표를 영업이익률이 높은 순서로 세워 보면, 이익이 어디에 남는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다만 이 사다리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과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회사사슬에서의 자리매출영업이익영업이익률
대창단조단조 부품·트랙체인3,463억380억11.0%
흥국하부주행체 부품1,370억149억10.9%
진성티이씨하부주행체(무한궤도)4,638억479억10.3%
수산세보틱스부착장치(유압브레이커)2,294억190억8.3%
디와이파워유압실린더3,828억304억8.0%
두산밥캣완성기·글로벌 브랜드(Bobcat)8조 7,919억6,861억7.8%
혜인판매·정비(캐터필러 딜러)2,417억176억7.3%
대모엔지니어링부착장치(브레이커·크러셔)407억19억4.7%
HD현대건설기계완성기(굴착기·휠로더)3조 7,765억1,709억4.5%
프리엠스전장 부품231억4억1.7%
동일금속주물 부품917억14억1.6%
대동금속주물 부품1,018억1억0.1%

※ 매출·영업이익은 FY2025 연결 기준(DART). 두산밥캣은 기능통화가 미국달러라 공시 원문이 달러 표기다(매출 약 61.8억 달러·영업이익 약 4.8억 달러). 회사 발표 원화 실적은 매출 8조 7,919억 원·영업이익 6,861억 원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1% 줄었다. HD현대건설기계는 2026년 1월 1일 HD현대인프라코어를 합쳐 ‘HD건설기계’로 다시 출범했다. 위 표는 합병 전 별도 법인 기준이며, 합친 매출은 8조 원 안팎이 된다. 수산세보틱스는 옛 수산중공업으로, 2025년 4월 사명을 바꿨다. 흥국·대모엔지니어링·프리엠스·동일금속은 연결 기준이고, 혜인과 대동금속은 연결 미공시라 별도 기준이다.

이 사다리를 위에서 아래로 훑으면 이상한 일이 눈에 들어온다. 맨 위의 자리 대창단조, 흥국, 진성티이씨는 우리가 흔히 ‘하청’이라 부르는 자리다. 쇳물을 두들겨 트랙체인을 만들고, 무한궤도를 깎고, 팔 끝에 매다는 브레이커를 벼린다. 그런데 이들이 10% 안팎을 남긴다. 그 반대로 사다리 아래쪽, 노란 굴착기에 제 이름을 가장 크게 붙이는 HD현대건설기계는 4.5%에 그친다. 완성품을 만드는 회사가, 그 완성품에 들어가는 부품 회사보다 적게 남기는 것이다. 왜 이렇게 뒤집혔을까.

완성기가 얇은 데는 까닭이 있다. 굴착기라는 완성품은 세계 시장에서 캐터필러와 고마쓰, 그리고 무섭게 치고 올라온 중국의 XCMG와 가격으로 맞붙는 물건이다. 한국의 완성기는 세계 5위에서 6위 언저리의, 좋지만 최상위는 아닌 물건이다. 그러니 브랜드의 벽은 우리 것이 아니라 캐터필러의 것이다. 노란 몸통에 제 이름을 붙여도, 그 이름이 값을 세게 불러 주지는 못한다. 여기에 2025년의 건설 경기 침체가 겹쳤다. 남들과 값으로 겨루는 자리에서, 시장까지 마르면 마진은 이렇게 깎여 나간다.

특히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몇 해 전만 해도 저가 시장의 조연이던 XCMG와 사니(SANY)가 이제 세계 순위에서 각각 4위와 6위로 올라서며, 규모로 단가를 낮춘 값싼 굴착기로 브라질과 사우디와 아프리카의 현장을 파고든다. 한국 완성기가 겨루던 중저가 시장이 그만큼 좁아지는 중이고, 넓고 붐비는 완성기 고리에서 값을 부르기는 해마다 더 어려워진다.

반대로 맨 위의 두 부품 회사가 두꺼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서 있는 고리가 좁기 때문이다. 하부주행체와 대형 단조 부품은 아무나 두들겨 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수십 톤짜리 쇳덩이를 정확한 강도로 벼려 내는 일에는 오랜 시간과 설비가 쌓여야 하고, 그래서 세계에 그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회사가 손에 꼽힌다. 진성티이씨는 세계 최대의 중장비 회사 캐터필러가 수십 년째 곁에 두고 쓰는 몇 안 되는 하부주행체 공급사다. 좁은 고리다. 완성기라는 넓고 붐비는 고리보다, 이 좁은 고리에 돈이 더 굵게 남는다.

물론 부품이라고 이익이 다 두꺼운 건 아니다. 사다리 맨 아래의 동일금속과 대동금속 같은 주물 회사를 보라. 같은 부품사여도 주물처럼 여러 곳이 만들 수 있는 넓은 고리에 서면, 마진은 완성기보다도 박하다. 돈은 부품이라서 남는 게 아니라, 좁은 고리라서 남는 것이다. 심지어 캐터필러를 대신 팔고 고치는 딜러 혜인마저 완성기를 직접 만드는 HD현대건설기계보다 더 많이 벌어들이니, 때로는 만드는 일보다 파는 일과 고치는 일에 돈이 더 남는다.

사다리 가운데의 두산밥캣은 이 규칙의 예외처럼 보인다. 완성기인데도 7.8%를 남긴다. 비밀은 밥캣이라는 이름에 있다. 이 회사는 북미의 소형 건설장비 시장에서 실질적인 일등이다. 미국의 농장과 건설 현장에서 스키드로더를 가리켜 사람들이 그냥 ‘밥캣’이라 부를 만큼, 이름이 곧 물건이 된 드문 경우다. 한국의 완성기 가운데 유일하게, 남의 것이 아닌 제 브랜드의 벽을 세운 회사다. 브랜드의 벽이 실제로 작동하면 완성기도 두꺼워진다는 것을, 두산밥캣은 홀로 증명한다. 다만 그 벽에도 바람은 분다. 2025년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한 해 전보다 21% 줄었다. 벽이 튼튼해도, 벽 안의 마당이 마르면 곳간은 비어 간다.

가장 좁은 고리? 브레이커

맨 위에서 세 번째로 돌아가 본다. 수산세보틱스. 처음에 내가 재개발 현장에서 본, 굴착기 팔 끝에서 실제로 벽을 부수던 그 쇠붙이를 만드는 회사다. 유압브레이커라 부른다. 완성기 회사가 굴착기 몸통을 만든다면, 이 회사는 그 몸통이 실제로 하는 일인 부수고 깨는 일을 담당하는 손끝을 만든다. 옛 이름은 수산중공업이었고, 2025년 4월에 건설기계와 로보틱스를 합친다는 뜻으로 수산세보틱스라 이름을 바꿨다.

이 작은 회사가 서 있는 자리가 흥미롭다. 유압브레이커라는 좁은 니치에서, 수산세보틱스는 국내 1위다. 전 세계 137개국에 판매망을 두고 매출의 60% 넘게가 수출에서 나온다. 2025년 연결 매출은 2,294억 원으로 한 해 전보다 16% 늘었고, 영업이익은 190억 원으로 57%나 뛰었다. 영업이익률 8.3%는, 저 아래 완성기 회사의 두 배에 가깝다.

얼핏 보면 완성기가 못 부르는 값을 팔 끝 강소기업이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장부를 한 겹 더 벗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8.3%는 국내 브레이커 사업이 번 게 아니다. 정작 국내 브레이커 본업은 중국의 값싼 브레이커에 밀려 사실상 적자에 가깝고, 회사가 흑자를 지키는 건 원가를 크게 낮춘 베트남 생산법인이 벌어들인 몫 덕분이다. 좁아 보이던 고리가, 중국이 값싸게 복제하는 순간 넓어진 것이다.

그래서 브레이커는 오히려 이 편의 이야기를 뒤집어 보여 준다. 이익은 회사의 덩치에 남지 않지만, 그렇다고 좋은 부품이기만 하면 남는 것도 아니다. 돈은 남이 쉽게 복제하지 못하는 좁은 고리에만 남는다. 브레이커는 한때 그런 좁은 고리처럼 보였지만, 중국이 값싼 브레이커를 쏟아내면서 그 고리가 넓어졌고, 값은 곧 새어 나갔다.

그렇다면 정말로 안 뚫리는 좁은 고리는 어디일까. 아무나 두들겨 낼 수 없는 것, 시간의 벽이 높아 중국조차 몇 해로는 따라잡지 못하는 것. 바로 앞의 사다리에서 많이 남긴 하부주행체와 단조, 그리고 다음 절에서 만날 유압이다.

밸브는 여전히 그들의 것

그런데 여기서 이 산업의 목줄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나는 좁은 고리에 돈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사슬에서 가장 좁고 가장 값진 고리는 어디일까.

굴착기의 심장, 그러니까 엔진과 정밀 유압의 핵심. 큰 굴착기의 힘을 정확히 나누어 팔과 궤도로 보내는 메인 유압펌프와 컨트롤밸브가 바로 그 자리다. 그리고 저 사다리를 다시 보면, 그 자리를 대표하는 한국 상장 회사가 한 곳도 없다. 없다는 사실 자체가 답이다.

대형 굴착기의 메인 유압펌프와 밸브는 지금도 대부분 일본의 가와사키와 KYB, 독일의 보쉬렉스로스에서 온다. 큰 엔진은 미국의 커민스에서 온다. HD현대는 인프라코어를 통해 중형 엔진과 상당수 유압 부품을 국산화해 왔고,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가장 크고 가장 정밀한 심장인 최상위 대형 장비의 유압 코어은 여전히 문 밖에 있다. 디와이파워가 유압실린더로 3,828억 원을 벌지만, 실린더는 유압의 세계에서 팔에 해당하지 심장이 아니다. 팔을 접었다 펴는 일은 우리가 하고, 그 팔에 얼마의 힘을 어떻게 나눠 줄지를 정하는 펌프와 밸브에서 나오는 돈은, 이 나라 밖으로 나간다.

이 유압 심장이 어려운 데는 까닭이 있다. 수백 기압의 기름을 정확히 나눠 굴착기의 팔과 궤도로 보내는 일에는, 미세한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 가공과 이십 년 삼십 년을 쌓아야 얻는 설계 노하우가 든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시간을 건너뛸 수는 없다. 그래서 세계에 대형 유압 코어를 믿고 맡길 회사는 손에 꼽고, 그 좁은 자리를 일본의 가와사키·KYB와 독일의 보쉬렉스로스가 수십 년째 지킨다. 앞서 반도체의 노광 장비, 배터리의 리튬 정련에서 본 그 시간의 벽이, 쇠붙이의 세계에서는 유압 코어라는 이름으로 서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산업에서는 돈이 남는 곳과 목줄을 쥔 곳이 나란히 어긋나 있다. 진성티이씨는 하부주행체라는 좁은 고리를 쥐고 10%를 남기지만, 그 매출의 큰 몫이 미국 캐터필러라는 단 하나의 손님에게 달려 있다. 돈은 스스로 부르는데, 목줄은 손님이 쥐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완성기 회사는 노란 몸통에 제 이름을 크게 붙이지만, 정작 그 팔 안쪽의 심장은 남에게서 사 온다. 이름은 우리 것인데 심장은 그들의 것이다. 값 남는 곳과 목줄 쥔 곳이 이렇게 따로 논다.

작업자 없는 현장 - 무인과 전동화

심장을 되찾는 일이 남은 숙제라면, 그와 나란히 열리는 새 마당도 있다. 무인화와 전동화다. 건설 현장의 만성적인 인력난과 안전 문제가 사람이 타지 않는 굴착기를 부른다. HD현대는 이미 인공지능 자율주행 기술을 얹은 무인 굴착기를 유럽 현장에 처음 인도했는데, 사람이 몰 때보다 오히려 120% 높은 생산성을 낸다고 한다. 두산밥캣도 CES 2026에서 인공지능·전동화·자율주행을 묶은 차세대 소형 장비를 선보였다. 여기에 매연 없는 전기·수소 굴착기까지 더해지면, 노란 쇠붙이의 다음 세대는 사람도 매연도 없는 현장을 향한다.

다만 그 전동화의 길은 생각만큼 매끄럽지 않다. 먼저 나온 배터리 전기 굴착기가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은 하루 종일 무거운 힘을 쓰는 곳인데, 배터리로는 연속 작업 시간이 짧고 충전에 두세 시간이 걸려 고부하 작업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 대안으로 수소가 떠올랐지만, 충전 인프라 부족과 고압 저장의 안전 문제, 비용이 발목을 잡아 더디게 갔다. 2026년에는 고체 금속에 수소를 저장하는 새 방식으로 HD건설기계 등이 중대형 수소 굴착기 실증에 들어갔는데, 전기 굴착기보다 연속 작업은 두 배 길고 충전은 네 배 빠르다고 한다. 다만 아직 수천 시간의 실증 데이터를 쌓는 단계라, 대규모 공공·산지 개발처럼 힘이 많이 드는 틈새부터 자리 잡을 전망이다. 매연 없는 현장은 오고 있지만, 그 속도는 결국 충전 인프라가 정한다.

다만 이 새 마당에서도 물음은 같다. 스스로 움직이는 굴착기의 두뇌와 심장은 반도체와 배터리인데, 정작 돈이 크게 남는 그 새 심장은 누구의 것이 되는가. 몸통을 만드는 힘과 심장을 쥐는 힘은 다르다는 이 산업의 오랜 숙제가, 흙 파는 기계에서도 형태만 바꿔 되돌아온다.

이 마당은 지속될까 - 위아래로 눌리는 자리

건설기계에는 정부라는 단일 손님이 없다. 뒤에서 볼 방산과 갈리는 지점이다. 대신 다른 제약이 있다. 국내 건설 경기만으로는 이 큰 공장들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건설기계는 처음부터 수출로 먹고산다. HD현대의 두 건설기계 회사는 매출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벌고, 두산밥캣은 매출의 70%가 북미에서 나온다. 국내가 좁으니 세계에서 이겨야만 하는 산업인데, 그 세계 무대의 좌표가 만만치 않다.

위를 보면 거인들이 있다. 세계 1위 캐터필러가 혼자 시장의 15%를, 2위 코마츠가 11%를 가진다. 한국 회사들은 두산밥캣이 10위권, HD현대가 12위로 점유율이 1~3%대다. 아래를 보면 중국이 올라온다. 중국의 XCMG는 이미 존디어를 제치고 세계 3위(5.8%)에 올랐고, XCMG와 SANY와 줌라이온 세 곳이 세계 상위 20개 업체 매출의 60%를 넘게 가져간다. 2026년 5월 한 달에만 중국의 굴착기 수출이 34% 늘었다. 위에는 프리미엄의 캐터필러와 코마츠, 아래에는 저가의 중국. 한국은 그 사이에 낀 가성비 자리에 서 있다.

그 가성비 자리는 실제 경쟁력이 있는가. 가격은 캐터필러와 코마츠보다 싸고 품질은 그들에 근접했으니, 값 대비 성능이라는 무기는 분명하다. 다만 중국보다는 비싸다. 그리고 여기가 방산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방산은 값싼 대량이 통하지 않는 시장(정치와 인증과 신뢰)이라 한국의 가성비가 통했지만, 건설기계는 값싼 대량이 그대로 통하는 시장이라 중국의 사냥터가 되기 쉽다. 대량생산과 낮은 인건비가 그대로 무기가 되는 곳에서, 중국이 남은 품질 격차마저 좁히면 한국의 가성비 자리는 위아래로 눌려 좁아진다.

그렇다면 새 수요는 어디서 오나. 흔히 우크라이나 재건을 첫손에 꼽는다. 세계은행은 재건 비용을 745조 원으로 추산하고, 도로와 건물을 다시 세우는 데 굴착기가 필수이니 기대할 만도 하다. 실제로 HD현대의 두 회사는 전쟁 전 우크라이나 시장 1·2위였다. 다만 숫자를 뜯어보면 서사만큼 크지 않다. 원조하는 나라들이 대개 자국 기업 참여를 조건으로 돈을 풀고, 한국은 그 원조에서 영향력이 작아, 한국 기업이 실제 확보할 수 있는 몫은 3조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745조의 0.4%다. 착공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재건은 기대할 근거는 되지만, 이 산업을 먹여 살릴 새 마당이라 부르기엔 이르다.

그래서 데이터가 가리키는 진짜 살길은 일시적 재건 특수가 아니라, 앞서 본 자동화라는 새 좁은 고리다. 세계 자율 건설장비 시장은 해마다 9%씩, 스스로 판단하는 지능형 굴착기만 보면 해마다 28%씩 큰다. 선진국일수록 숙련공이 늙고 부족해지고 안전 규제가 세지니,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를 향한 수요는 실재한다.

HD현대는 스위스의 실제 공사 현장에 무인 굴착기를 처음 내보냈고, 두산은 엔비디아와 손잡고 음성으로 지시하는 무인 장비를 개발한다. 완성품을 잘 만드는 힘 위에 자동화라는 좁은 고리를 얹으면, 중국의 저가 공세 위에서 다시 값을 부를 자리가 생긴다. 다만 여기서 이 책의 오랜 목줄이 또 나온다. 그 자동화의 두뇌가 될 인공지능과 반도체는, 두산이 엔비디아의 손을 잡은 데서 보듯 또 남의 것이다. 값싼 대량은 중국에, 비싼 두뇌는 미국에 기대는 자리. 건설기계가 세계에서 이기려면, 위아래로 눌리는 이 자리부터 넓혀야 한다.

좁은 공방에 스무 해

이 사슬을 사람 단위로 쪼개 보면, 회사의 성적표만으로는 안 보이던 결이 하나 더 드러난다. 한 사람이 얼마를 굴려 얼마를 남기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머무는지.

회사직원수평균 연봉평균 근속1인당 매출1인당 영업이익
대창단조 (단조 부품)약 85명약 7,200만약 18.8년약 29.4억약 3.4억
디와이파워 (유압실린더)약 363명약 8,200만약 18.6년약 6.8억약 0.4억
진성티이씨 (하부주행체)약 219명약 7,900만약 11.9년약 12.3억약 1.2억
수산세보틱스 (브레이커)약 370명약 5,300만약 10.9년약 4.3억약 0.2억
HD현대건설기계 (완성기)약 1,120명약 1억 100만약 6.2년약 19.2억약 0.8억
흥국 (하부주행체)약 97명약 6,600만약 9.0년약 14.1억약 1.5억
혜인 (캐터필러 딜러)약 264명약 6,600만-약 9.2억약 6,600만
대모엔지니어링 (부착장치)약 96명약 6,100만약 10.5년약 4.2억약 2,000만
프리엠스 (전장 부품)약 38명약 6,300만-약 6.1억약 1,000만
동일금속 (주물)약 64명약 6,100만약 13.0년약 14.3억약 2,200만
대동금속 (주물)약 128명약 1억약 14.3년약 8.0억약 100만

※ 직원수·평균 연봉·근속은 각 사 2025년 사업보고서(별도, 남녀·부문 가중평균). 1인당 수치는 개별(별도) 매출·영업이익을 별도 인원으로 나눈 값이다(위 실적표는 연결이라 분모·분자 기준이 다르다). 두산밥캣은 지주 성격의 본사 인원(약 150명)만 별도로 잡혀 1인당 지표가 사실상 의미가 없어 이 표에서는 뺐다. HD현대건설기계 직원수·근속은 합병 전 별도 법인 기준이다. 이번에 더한 회사(흥국·혜인·대모엔지니어링·프리엠스·동일금속·대동금속)의 1인당도 같은 방식이며, 근속 미공시는 빈칸으로 둔다.

이 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맨 위 두 회사의 근속연수다. 대창단조 18.8년, 디와이파워 18.6년. 이 나라의 어느 대기업보다도 길다. 단조와 유압실린더라는 좁은 공방에서, 사람들이 스무 해 가까이 떠나지 않고 눌러앉아 있다는 뜻이다. 앞선 여행들에서 나는 근속연수가 벽의 종류를 증언한다고 했다. 여기서도 그렇다. 쇳물을 정확한 강도로 두들기는 손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그 손이 곧 회사의 벽이고, 그래서 사람이 떠나지 않는다. 반도체 편에서 봤던 ‘시간으로만 쌓이는 벽’과 같은 재료로, 이 오래된 공방들의 벽이 서 있다.

1인당 숫자를 보면 그 좁은 공방의 밀도가 드러난다. 대창단조는 여든다섯 명이 한 사람당 29억 원어치를 만들어 3억 4천만 원을 남긴다. 이 표에서 가장 높은 밀도다. 돈이 좁은 고리에 남는다는 말은, 그 고리를 지키는 사람 수가 적을수록 한 사람 몫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완성기의 HD현대건설기계는 한 사람이 19억 원을 팔지만 남기는 이익은 8천만 원이다. 파는 물량은 많은데 남는 게 적다. 값으로 겨루는 넓은 고리의 숙명이다.

수산세보틱스는 조금 다른 자리에 있다. 근속 10.9년으로 짧지 않고, 1인당 매출과 이익은 크지 않다. 평균 연봉도 표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국내 1위라는 이름값에 견주면 소박한 숫자다. 이것이 작은 강소기업의 현실이기도 하다. 좁은 니치의 국내 1위여도, 그 니치마저 중국에 쫓기고 시장 자체도 크지 않으니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은 아직 두텁지 않다. 좁은 고리를 쥐는 것과, 그 고리가 큰 마당을 갖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표에는 숫자로 잘 안 잡히는 그림자가 하나 더 있다. 인재다. 기계를 배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주는 곳은 대개 반도체와 자동차, 그리고 최근 몇 해 봉투가 두꺼워진 방산이다. 건설기계는 경기를 심하게 타고 중장비라는 이미지도 덜 화려해, 이 경쟁에서 늘 한 발 밀린다.

문제는 앞으로다. 굴착기가 스스로 움직이는 시대가 오면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기계에서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으로 바뀌는데, 그 인재는 네이버와 삼성 같은 곳과 더 치열하게 다퉈야 한다. 두산이 자체 두뇌 대신 엔비디아의 손을 잡은 데는, 그 인재를 자력으로 다 채우기 어렵다는 사정도 겹쳐 있을 것이다. 심장을 남에게 맡기는 목줄은, 어쩌면 사람에서부터 시작된다.

반도체에서 본 그림, 다시 한 번

이쯤에서 앞선 여행이 겹쳐 온다. 반도체에서 한국은 메모리를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지만, 그 칩을 설계하는 근본 도구와 가장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노광 장비는 밖에 있었다. 만드는 일은 세계 최고인데,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를 정하는 원천은 남의 것이었다. 건설기계는 그 그림의 판박이다.

우리는 굴착기라는 완성품을 세계 상위권으로 조립해 낸다. 건설기계 회사 순위로 두산밥캣이 세계 10위, HD현대가 12위이고, 주력인 굴착기로 좁히면 순위가 더 올라간다. 하부주행체와 단조 부품 같은 몇몇 좁은 고리에서는 세계 최고의 공급사를 두었다. 그런데 그 굴착기의 심장, 최상위 대형 유압펌프와 밸브, 그리고 큰 엔진은 일본과 독일과 미국에서 온다. 조립은 정상, 심장은 문 밖. 반도체와 같은 문장으로 요약된다.

다만 결이 다른 데가 하나 있다. 반도체의 원천인 노광 장비나 설계 도구는 우리가 몇 해 안에 따라잡기 어려운 물건이다. 건설기계의 심장도 쉽지는 않지만, 이 사슬에는 이미 좁은 고리에서 값을 부르는 우리 회사들이 있다. 두산밥캣은 브랜드라는 벽으로 완성기의 예외를 만들어 내고, 진성티이씨와 대창단조는 세계 최대 회사가 곁에 두고 쓰는 좁은 고리를 지키고 있다. 심장을 아직 못 쥐었을 뿐, 값을 부르는 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가 굴착기 한 대의 이력서다. 거슬러 올라 보니, 우리는 건설기계를 세계에서 꽤 잘 만드는 나라였다. 다만 그 노란 몸통 안에서 가장 정밀하게 힘을 나누는 심장은 아직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니었다. 반도체에서 봤던 그 어긋남을 보여준 조립은 정상, 심장은 문 밖에 있는 상황은 쇠붙이의 세계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어긋남을 안은 채, 한국 건설기계에 미래가 있을까. 값싸고 빠른 완성기로만 겨루는 길이라면 답은 어둡다. 그 자리는 대량생산과 낮은 인건비를 앞세운 중국이 이미 밀고 올라오는 곳이다. 미래는 다른 데 있다. 사람이 타지 않는 무인화와 자동화라는 새 좁은 고리로 올라타는 것, 그리고 브랜드로 값을 지키는 것. 다만 그 새 고리의 두뇌인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은 또 남의 것이고, 그 인재마저 반도체와 자동차와 방산에 자주 빼앗긴다. 결국 이 산업의 운명은, 쇠붙이를 잘 만드는 회사에서 쇠붙이를 똑똑하게 만드는 회사로 얼마나 빨리 변신하느냐에 달려 있다. 몸통은 이미 세계적이니, 남은 싸움은 그 안에 앉힐 두뇌를 누가 쥐느냐다.

그래도 처음에 말한, 이름이 둘이던 그 굴착기를 다시 떠올린다. 몸통에 붙은 이름과, 팔 끝의 쇠붙이에 새겨진 또 다른 이름. 몸통의 이름은 남들과 값으로 겨루느라 조금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팔 끝의 그 작은 이름은 137개국을 누비며 대응했지만, 중국이 쫒아오자 베트남 거점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버틸 수 있었다. 어느 쪽이 이 산업의 진짜 얼굴인지, 나는 그 판단을 조금 더 미뤄 두기로 한다.

그런데 돈이 아니라 손님의 숫자가 사슬의 운명을 가르는 곳도 있다. 다음 여행은, 오랫동안 손님이 단 하나뿐이던 사슬로 향한다. 그 하나의 손님이 정부였고, 그래서 값도 정부가 정하던 세계. 방산이다.

글은 서사를 맡고, 숫자는 플랫폼이 맡습니다. 이 글의 산업을 데이터로 이어서 보려면 — 건설기계 밸류체인 지도 · 저평가 스크리너 · Value-chain Analy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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