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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 저니 · 2026-07-18

[밸류체인 저니-5] 손님이 하나였던 사슬 - 방산

대한민국 밸류체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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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거의 모든 물건은 팔 곳을 고를 수 있다. 값을 후하게 쳐 주는 손님에게 돌리면 되고, 마음에 안 드는 곳엔 안 팔면 그만이다. 무기는 다르다. 보통은 전투기 한 대를 완성해 놓아도 그걸 합법적으로 사 줄 곳은 세상에 단 하나, 자기 나라 정부뿐이다. 만드는 쪽은 여럿인데 사는 쪽이 하나인 시장, 그 비대칭이 이 사슬의 성격을 처음부터 끝까지 결정한다. 지금까지 이 책이 본 사슬들은 대개 돈이 어디에 남느냐의 이야기였다. 이번 사슬은 조금 다른 것을 묻는다. 손님이 몇 명이냐는 것이다.

K9 자주포(스스로 움직여 쏘는 대형 화포), K2 전차, 그리고 국산 전투기 KF-21. 이런 물건들의 사슬에는 오랫동안 아주 특이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 손님이 단 하나뿐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방산 회사가 만든 무기를 사 줄 곳은 오직 한국 정부, 정확히는 방위사업청이었다. 한 나라의 군대가 필요로 하는 양은 정해져 있고, 그걸 사는 창구도 하나다. 파는 쪽이 아니라 사는 쪽이 독점인 시장. 그래서 값도 대체로 정부가 정했다.

앞서 본 주정 시장에서는 파는 쪽이 독점이었다. 공급자가 값을 올려 부를 법한 자리인데, 정부가 가격을 눌렀다. 방산은 방향은 반대인데 결과는 동일하다. 이번엔 사는 쪽이 독점이라, 유일한 손님인 정부가 값을 정한다. 한쪽은 올리려는 걸 정부가 누른 것이고 다른 쪽은 정부가 유일한 손님이라 정하는 것. 값을 미는 방향은 반대인데, 회사가 스스로 부르지 못한다는 결과만 같다.

손님이 여럿이 된 해

그런데 최근 몇 년, 이 사슬에 세계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렸다. 지구 곳곳에서 전쟁과 긴장이 이어지자, 각국이 앞다투어 무기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빠르게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한국 무기가 그 수요를 받아 낸 것이다.

K-방산돈의 흐름
빅4 합산 매출약 40조원 (첫 40조 돌파)
방산 수출 수주액 (계약 기준)약 154억 달러 (+60.4%)
대표 계약폴란드 K2 전차 2차 약 9조원

※ 2025년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손님이 하나에서 여럿으로 늘자, 사슬의 성격이 통째로 바뀌었다. 한 나라 군대가 정해 준 물량만 만들던 회사들이, 이제 폴란드와 중동과 인도의 주문을 받는다. 국내에 팔 때는 정부가 정한 값에 맞춰야 했지만, 수출 시장에서는 그 무기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믿음직하게 도착하느냐에 따라 값이 매겨진다. 네 회사를 합친 영업이익률이 두 자릿수로 올라선 것도 이 무렵부터다. 오래 정부만 바라보던 을이, 세계라는 마당을 얻으며 비로소 값을 부를 여지를 갖게 된 것이다.

그 변화는 세계 순위에도 또렷이 찍혔다. 세계 100대 방산기업 명단에 한국 회사가 한꺼번에 네 곳이나 이름을 올렸다. 한화그룹이 21위, LIG넥스원(D&A) 60위, KAI 70위, 현대로템 80위. 몇 해 전만 해도 없던 풍경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무기의 값이라는 말이 아직 조금 낯설다. 자주포 한 문에 얼마, 전차 한 대에 얼마, 우리는 그걸 냉장고 가격처럼 말하지만, 그 물건이 하는 일을 생각하면 값이라는 단어는 어딘가에서 미끄러진다. 다만 장부 위에서는 그것도 결국 수출이고, 이 장에서 나는 일단 장부의 언어를 따르기로 한다.

네 회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장부를 펴기 전에, 네 회사가 각각 무엇을 팔아 먹고사는지부터 적어 둔다. 같은 방산이라 한 덩어리로 뭉뚱그리지만, 파는 물건이 다르면 돈이 남는 방식도 다르다.

회사무엇으로 사는가매출영업이익영업이익률순이익
한화에어로스페이스K9 자주포·천무(여러 발을 한꺼번에 쏘는 다연장 로켓), 항공엔진, 우주 발사체9조 5,251억2조 226억21.2%1조 4,675억
현대로템K2 전차·장갑차, 철도차량5조 8,390억1조 56억17.2%7,699억
LIG넥스원(D&A)천궁(날아오는 표적을 맞혀 떨어뜨리는 요격 미사일)·현무·해성 미사일, 유도무기(스스로 목표를 좇는 미사일류)4조 3,069억3,194억7.4%2,534억
KAIKF-21·FA-50·수리온, 완제 항공기3조 6,964억2,692억7.3%1,859억

※ FY2025.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연결에 한화오션(조선) 등이 함께 잡혀 별도 기준(매출 9조 5,251억·영업이익 2조 226억)으로 적었고, 나머지 세 회사는 연결이다. 순이익은 지배주주 귀속 기준.

같은 빅4인데도 돈이 남는 층이 이렇게 다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별도 기준 영업이익률 21%를 부르는데, K9 자주포와 천무처럼 세계 시장에서 스스로 이익을 매길 수 있는 완제 무기와, 남이 쉽게 흉내 못 내는 항공엔진 정비가 몸통이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의 17%는 K2 전차 수출 호황이 밀어 올린 숫자로, 사실 매출의 절반쯤은 마진이 박한 철도차량이 받치고 있어 전차만 떼어 보면 훨씬 두껍다. 반대로 KF-21을 개발하는 KAI와 미사일을 만드는 LIG넥스원(D&A)은 7%대에 머문다.

완제 전투기와 미사일을 만드는데도 이익이 얇은 건, 아직 실적의 몸통이 국내조달, 정부가 원가에 정해진 이윤만 얹어 주는 계약이기 때문이다. 수출이라는 마당이 넓어지며 이 층이 두꺼워지는 중이고, 그 변화가 가장 먼저 닿는 곳이 바로 이 영업이익률 칸이다.

완제품 뒤의 두 번째 사슬

지금까지 이름을 부른 건 완제품을 조립해 내다 파는 네 회사였다. 그런데 전차 한 대와 미사일 한 발 뒤에는,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과 구성품을 대는 두 번째 사슬이 있다. 완제품이 세계라는 마당을 얻는 동안, 이 부품 사슬은 어디에 서 있는지 나란히 놓아 본다.

자리회사무엇을 대는가매출영업이익률순이익
부품아이쓰리시스템적외선 영상센서·시커 - 미사일의 눈1,243억13.2%188억
부품SNT다이내믹스K2 변속기·함포 - 파워팩의 절반7,120억12.0%616억
부품풍산5.56~155mm 탄약, 방산소재(구리 겸업)5조 486억5.9%1,472억
부품빅텍전자전·전원공급 장치 구성품830억5.3%44억
부품퍼스텍유도무기 구성품·소형 무인기2,948억3.6%147억
체계·항전한화시스템AESA 레이더(전자식으로 빔을 쏘는 첨단 레이더)·항전(항공기의 전자·레이더 장비)·C4I(지휘·통제를 잇는 전산체계)3조 6,642억3.3%2,422억

※ FY2025 연결(퍼스텍·아이쓰리시스템은 별도). 풍산 매출엔 신동(구리) 사업이 함께 잡히고, 한화시스템 순이익엔 지분법·중단영업 등 영업외 손익이 크게 섞여 영업이익률과 어긋난다.

이 두 번째 사슬에서도 앞서 반도체 편에서 본 법칙이 그대로 되풀이된다. 남이 쉽게 못 만드는 좁은 자리는 매출이 작아도 두 자릿수 이익률을 부른다. 아이쓰리시스템의 적외선 시커가 그렇다. 미사일이 목표가 내뿜는 열을 좇아가도록 달아 주는 눈이다. SNT다이내믹스의 변속기, 곧 엔진의 힘을 상황에 맞는 속도로 바꿔 주는 장치도 마찬가지다.

이 부품 사슬의 맨 위, 가장 돈이 크게 남아야 할 심장은 엔진인데, 여기서 전투기와 전차의 사정이 갈린다. 전투기 엔진은 앞서 보았듯 여전히 미국 GE 같은 소수 회사의 몫이다. 반면 전차 쪽은 국산화가 한참 올라와서, K2 전차의 엔진은 옛 두산인프라코어(지금의 HD현대인프라코어)가 국산화했고, 변속기도 SNT다이내믹스가 이 분야 세계 강자인 독일 렌크와 겨루며 국산으로 끌어올렸다. 미사일의 눈인 적외선 시커 역시 아이쓰리시스템이 수입에 기대던 자리를 밀어냈다.

반대로 빅텍의 전원공급장치나 퍼스텍의 유도무기 구성품처럼 여러 회사가 만들 수 있는 넓은 자리는, 규모가 커도 이익을 거의 못 남긴 채 원가 수준에서 판다. 레이더의 한화시스템과 탄약의 풍산이 조 단위 매출에도 한 자릿수 이익률에 머무는 건 그래서다. 완제품은 세계 최고인데 그 심장은 아직 남의 것. 부품 사슬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면, 방산 자립의 남은 숙제가 어느 칸에 적혀 있는지가 또렷해진다.

마당은 어디로 움직이는가

여기서 이 책이 3부까지 오며 지속해 온 질문 하나가 선명해진다. 지금까지 나는 벽을 볼 때 누가 세웠는지, 문이 달렸는지, 문턱이 높은지를 물었다. 그런데 방산은 거기에 하나를 더하게 만든다. 이 벽 안의 마당은, 지금 커지고 있는가 줄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 쪽으로 움직이는가. 시멘트의 마당은 말라붙었고, 배터리의 마당은 전기차에서 저장장치로 옮겨갔으며, 방산의 마당은 국내에서 세계로 넓어졌다. 같은 벽이라도 마당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안의 회사는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 마당이 언제까지 넓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쟁이 잦아들면 주문도 잦아든다. 마당의 확장에 기대어 선 벽은, 마당이 다시 좁아지는 날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손님이 하나였던 사슬이 세계를 손님으로 얻은 이 장면은, 마당의 이동이 얼마나 큰 힘인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다.

그래서 세계에서 어디쯤인가

마당이 넓어졌다는 말은 기분 좋게 들리지만, 냉정한 좌표로 옮겨 보면 결이 조금 복잡하다. 흔히 “한국 방산 세계 4위”라고 한다. 맞는 말이되 조건이 붙는다. 폴란드 같은 대형 계약이 몰린 단년 기준으로는 세계 무기 수출의 6%로 4위지만, 오래 인용되는 5년 평균 기준으로는 2.2%로 10위 언저리다. 정부의 목표도 2030년까지 4대 수출국이라, 4위는 이미 도달한 자리가 아니라 정점을 한 번 찍고 굳히려는 자리에 가깝다. 그러니 4위라는 숫자에 취하기보다, 무엇으로 거기까지 갔는지를 보는 게 정확하다.

무기세계에서의 자리
K9 자주포세계 자주포 수출시장 약 52%, 사실상 1위
K2 전차독일 레오파르트2의 절반 값, 가성비 상위권
FA-50 경전투기고등훈련·경공격기 틈새의 강자

※ 2023년 기준 155mm 자주포 수출 점유율 약 52%. 누적 수출 계약 약 2,500문, 폴란드·핀란드·호주·루마니아 등 10여 개국이 운용한다.

표가 말해 주는 강점은 구체적으로 뜯어볼수록 선명해진다. K9 자주포부터 보자. 세계 자주포 수출시장의 절반을 넘긴다는 걸 숫자로 옮기면 이렇다. 한국이 수출한 K9이, 독일과 프랑스와 중국이 같은 무대에서 판 자주포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한 나라가 나머지 강국 셋을 합친 것을 이긴다는 뜻이다. 가성비라는 말로 뭉뚱그릴 게 아니라, 그냥 이 품목에서 압도적 세계 1위다.

K2 전차는 값에서 승부를 본다. 독일의 레오파르트2가 대당 400억 원을 훌쩍 넘는데, K2는 그 절반쯤이면서 성능은 크게 밀리지 않는다. 무기를 살 때 값이 절반이라는 건, 같은 돈으로 전차를 두 배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납기. 폴란드는 2022년 여름 계약서에 서명하고, 그해 겨울에 첫 K2와 K9을 배로 받았다. 반년이 채 안 걸렸다. 이런 속도가 가능한 건 30년간 대량생산으로 다져 온 공장의 저력이다. 서방의 이름난 무기들은 주문하고 나서 실물을 받기까지 보통 몇 년을 기다린다. 전쟁이 코앞인 나라에게 반년과 몇 년의 차이는 성능표의 몇 줄보다 훨씬 무겁다. 값싸고, 빠르고, 쓸 만하게. 이 세 단어가 한국을 여기까지 밀어 올렸다.

그러나 그 세 단어가 안 통하는 벽도 또렷하다. 한국은 2025년 말부터 2026년 사이 유럽의 주요 수주전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셨다. 2025년 11월 8조 원 규모의 폴란드 잠수함 사업은 스웨덴에, 2026년 5월 6조 원 규모의 루마니아 장갑차 사업은 독일 라인메탈에, 6월 프랑스의 다연장로켓 개량 사업은 영국·프랑스 컨소시엄에 내줬다.

앞서 노르웨이 전차 사업에서는 K2가 눈 덮인 산의 성능시험에서 독일 레오파르트를 압도하고도 정치적 이유로 졌다. 유럽은 값보다 나토라는 공동체의 정치를 앞세우고, 무기를 살 때 장기 저리 대출까지 얹어 주는 금융 패키지를 기대하는데 한국은 이 대목에서 약하다. 무엇보다 지금 이 호황의 상당 부분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이라는 불안이 만든 일시적 수요다. 불이 잦아들면 주문도 식는다. 값싸고 빠른 완제품이라는 강점이, 앞서 본 드론과 미래전의 새 문법 앞에서 언제까지 유효할지도 아직 열린 질문이다.

정리하면 한국은, 잘 만든 지상무기를 값싸고 빠르게 대는 세계적 강자로 올라섰다. 다만 그 자리는 마당이 넓어진 덕에 얻은 것이지 심장을 쥐어 얻은 것은 아니다. 위상은 올랐고, 목줄은 그대로다. 이 두 문장 사이의 거리가, 앞으로 한국 방산이 좁혀야 할 숙제다.

넷이 넷으로 남을까

세계의 방산 거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미국의 록히드마틴도 보잉도, 육지 무기부터 전투기와 미사일과 우주까지를 한 지붕 아래 거느린다. 그래야 한 나라의 국방을 통째로 설계하고, 그 규모로 값을 버틴다. 그런데 한국은 지상의 한화, 항공의 KAI, 전차의 현대로템, 미사일의 LIG넥스원(2026년 LIG 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 줄여서 LIG D&A로 이름을 바꿨다)으로 넷이 갈라져 있다. 개별로는 그 거인들과 체급이 다르다.

그래서 최근 눈에 띄는 움직임이 하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AI의 주식을 조금씩 사 모으는 중이다. 2026년 들어 지분을 11% 넘게 확보해,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에 이은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처음엔 단순 투자라던 목적도 경영 참여로 바꿔 달았다.

한화가 KAI를 탐내는 이유는 지도를 펴 보면 분명하다. 한화에는 자주포와 장갑차 같은 지상 무기, 미사일, 우주 발사체까지 있는데 정작 하늘을 나는 완제기가 없다. KAI는 KF-21과 FA-50과 수리온을 만드는 국내 유일의 전투기·항공기 제작사다. 한화가 KAI를 품으면, 땅과 바다와 하늘과 우주를 한 회사가 거느리는 한국판 거인이 완성된다. 앞서 세계에서 어디쯤이냐 물었을 때 나온 답. 위상은 올랐지만 아직 정점은 아닌 상황을 덩치로 돌파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다만 쉽지는 않다. KAI의 최대주주가 국책은행이고, 정부는 방산 대기업의 몸집 불리기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이건 당장의 인수라기보다 몇 년을 내다본 포석에 가깝다. 여기서 이 사슬의 오래된 성격이 다시 드러난다. 값도 정부가 정하고 유일한 손님도 정부이더니, 이제는 회사가 회사를 사는 일조차 정부의 뜻을 살펴야 한다. 시장의 합종연횡마저 국가의 승인을 구하는 자리. 방산이라는 사슬이 끝내 정부의 손바닥 위에 있음을, 이 통합 시도가 다시 한번 보여 준다.

가장 큰 문, 미국

그 넓어지는 마당에서 가장 크고 가장 늦게 열린 문이 미국이다. 세계 최대의 무기 시장인 미국은 오랫동안 자국 방산기업의 성이었는데, 최근 그 문틈이 벌어졌다. 미국이 인도·태평양의 다섯 동맹국, 한국·일본·호주·필리핀·싱가포르를 자국 군함과 항공기를 현지에서 정비하는 전방 기지로 삼기로 하면서다. 미 해군과 해병대가 2026년 함정 정비(MRO)에만 잡은 예산이 162억 달러, 우리 돈 23조 원에 이른다. 한화가 통째로 사들인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는 벌써 미 해군의 특수 함정 건조를 맡았고, 한화오션은 미국의 설계 명가와 손잡고 차세대 함정을 함께 그린다. 무기를 팔던 나라가, 이제 동맹의 무기를 고치고 짓는 인프라 국가로 올라서는 것이다.

물론 유럽의 문도 계속 넓어지고 있다. 2026년 6월 폴란드는 약 33조 원어치 무기 계약 스물아홉 건에 한꺼번에 서명했고, 그 안에 K9 자주포와 천무가 대거 담겼다. 손님이 하나였던 사슬이 유럽과 미국이라는 큰 손님을 나란히 얻는 중이다. 다만 손님이 늘어도 그 손님에게 팔지 말지를 정하는 손은 여전히 워싱턴에 있다. 마당은 넓어졌지만, 문지기는 그대로다.

그런데 심장은 아직 남의 것

다만 이 마당의 확장에는, 앞 편들과 겹쳐 읽어야 할 각주가 하나 붙는다. 손님은 세계로 넓어졌지만, 무기의 가장 깊은 심장인 엔진은 아직 한국 것이 아니다. 세계 자주포 시장 1위인 K9도, 96%에 가까운 요격률을 자랑하는 천궁도 한국이 만들지만, 국산 전투기 정작 국산 전투기 KF-21에는 미국 GE의 엔진 두 대가 얹힌다. 전투기 엔진을 온전히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 몇 되지 않고, 한국은 아직 그 문 앞에 서 있다.

왜 이토록 어려운가. 전투기 엔진은 수천 도의 불길과 엄청난 압력을 견디며 수천 시간을 도는 물건이라, 소재와 가공과 제어가 모두 극한에 이르러야 한다. 그래서 전투기 엔진을 스스로 개발·생산하는 나라는 지금도 미국·영국·프랑스 등 세계에 다섯 곳뿐이다. 게다가 남의 엔진을 빌려 쓰면 대가가 따른다. KF-21과 FA-50에 얹힌 GE 엔진은 면허생산이라,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전투기를 다른 나라에 팔 수 없다. 심장이 남의 것이면 완제품의 수출길까지 남의 손에 쥐여 있는 셈이다. 그래서 엔진 국산화는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라, 마당을 스스로 넓히기 위한 열쇠다.

이건 앞 편들에서 되풀이된 그림이다. 반도체는 돈이 남는데 그 목줄, 곧 장비와 소재가 외국에 있었고, 배터리는 금맥인 리튬 정련까지 국경 밖에 있었다. 방산은 그 사이 어디쯤이다. 마당도 얻고 완제품도 세계 최고인데, 정작 전투의 심장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독일에 값을 치른다. 그래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조 원이 넘는 돈을 국산 엔진 개발에 쏟아붓는 중이다. 2026년 7월에는 수천 시간을 견디는 국산 항공엔진의 시제를 처음 완성해 공개했는데, 먼저 무인기용부터 시작해 종국엔 KF-21에 얹을 2만 4천 파운드급 전투기 엔진까지 노린다. 전차 쪽은 이미 그 고비를 넘겼다. 엔진은 옛 두산인프라코어, 지금의 HD현대인프라코어가 10년 연구 끝에 2014년 1500마력급을 국산화했다. 오래 발목을 잡던 변속기마저 SNT다이내믹스가 2024년 국산화하면서, K2 전차의 심장은 온전히 우리 것이 되었다. 폴란드로 수출되는 K2에도 이 국산 엔진이 얹힌다. 남은 진짜 숙제는, 아직 남의 것인 전투기의 심장을 되찾아 오는 일이다.

무기의 형태가 바뀐다 - 드론

마당이 넓어지는 것만이 변화가 아니다. 무기 그 자체의 형태도 바뀌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방아쇠였다. 수백만 원짜리 자폭 드론이 수십억 원짜리 전차와 함정을 잡는 장면이 매일 벌어지면서, 전쟁의 문법이 비싸고 정밀한 소수에서 값싸고 대량인 다수로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지금도 더 빨라지고 있다. 초기 드론은 무선으로 조종해서 전파를 교란하는 재밍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낚싯줄처럼 가는 광섬유 케이블을 풀며 나는 유선 드론이 대세이다. 무선을 안 쓰니 재밍이 통하지 않는다. 최대 10km를 날아가 자폭하는 이 광섬유 드론 앞에서, 재밍으로 드론을 떨어뜨리며 우위를 누리던 우크라이나의 전자전 강점이 러시아의 쿠르스크 반격에서 단숨에 무너졌다. 창(드론)이 방패(드론을 막는 안티드론)를 앞지르는 속도가 워낙 빨라, 재밍과 레이더에 기댄 방어 체계는 벌써 무용론까지 나온다.

한국도 부랴부랴 따라간다. 정찰 위주였던 무인기를 자폭·요격이 가능한 소형 전투체계로 넓히고, 한국형 장거리 자폭무인기를 전력화하며, 드론을 막는 대드론 전력까지 함께 키운다. 다만 그 방어가 대체로 재밍에 기대고 있어 광섬유 드론에는 구조적으로 약하고, 북한이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이 유선 드론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매일 실전 데이터를 쌓는 전장 밖에서 뒤늦게 쫓아가는 처지인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K-방산에 묘한 숙제를 던진다. 지금까지 한국이 값을 부른 방식은 K9·K2처럼 잘 만든 비싼 완제품이었는데, 드론의 논리는 정반대인 얼마나 싸게, 얼마나 많이다. 값비싼 정밀함으로 마당을 넓혀 온 산업이, 값싼 대량이라는 새 문법에도 적응할 수 있을까. 이건 손님의 숫자가 아니라, 무기의 성격 자체가 던지는 질문이다.

무기의 두뇌도 남의 것

드론이 값싸게 많아질수록, 그것들을 한데 묶어 지휘하는 무언가가 필요해진다. 수백 대의 눈이 보내오는 영상과 위성사진과 통신 신호를 하나로 엮어, 여기 표적이 있다고 짚어 주는 두뇌다. 미래전의 승패는 점점 이 두뇌에서 갈린다. 그리고 그 두뇌를 가장 잘 만드는 회사가 미국의 팔란티어다.

팔란티어는 총도 전차도 만들지 않는다. 흩어진 데이터를 하나로 묶어 더 빨리 보고 더 빨리 결정하게 해 주는 소프트웨어를 판다. 예전엔 분석관이 몇 시간을 뒤지던 일을 인공지능이 몇 분으로 줄이면, 적을 발견해 때리기까지의 속도에서 상대를 압도한다. 미군의 힘이 세졌다는 말의 상당 부분은 실은 이 속도에서 나온다. 이 소프트웨어는 우크라이나 전선에 일찍부터 들어가 러시아 표적을 짚는 데 쓰였고, 미군은 이 회사의 표적식별 인공지능을 정식 무기 체계로 못 박았다. 무기의 시대가 쇳덩이에서 소프트웨어로 넘어가는 장면이다.

한국도 이 두뇌를 가지려 한다. 정부가 한국형 지휘통제 인공지능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여기서 이 글이 내내 만난 그림자가 또 어른거린다. 한국은 무인수상정 같은 첨단 무기의 몸통은 국산으로 만들면서, 정작 그것을 지휘하는 인공지능 두뇌는 팔란티어에서 빌려 쓰는 사례가 잇따른다. 무기는 국산인데 두뇌는 미국산인 셈이다. 국방 인공지능에 넣은 예산의 대부분이 여전히 쇳덩이 하드웨어에 쏠려 있어, 소프트웨어의 바닥 자체가 얕다. LIG디앤에이와 한화시스템이 국내 연구기관·네이버와 손잡고 국산 두뇌를 개발하고는 있지만, 팔란티어가 전장에서 매일 실전 데이터를 먹으며 앞서가는 동안 한국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선 격이다.

이 글은 엔진을 두고 심장은 아직 남의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래전에서 진짜 심장은 쇳덩이 엔진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두뇌일지 모른다. 완제품은 국산화했는데 그 두뇌는 또 남의 것, 반도체의 노광장비, 배터리의 광물, 방산의 엔진에 이어, 가장 최신이자 가장 눈에 안 띄는 네 번째 목줄이다. 값싼 드론을 아무리 많이 찍어 내도, 그것들을 묶어 지휘하는 두뇌가 남의 것이라면 그 전력의 열쇠는 결국 남이 쥔다. 마당을 넓히고 몸통을 국산화한 다음에 남은 마지막 숙제가, 어쩌면 이 보이지 않는 두뇌다.

무엇이 단단한가 - 사슬인가, 관행인가

여기까지 오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산업의 사슬은 단단한가. 답은 반반이다. 완제품이라는 껍데기는 단단하다. K9과 K2와 천궁은 세계가 줄을 서서 사 가고, 그 브랜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안을 열면, 엔진과 핵심 소재와 첨단 부품이라는 속은 여전히 남의 것에 기댄다. 앞의 두 표가 그대로 보여 준 그림이다. 겉은 두껍고 속은 얇은, 완제품에 편중된 단단함이다.

속이 얇은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방산 내수는 대부분 원가에 정해진 이윤만 얹어 주는 정부 조달이다. 게다가 실제 든 비용이 계약액을 넘으면 업체가 그 초과분을 떠안고, 아껴서 남기면 그 차액을 도로 반납해야 한다. 그래서 부품을 대는 협력사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정해진 만큼밖에 못 가져간다. 수출로 값을 스스로 부르는 완제품 대기업의 이익률은 두 자릿수로 뛰는데, 그 밑에서 부품을 대는 회사들의 이익률이 대체로 한 자릿수에 머무는 건 그래서다. 호황의 과실이 상류로 잘 흐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리와 로비라는 오래된 그림자는 어떤가. 방위사업청이라는 기구 자체가 2006년 방산 비리를 통제하려고 생긴 곳이다. 그 뒤로 노골적인 뇌물형 비리는 줄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어서, 최근에도 협력업체가 원가를 부풀리는 부정에 제재가 이어지고, 방위력개선비가 6년간 1조 5천억 원이나 안 쓰이고 남는 집행의 난맥이 지적된다. 값을 시장이 아니라 원가 산정이라는 서류가 정하는 산업이라, 그 서류의 회색지대에 부정도 저마진도 함께 깃든다.

그래서 이 산업에서 가장 단단한 것은, 어쩌면 완제품 브랜드도 청렴한 제도도 아니다. 정부가 원가와 이윤을 정한다는 그 구조 자체다. 값을 스스로 부르지 못하고 제도가 대신 불러 주는 자리, 거기에 협력사의 박한 이익도 원가의 회색지대도 뿌리를 둔다. 지금 넓어지는 수출이라는 마당은 바로 그 단단한 관행을 처음으로 흔드는 힘이다. 세계 시장이 값을 부르기 시작하면, 원가표가 정하던 값의 시대도 조금씩 저물 것이다.

마당이 넓어지면 봉투가 먼저

회사직원수평균 연봉평균 근속1인당 매출1인당 영업이익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별도)8,168명1억 2,400만13.1년약 11.7억약 2.5억
KAI5,241명약 1억 2,000만13.7년약 7.1억약 5,100만
LIG넥스원(D&A)5,382명약 1억 1,000만10.4년약 8.0억약 5,900만
현대로템4,541명약 1억 2,000만11.3년약 12.9억약 2.2억
아이쓰리시스템507명약 6,700만7.6년약 2.5억약 3,200만
SNT다이내믹스381명약 8,300만15.4년약 18.7억약 2.2억
풍산3,754명약 9,400만14.1년약 13.4억약 7,900만
빅텍247명약 5,300만8.7년약 3.4억약 1,800만
퍼스텍439명약 5,900만-약 6.7억약 2,400만
한화시스템4,855명약 1억 800만10.6년약 7.5억약 2,500만

* 1인당 수치는 FY2025 실적을 공시 직원수로 나눈 어림값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연결 재무제표에 한화오션 등이 함께 잡히므로 별도 기준(매출 9조 5,251억·영업이익 2조 226억)으로 계산했고, 나머지 세 회사는 연결 기준이다. 네 회사의 연봉에는 수출 호황기의 성과급이 반영돼 있다. LIG넥스원은 직원의 59%가 연구개발 인력이다. 아래 여섯 부품사는 실적표와 목록을 맞추기 위해 DART 사업보고서(2025) 직원현황의 남녀 가중평균으로 채웠으며, 직원수·연봉·근속은 별도 기준이다. 퍼스텍은 평균 근속을 공시하지 않아 빈칸으로 둔다. 1인당 매출이 유독 큰 회사는 연결 매출(해외·자회사 포함)이나 상사·범용처럼 회전이 빠른 사업이 국내 인원과 섞인 것이라, 실제 인력의 몫과는 층위가 다르다.

손님이 늘자, 월급봉투가 가장 먼저 알았다. 네 회사의 평균 연봉이 나란히 1억 2천만 원 안팎이다. 몇 해 전까지 방산은 안정적이지만 봉급은 수수한 동네로 통했는데, 2년 사이 연봉이 20%가량 뛰며 지형이 바뀌었다. LIG넥스원(D&A)의 봉투가 사상 처음 1억 원을 넘긴 것도 이 무렵이다.

근속 10년에서 14년. 손님이 하나뿐이던 시절의 인내가 그대로 쌓인 시간 위에, 손님이 여럿이 된 시절의 봉투가 얹힌 셈이다. 마당의 확장은 이렇게 재무제표보다 먼저 사람의 월급에 찍힌다. 다만 나는 표를 접으며 잠깐 생각한다. 전쟁이 잦아들어 마당이 다시 좁아지는 날, 이 봉투의 두께는 어느 쪽 속도로 되돌아갈까. 근속 13년의 사람들은 그 답을 이미 한 번쯤 겪어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방산에서 본 이 딜레마, ‘완제품은 세계 최고인데 심장은 남의 것’은 방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앞에서 본 노란 기계가 그랬고, 그 앞의 반도체가 그랬다. 그리고 이 “좁은 고리에서만 돈이 남는다”는 이야기는, 다음 사슬에서 훨씬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되풀이된다. 쇳덩이가 아니라 흰 가운의 세계, 알약 한 알을 만드는 제약이다. 거기서는 신약과 특허를 가진 회사가 사슬 전체가 번 돈을 거의 다 가져간다. 다음 여행은, 제약으로 향한다.

글은 서사를 맡고, 숫자는 플랫폼이 맡습니다. 이 글의 산업을 데이터로 이어서 보려면 — 방위산업 밸류체인 지도 · 저평가 스크리너 · Value-chain Analy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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