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는 한번 돌기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상상 이상으로 큰일이 나기 때문이다. 전기는 물이나 곡식과 달리 창고에 쌓아 둘 수가 없어서, 쓰는 만큼을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만들어 내야 한다. 생산과 소비가 매초 정확히 맞아야 하고, 그 균형은 전기의 맥박이라 할 주파수(우리 계통은 60헤르츠)로 드러난다. 그런데 대형 발전기 하나가 예고 없이 툭 서면 그 맥박이 순식간에 흐트러진다. 빠진 몫을 곧바로 메우지 못하면, 곁에서 돌던 발전기들이 제 몸을 지키려 잇달아 계통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 연쇄가 삽시간에 도시 하나, 때로는 나라 하나의 불을 통째로 꺼뜨린다. 이것이 블랙아웃, 대정전이다. 돈으로만 쳐도 큰일이라, 대형 발전기 한 대가 하루를 서면 수십억 원이 날아가고, 한번 멈춘 설비를 다시 정상 출력까지 끌어올리는 데만 몇 시간에서 며칠이 걸린다. 멈춘 설비가 원자로라면 이야기는 돈을 훌쩍 넘어 안전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발전소에는, 그 거대한 설비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도록 밤낮없이 들여다보고, 닳은 부품을 갈고, 고장이 나기 전에 미리 손보는 사람들이 붙어 있다. 발전 정비라 불리는 일이다. 우리는 이들의 존재를 거의 모른다. 그런데 이들이 없으면, 앞 장에서 본 그 비싼 변압기도 발전소도 그냥 고철이 된다.
이번 여행은 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로 간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한 사람의 이름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공기업이 쥐던 문이 열렸다
발전 정비는 오랫동안 한국전력공사KPS라는 공기업이 사실상 독점하던 일이었다. 발전소는 대부분 나라가 지었으니, 그걸 고치는 일도 나라의 회사가 맡는 게 자연스러웠다. 앞서 본 한국거래소나 통신처럼, 여기에도 견고한 벽이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벽에도 문이 열렸고, 이번엔 그 문으로 들어간 민간 회사가 벽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수산인더스트리다. 화력발전 정비 시장에서 공기업의 몫은 절반 수준에서 해마다 밀리는 중이고, 그 빈자리를 파고든 민간 정비사들 가운데, 상장 기업이면서 가장 어려운 원전 정비까지 파고든 대표 주자가 이 회사다. 실제로 이 회사 매출의 절반 가까이가, 아무나 손댈 수 없는 원자력발전소 정비에서 나온다.
게다가 수산의 원전 실력은 고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자회사 수산이앤에스가 원전의 계측제어, 곧 원자로의 상태를 재고 그 신호로 발전소를 조종하는 신경계(업계에서 MMIS라 부른다)를 직접 만든다. 발전소 계측은 크게 두 층으로 나뉜다. 설비에 직접 닿아 온도와 압력, 중성자를 재는 1차 계측과, 그 신호를 받아 읽고 발전소를 조종하는 2차 계측(제어)이다. 수산인더스트리의 자회사 수산이앤에스는 이 둘을 아우르는 원전 계측제어 전체를 다룬다. 제어는 신호 흐름상 2차라 불리지만, 원자로의 안전을 좌우하는 만큼 오히려 계측제어에서 가장 까다로운 고리다. 그런데 이 신경계에는 층위와 별개로, 결정적인 금이 하나 더 그어져 있다. 안전계통이냐 비안전계통이냐다.
안전계통은 사고가 났을 때 원자로를 멈춰 세우고 방사능을 가두는, 티끌만 한 오작동도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라 규제 심사가 가장 혹독하다. 비안전계통은 평상시 발전소를 감시하고 다루는, 그보다 문턱이 낮은 부분이다. 수산이앤에스는 이 가운데 문이 가장 좁은 자리를 지킨다. 안전계통용 제어기, 곧 설비를 정해진 순서대로 자동으로 움직이게 하는 산업용 제어장치인 안전등급 PLC POSAFE-Q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산화해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에 넣었다. 문턱이 낮은 비안전계통에도 국내 유일의 회사가 따로 있는데, 우리기술이 그 자리를 한국형 원전에 독점 공급한다. 남이 설계한 원전을 고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원자로의 두뇌를 안전과 비안전 양쪽에서 우리 손으로 만들어 다는 몇 안 되는 나라가 된 셈이다.
숫자로 이 시장의 모양을 보면 이렇다.
| 발전정비사 | 점유율 | 무엇으로 사는가 |
|---|---|---|
| 한전KPS | 약 53% | 원전 핵심설비 유자격(정비를 맡으려면 먼저 통과해야 하는 자격 등록) 우선권, 공기업만 쥔 독점 고리 (2008년 83%→개방) |
| 한국플랜트서비스 | 약 13% | 화력 종합정비·시운전(고쳐 놓은 설비를 실제로 돌려 보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시험 운전), 발전사 위탁물량으로 산다 (비상장) |
| 금화피에스시 | 약 11% | 화력 보일러·터빈 정비, 민간 발전정비의 원조 |
| 수산인더스트리 | 약 11% | 상장 민간 중 원전정비 최다, 열린 문으로 가장 깊이 들어갔다 |
| 일진파워 | 약 6% | 원자력·화력 기계정비에 플랜트 EPC(설계·자재조달·시공을 통째로 맡는 방식) |
※ 2024년 국내 발전정비 시장 약 3조 원(2조 9,819억) 기준. 점유율은 2023~24년 최신 집계이며, 한전KPS의 몫은 이후로도 하락 추세다. 각 사의 2025년 실적은 아래 표에서 따로 다룬다.
한전KPS의 몫은 2008년 83%에서 지금 53%까지 내려왔다. 시장이 열린 만큼, 수산인더스트리 같은 민간이 그 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 시장에는 다른 사슬에 없는 성질이 하나 있다. 발전소는 한번 지으면 30년, 길게는 60년을 돌아가는데, 그 수명 내내 들어가는 정비비가 설비 본체 값의 2~3배에 이른다. 발전소 한 채를 지으면, 그 두세 배가 평생 정비라는 이름으로 흘러나오는 셈이다. 돈이 한 고리에 크게 남지는 않아도, 좀처럼 마르지 않는 샘이다. 앞 편의 변압기가 ‘몇 년짜리 봄’이었다면, 정비는 아예 계절이 바뀌지 않는, 수십 년을 내리 흐르는 개울에 가깝다.
시간으로만 넘는 벽
왜 아무나 못 하는가. 돌아가는 원자로와 터빈을 만지는 일에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같은 설비를 뜯고 조립하며 쌓인 숙련. 어느 부품이 어떤 소리를 낼 때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 오래 다닌 카센터의 정비사가 시동 소리만 듣고 어디가 문제인지 짚어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발전 정비의 숙련이란, 바로 그 귀를 자동차가 아니라 터빈 앞에 옮겨 놓은 것이다. 이건 앞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본 ‘시간으로 쌓은 벽’과 정확히 같은 재료다.
다만 반도체에서는 거대한 대기업이 그 벽을 쌓았고, 여기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정비 회사가 같은 방식으로 벽을 쌓아, 공기업의 아성을 뚫었다.
게다가 이 벽에는 제도가 한 겹 더 둘러쳐져 있다. 원자력발전소를 정비하려면 한국수력원자력의 유자격 공급자로 먼저 등록돼야 하는데, 품질보증 등급(Q등급)과 KEPIC이라는 원전 전용 규격을 통과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린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이 심사와 숙련의 시간을 건너뛸 방법은 없다. 앞 편 반도체에서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벽’을 봤다. 수십 년 광학이 쌓여야 하는 EUV 장비 같은 것 말이다. 원전 정비의 벽도 결이 똑같다. 자본이 아니라 시간과 신뢰로만 열리는 문이다. 그래서 화력 정비는 이제 65%까지 민간에 열렸어도, 원전 핵심설비만큼은 여전히 한전KPS가 우선권을 쥐고 있다.
좁은 고리와 넓은 마당
이 시장은 사실 다섯 회사만의 것이 아니다. 그 뒤로 발전소가 도는 내내 곁에 붙어 사는 넓은 생태계가 있다. 원자로 안에 꽂히는 계측기는 우진이 만든다. 오르비텍은 가동중검사(원전을 돌리고 멈추는 사이 설비 속을 주기적으로 살피는 안전검사)만 판다. 우진엔텍은 계측제어(발전소 상태를 재는 계기와 그것을 다루는 제어장치) 정비와 시운전에 특화했고, 비에이치아이는 발전 기자재를 만들며 거기에 정비를 얹었다. 그리고 한전산업은 발전소 운전 자체를 통째로 대신 맡는다. 이들을 2025년 성적표로 위에서 아래로 늘어놓으면, 같은 ‘정비’라는 말 안에서도 이익이 어디에 남고 어디서 얇아지는지가 드러난다.
| 회사 | 무엇으로 사는가 | 매출 | 영업이익 | 이익률 | 순이익 |
|---|---|---|---|---|---|
| 수산인더스트리 | 상장 민간 중 원전정비 최다, 열린 문으로 가장 깊이 들어갔다 | 3,377억 | 431억 | 12.8% | 488억 |
| 우진엔텍 | 원전 계측제어(I&C) 정비·시운전, 계속운전(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을 검증을 거쳐 더 돌리는 것) 수혜의 좁은 자리 | 448억 | 51억 | 11.4% | 53억 |
| 금화피에스시 | 화력 보일러·터빈 정비, 민간 발전정비의 원조 | 4,234억 | 438억 | 10.3% | 306억 |
| 비에이치아이 | 발전 기자재(배기열로 증기를 만드는 HRSG, 그 증기를 다시 물로 되돌리는 복수기)에 O&M을 얹었다 | 7,741억 | 755억 | 9.8% | 652억 |
| 일진파워 | 원자력·화력 기계정비 + 플랜트 EPC 겸업 | 2,520억 | 241억 | 9.6% | 196억 |
| 우진 | 원전 노내핵계측기(원자로 안에 넣어 그 속 상태를 재는 계측기) 국산화, 계측 부품의 좁은 고리 | 1,504억 | 142억 | 9.4% | 111억 |
| 한전KPS | 원전 계획예방정비(원전을 계획대로 멈춰 세우고 하는 정기 정비) 유자격 독점, 규모는 이 판의 최대 | 1조 5,765억 | 1,401억 | 8.9% | 1,243억 |
| 한전산업 | 발전소 운전·검침 대행, 값이 가장 얇은 자리 | 3,945억 | 66억 | 1.7% | 41억 |
| 오르비텍 | 원전 가동중검사(ISI)·비파괴, 신사업 부진으로 적자 | 579억 | -140억 | -24.2% | 8억 |
※ FY2025 DART 기준(한전KPS·수산인더스트리·비에이치아이 등은 연결, 우진엔텍은 별도). 이익률은 매출 대비 영업이익. 한국플랜트서비스는 비상장·재무 미공시라 이 표에서 뺐다. 비에이치아이는 정비 전업이 아니라 발전 기자재 제조에 O&M을 얹은 회사이고, 한전산업은 정비보다 운전·검침 대행에 가깝다.
표를 위에서 아래로 훑으면 규칙이 하나 드러난다. 두꺼운 자리는 하나같이 원전 유자격이라는 좁은 고리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이익률 12.8%의 수산인더스트리, 11.4%의 우진엔텍, 10.3%의 금화피에스시. 모두 아무나 등록할 수 없는 원전이나 화력 핵심설비의 문을 통과한 회사들이다. 반대로 표의 맨 아래, 넓게 열린 마당으로 갈수록 값은 얇아진다. 발전소를 통째로 대신 돌려 주는 한전산업은 매출을 3,945억이나 올리고도 이익률이 1.7%에 그치고, 원전 검사에 신사업을 붙였다가 발을 헛디딘 오르비텍은 아예 적자다. 운전 대행이나 검침처럼 여러 회사가 할 수 있는 넓은 일은, 규모로 버틸 뿐 값을 부르지 못한다.
더 잔인한 건, 규모와 두께가 따로 논다는 점이다. 매출 1조 5천억의 한전KPS와 7,741억의 비에이치아이가 이익률에서는 나란히 9% 안팎으로 모이는데, 정작 그 절반도 안 되는 수산인더스트리가 더 두껍다. 덩치가 두께를 정하는 게 아니다. 원전이라는 유자격의 문을 몇 개나 통과했느냐, 그 좁은 고리에 얼마나 깊이 발을 담갔느냐가 두께를 가른다.
앞의 상류 반도체에서 세계 독점을 쥔 작은 회사가 대기업보다 두꺼운 돈을 불렀듯이, 여기서도 넓은 마당의 큰 회사가 아니라 좁은 고리의 유자격자가 돈을 부른다. 문이 열렸다지만, 정말 돈이 남는 안쪽 방문은 아직 몇 개 열리지 않은 셈이다.
세계에 몇 없는 정비 수출국, 그리고 다음 10년
이 그림을 세계로 넓히면, 정비라는 사업의 본질이 한 번 더 드러난다. 세계 발전 정비 시장의 주인은 설비를 만든 회사들, 곧 미국의 GE버노바와 독일 지멘스에너지, 일본 미쓰비시파워 같은 거인들이다. 이들은 가스터빈이나 발전기를 팔 때 아예 10년에서 20년짜리 정비 계약(LTSA)을 함께 묶어 판다. 설비를 판 회사가 그 설비를 평생 고칠 권리까지 쥐는 것이다. 업계에서 설치기반 락인이라 부르는 이 구조가, 반도체에서 본 좁은 고리의 정비판 버전이다.
원전 쪽도 프랑스 프라마톰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자기가 지은 원자로를 평생 정비하며 값을 가져간다. 그런데 한국은 이 판에서 특이한 자리에 있다. 남의 설계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원전 정비만큼은 한전KPS를 통해 스스로 해내는 몇 안 되는 나라가 됐고, 급기야 그 정비를 수출까지 한다.
숫자가 그 자리를 증명한다. 한전KPS는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네 기의 장기정비를 한국수력원자력과 함께 맡아 운영하고 있고, 2025년에는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의 설비 개선 공사를 4,850억 원에 따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에서도 7,000억 원대의 정비 물량이 기다린다. 이 회사의 해외 수주잔고만 1조 원을 넘는다. 그리고 이 문은 공기업만의 것이 아니다. 민간의 수산인더스트리도 바로 그 바라카 원전에서, 한전KPS가 맡은 전체 장기정비와는 별개로 터빈과 발전기의 계획예방정비를 제너럴일렉트릭·지멘스를 제치고 단독으로 따냈다(약 545억 원, 2028년까지 5년).
나라의 회사와 민간의 회사가 나란히, 남의 원전을 고치러 사막까지 날아간 것이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회사가 남의 장비 틈새를 파고들었듯, 발전 정비에서는 한국이 남의 원전을 대신 고쳐 주며 값을 벌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업에는, 앞으로 십 년의 새 개울이 두 갈래 더 열린다.
하나는 계속운전이다. 설계수명 40년이 끝나가는 원전을 안전성 평가를 거쳐 더 돌리는 것이다. 2030년 안에 수명이 차는 열 기가 이 심사를 받고 있다. 첫 사례인 고리 2호기는 2026년 봄 3년 가까운 설비 개선을 마치고 다시 돌기 시작했다. 원전 한 기를 되살리는 데 드는 설비 개선비가 수천억 원, 곧 정비사들에게는 통째로 새 일감이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편, 해체다. 국내 첫 상업 원전인 고리 1호기가 2025년 해체 승인을 받았는데, 그 비용만 1조 원이 넘고 완료까지 12년이 걸린다. 국내에서 순차로 문을 닫을 원전을 다 합치면 22조 원이 넘는 시장이고, 세계로는 2050년까지 수백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발전소를 짓는 일은 몇 해로 끝나지만, 되살리고 해체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오래, 훨씬 조용히 이어진다. 값이 크게 튀지 않는 대신 마르지 않는 이 개울이, 정비라는 사업의 진짜 얼굴이다.
근원에 선 사람
여기까지 나는 회사의 이름과 숫자를 좇아왔다. 돈이 어느 고리에 많이 남고 어디서 얇아지는지, 누가 원전이라는 문을 통과했는지. 그런데 이 사슬의 맨 앞, 공기업의 벽을 처음 밀어낸 수산인더스트리로 돌아가면 그 숫자 뒤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바로 회사를 세운 이의 삶의 궤적이 기업의 정신에 닿게 만든, 정석현 회장님이다. 1952년생, 일흔을 넘긴 지금도 창업주로 회사를 이끌고 계신다. 가난한 형편에 대학은 엄두도 내지 못하셨다. 중학교는 수석으로 들어가 장학금을 받으셨지만, 거기까지였다. 전주의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고졸 공채로 현대건설에 들어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을 다니셨다. 그렇게 10년, 사표를 내고 1980년 작은 공구상에서 다시 시작해 수산중공업 등 회사를 인수하며 수십 년 뒤, 지금의 수산그룹을 일구셨다.
이 회사는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의 터빈·발전기 계획예방정비를 제너럴일렉트릭과 지멘스 같은 세계적 거인들을 제치고 단독으로 수주했다. 발전소 전체의 장기정비는 앞서 본 한전KPS가 맡지만, 그중 터빈과 발전기라는 가장 까다로운 고리만큼은 이 민간 회사가 따로 떼어, 2028년까지 5년치 물량을 통째로 가져온 것이다. 가난한 형편에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밤에 대학을 다니시며 현장 기록을 남기시던 그 손이,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원전을 고치는 자리까지 간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화려한 벽들을 많이 봤다. 법이 세운 벽, 습관이 세운 벽, 시간이 세운 벽. 그중 어떤 것은 미안해할 구석이 있었고, 어떤 것은 우리 손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벽은 결이 다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고치는 일’을 붙들고, 화려한 반도체도 플랫폼도 아닌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오직 시간과 기록과 뚝심으로 쌓아 올린 벽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가장 근원이 되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적었다. 수산그룹의 정석현 회장님이라는 이름은, 그 문장이 실제로 사람의 형태를 하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 준다.
떠나지 않는 사람들, 그 자체가 사업
이 책에서 나는 회사마다 떠나지 않는 사람들을 헤아려 왔다. 근속연수가 그 벽의 견고함을 증언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전 정비에서는, 그 헤아림이 은유를 넘어선다. 여기서는 사람이 곧 설비이고, 오래 머문 숙련공 한 명이 곧 이 회사의 자산이다. 정비는 기계가 아니라 손과 기억으로 하는 일이라, 사람이 떠나면 벽도 함께 낮아진다. 그러니 이 회사에서 ‘사람이 오래 머문다’는 말은, 그 자체로 경쟁력의 다른 이름이다.
| 2025년 개별 | 직원수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 | 1인당 매출 | 1인당 영업이익 |
|---|---|---|---|---|---|
| 수산인더스트리 | 1,214명 | 약 7,070만원 | 8.5년 | 약 1.8억원 | 약 2,200만원 |
| 우진엔텍 | 332명 | 약 6,150만원 | 5.8년 | 약 1.3억원 | 약 1,500만원 |
| 금화피에스시 | 1,170명 | 약 7,180만원 | 7.9년 | 약 2.7억원 | 약 3,300만원 |
| 비에이치아이 | 688명 | 약 8,210만원 | 5.9년 | 약 11.1억원 | 약 1.1억원 |
| 일진파워 | 723명 | 약 5,900만원 | 8.0년 | 약 2.1억원 | 약 1,600만원 |
| 우진 | 163명 | 약 8,150만원 | 11.6년 | 약 4.4억원 | 약 5,900만원 |
| 한전KPS | 6,485명 | 약 8,320만원 | 13.9년 | 약 2.4억원 | 약 2,100만원 |
| 한전산업 | 3,614명 | 약 6,600만원 | 10.7년 | 약 1.1억원 | 약 160만원 |
| 오르비텍 | 556명 | 약 6,200만원 | 4.3년 | 약 1.0억원 | 약 -2,500만원 |
※ FY2025 사업보고서 공시 기준. 직원수·평균 연봉·평균 근속은 각 사가 신고한 개별(별도) 숫자를 남녀 인원으로 가중평균했다. 1인당 매출·영업이익도 자회사를 뺀 개별(별도) 매출·영업이익을 이 직원수로 나눠, 전 회사를 같은 기준으로 맞췄다(위 실적표는 자회사까지 합친 연결이라, 개별 기준인 1인당과는 분모·분자가 다르다). 비에이치아이의 1인당 매출이 유독 큰 것은 정비가 아니라 발전 기자재 제조를 겸해 사람당 매출이 원래 높은 것이지, 자회사 매출이 섞인 착시가 아니다. 비상장·재무 미공시인 한국플랜트서비스는 이 표에서 뺐다.
이 숫자를 앞의 사슬들과 나란히 놓아 본다. 반도체 장비 회사의 1인당 매출이 7.8억 원, 전력기기 회사들이 15억에서 18억 원. 정비는 1.8억 원이다. 초라해 보이는가. 그런데 나는 이 낮음이야말로 이 산업의 정체라고 생각한다.
정비는 설비를 파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파는 일이어서, 매출이 곧 인건비고 사람이 곧 상품이다.
회사가 남기는 몫이 한 사람당 2천만 원 남짓에 그치는 것도 그래서다. 그리고 1인당 숫자가 작다는 건, 그 일에서 사람을 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계로 대체할 수 있었다면 숫자는 진작 커졌을 것이다. 돈이 남지 않는 자리에, 대신 사람이 남는다.
발전소가 24시간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그 뒤에 선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는다.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들어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이. 그러나 그 당연함을 떠받치는 건, 밤에도 불 꺼지지 않는 발전소 어딘가에서 소리를 듣고 부품을 가는 손들이다. 가장 낮아 보이는 일이, 실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어 가장 높은 벽이 된다. 사슬을 거슬러 오르다 나는 이 정거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단순히 돈이 어디에 남는지를 넘어, 그 가치를 만든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