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 옆을 지났다. 어두운 기둥 사이에서 초록 불빛 하나가 조용히 깜박이고 있었다. 차는 잠들어 있는데 그 안의 그릇만 깨어서, 발전소가 보낸 전기를 한 방울씩 받아 담고 있는 셈이었다. 앞에서 나는 그 전기가 만들어지는 자리를 봤다. 이번엔 전기를 담아 두는 그릇의 사슬이다. 배터리다. 전기차를 굴리는 것도, 잠시도 멈춰선 안 되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전력을 받쳐 두는 것도, 결국 이 그릇의 일이다.
배터리 셀(배터리의 기본 단위)을 만드는 일에서 한국은 세계 상위권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다만 그 위상도 예전 같지는 않아서, 중국의 거인들에게 밀리며 세 회사의 몫은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다. 그리고 이 사슬을 거슬러 오르면, 돈이 남는 자리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보게 된다. 완제 배터리를 잘 만드는 것과, 그걸로 큰돈을 버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릇을 뜯어보기 전에, 무엇으로 짜였는지부터 천천히 짚고 가자. 배터리가 전기를 담고 내보내는 원리는 뜻밖에 단순하다. 리튬이 두 개의 방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다만 리튬은 통째로 움직이지 않는다.
리튬 원자에서 전자(원자 속을 도는 아주 작은 마이너스 전기 알갱이)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 남은 쪽은 전기를 띤 알갱이가 되는데, 이렇게 전자를 잃거나 얻어 전기를 띤 것을 이온이라 부른다.
이 리튬 이온만 배터리 안쪽 길(전해액)로 방을 건너가고, 떨어져 나온 전자는 배터리 바깥의 전선을 돌아 같은 쪽으로 향한다. 이온은 전기를 띠어 밀고 당기는 힘에 움직일 수 있지만, 전자는 전해액을 지나지 못해 바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로 이 바깥으로 도는 전자의 흐름이, 우리가 쓰는 전기다.
충전할 때는 리튬 이온이 한쪽 방으로 넘어가 쌓이고, 쓸 때는 반대쪽으로 돌아오는데, 그 왕복이 일어날 때마다 전자가 바깥을 돌며 전기를 만든다. 배터리를 리튬 이온 배터리라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배터리의 4대 핵심 소재는 이 리튬 이온의 왕복을 위한 장치다.
리튬 이온이 원래 머무는 방이 양극재이고, 충전할 때 건너가 쌓이는 방이 음극재다. 두 방 사이로 리튬 이온이 지나다니는 길은 전해액이다. 그리고 두 방이 직접 맞닿아 불이 나지 않게 가운데를 막되, 리튬 이온만은 통과시키는 얇은 벽이 분리막이다. 이 넷을 흔히 배터리 4대 소재라 부른다.
여기에 음극재를 펴 바르는 바닥이자 전자를 실어 나르는 구리막인 동박과, 성능을 조금씩 다듬는 첨가제가 더 붙는다. 이 소재들을 완제 셀에서부터 하나씩 거슬러 오르며 돈이 어디에 남고 어디로 새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이번 여행이다.
완제는 손님이 몇 없다
먼저 완제 배터리부터. 앞서 반도체 본딩에서 본 ‘작은 벽의 역설’이 여기서 한 번 더 나온다. 그 역설이란, 손님이 셋뿐인 작은 시장인데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장비를 만들 수 있어 오히려 값을 세게 부르던 것, 손님이 적다는 약점이 대체 불가능한 기술 덕에 힘이 되던 이야기다.
그런데 배터리에서는 그 결과가 정반대로 뒤집힌다. 한국 배터리 3사도 세계적 강자이고, 손님이 소수라는 조건까지 한미반도체와 똑같다. 이들이 만든 셀을 사 갈 곳은 결국 전기차를 만드는 몇몇 완성차뿐이다. 다만 본딩에서는 손님이 셋뿐이어도 아무도 그 장비를 대신 못 만들어 값을 불렀지만, 배터리 셀은 중국 회사들도 얼마든지 만든다. 그래서 손님이 소수라는 바로 그 사실이, 본딩에서는 힘이었는데 여기서는 그대로 약점이 된다. 아무리 좋은 셀을 만들어도 값을 마음껏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강자인데 손님이 적은’ 자리라도, 뒤에 대체 불가능한 벽이 있으면 그 소수가 힘이 되고, 벽이 없으면 그냥 약점이 된다. 게다가 전기차 대중화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이른바 캐즘(대중화 직전의 수요 정체 골짜기)이 이어지면서, 이 사슬 전체가 몇 년째 숨을 고르고 있다.
게다가 그 좁은 손님 시장마저, 중국에 빠르게 내주는 중이다.
| 배터리 셀 점유율 | 값 |
|---|---|
| CATL (중국) | 39.2% |
| BYD (중국) | 16.4% |
| 한국 3사 합산 | 15.4% |
※ 2025년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기준.
중국 두 회사가 세계 셀 시장의 절반을 넘게 쥐었고, 한국 3사를 다 합쳐도 그 절반에 못 미친다. 값싼 리튬인산철(LFP)로 무장한 중국이, 완제 배터리에서도 값을 부르는 자리를 하나씩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캐즘이라는 말은 원래 지질학에서 온 단어라고 한다. 땅이 깊게 갈라진 틈. 건너편이 빤히 보이는데 걸어서는 건널 수 없는 지형을 가리킨다. 이 사슬에 붙은 이름치고는 지나치게 정확해서, 뜻을 처음 찾아봤을 때 나는 조금 웃고 말았다.
그런데 캐즘이라는 말에는 오해가 하나 붙어 있다. 수요가 무너졌다는 뜻으로 들리지만, 실제 숫자는 다르다. 2025년 세계 전기차 판매는 2,070만 대로 오히려 역대 최대였고, 한 해 전보다 21% 늘었다. 무너진 게 아니라 예상만큼 가파르게 오르지 않았을 뿐이다. 문제는 업계가 훨씬 가파른 곡선을 그려 놓고 공장을 지었다는 데 있다. 몇 해 전 세운 증설 계획은 해마다 30~40%씩 뛰는 고성장을 전제했는데, 실제로는 21%에 그쳤고 북미는 오히려 4% 줄었다.
그 예측과 현실의 갭이, 다 지어 놓은 공장의 빈자리로 남았다. 캐즘이란 수요의 절벽이 아니라 기대의 절벽인 셈이다. 뒤에 볼 붉은 숫자들의 상당수가 바로 이 갭, 지어 둔 설비는 큰데 채울 주문이 예측만큼 오지 않은 것에서 나온다.
리튬을 보내는 쪽 - 양극재
그래서 사슬을 한 층 더 거슬러 오른다. 배터리 값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소재, 양극재다. 여기엔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엘앤에프 같은 한국 회사들이 있다. 그런데 이 정거장에서 걸음을 멈추면, 사슬의 슬픈 진실이 하나 보인다. 돈이 여기서도 남지 않고, 더 위로 새어 나간다는 것이다.
양극재를 만들려면 리튬과 니켈 같은 광물이 필요하고, 그 광물을 캐고 정련하는(불순물을 걸러 순도를 높이는) 상류를 중국이 압도적으로 쥐고 있다. 특히 요즘 수요가 폭발하는 값싼 리튬인산철 계열은, 중국이 사실상 세계의 표준을 정한다. 한국 회사들은 사슬의 중간에서 정교한 소재를 잘 만들지만, 그 재료의 값도, 완제품의 값도 자기가 부르지 못한다. 위로는 중국의 광물이, 아래로는 소수의 완성차가 값을 누른다. 사슬의 중간에 낀 자의 숙명이다.
숫자가 그 짓눌림을 보여 준다. 2026년 초 배터리용 탄산리튬(리튬을 소금 형태로 뽑아낸 배터리 원료) 값은 톤당 2만 6천 달러 안팎까지, 한 해 만에 거의 두 배로 뛰었다. 양극재 회사들은 이 급등한 원료를 사다 쓰면서도, 완제품 값은 소수의 완성차에 눌려 그만큼 올려 받지 못한다. 위에서 리튬값이 오르고 아래에서 완성차가 누르니, 중간에 낀 마진이 양쪽에서 짓눌린다. 아래 표에서 엘앤에프가 2025년에 적자를 낸 것도, 바로 이 짓눌림의 결과다.
양극재를 만드는 회사는 이 셋만이 아니다. 코스모신소재가 하이니켈 양극재로 그 뒤를 잇는다. 그리고 양극재 바로 앞에는 전구체라는 단계가 있다. 니켈과 코발트, 망간 같은 금속을 물에 녹여 곱게 침전시켜 한 알갱이 안에 고루 섞어 둔 분말인데, 여기에 리튬을 붙여 구우면 비로소 양극재가 된다. 말하자면 양극재의 반죽이다. 그런데 이 반죽에서 배터리 성능의 상당 부분이 정해지고, 양극재 원가의 대부분도 여기서 나온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인데, 전구체야말로 중국이 가장 깊이 쥔 곳이다. 니켈·코발트 정련과 바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그 국산화를 밀어붙이지만, 2025년 영업손실 654억 원을 냈다. 이 적자가, 값이 아직 그 상류로 다 빠져나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 회사 | 자리 | 매출 | 영업이익 | 이익률 |
|---|---|---|---|---|
| 에코프로비엠 | 하이니켈 양극재 | 2조 5,316억 | 1,433억 | 5.7% |
| 엘앤에프 | NCMA 하이니켈 | 2조 1,549억 | -1,568억 | -7.3% |
| 포스코퓨처엠 | 양극재·음극재 | 2조 9,387억 | 328억 | 1.1% |
| 코스모신소재 | 하이니켈 양극재 | 4,563억 | 24억 | 0.5% |
| 에코프로머티리얼즈 | 전구체(앞단계) | 3,925억 | -654억 | -16.7% |
※ FY2025(에코프로머티리얼즈·코스모신소재는 별도, 나머지 연결). 전구체는 양극재 바로 앞 단계로 중국 의존이 가장 깊다.
리튬을 받는 쪽 - 음극재
양극재가 리튬을 내보내는 쪽이라면, 음극재는 그 리튬을 받아 품는 쪽이다. 지금 세계 음극재의 몸통은 흑연인데, 이 흑연 음극재는 중국이 값과 물량을 거의 독점한다. 한국이 비집고 들어간 자리는 흑연이 아니라 그다음 세대, 실리콘 음극재다.
실리콘 음극재는 흑연보다 훨씬 많은 리튬을 품어 배터리 용량을 키우고 급속충전을 빠르게 해 주지만, 충전할 때마다 부피가 서너 배로 부풀었다 쪼그라들며 잘 깨지는 탓에 다루기가 까다롭다. 이 팽창을 제어해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세계에 몇 없는데, 대주전자재료가 그 좁은 틈에서 국내 1위다. 2025년 매출 2,546억 원에 영업이익 207억 원, 이익률 8.1%. 이 사슬에서 흔치 않은 흑자다. 남이 아직 잘 못 하는 새 소재라 값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실리콘 음극재는 값싼 대중차보다 고성능·급속충전 프리미엄 배터리에 주로 들어가, 캐즘 속에서도 그 수요가 상대적으로 덜 식었다. 흑연이 중국의 범용 값싸움에 눌려 적자로 가는 동안, 대주가 홀로 흑자인 이유가 여기 있다. 같은 음극재라도 남이 못 하는 좁은 고리에 서 있느냐가 흑자와 적자를 가른다. 포스코퓨처엠은 양극재를 만들며 흑연 음극재도 함께 쥐어 소재를 수직으로 넓힌 드문 회사이지만, 흑연이라는 몸통은 여전히 중국의 그늘 아래 있다.
실리콘 음극재를 쥔 회사도 대주전자재료 하나가 아니다. 한솔케미칼이 반도체 소재로 번 힘으로 실리콘 음극재에 뛰어들었는데, 이 회사가 17%를 남기는 건 배터리가 아니라 반도체·과산화수소라는 다른 몸통 덕이다. 흑연 음극재는 앞서 본 포스코퓨처엠이 사실상 국내 유일이되, 그 흑연의 원광은 중국이 쥔다.
| 회사 | 자리 | 매출 | 영업이익 | 이익률 |
|---|---|---|---|---|
| 대주전자재료 | 실리콘 음극재 | 2,546억 | 207억 | 8.1% |
| 한솔케미칼 | 실리콘 음극재(반도체 겸) | 8,840억 | 1,562억 | 17.7% |
| 포스코퓨처엠 | 흑연 음극재(양극재 겸) | 2조 9,387억 | 328억 | 1.1% |
※ FY2025 연결. 한솔케미칼 흑자는 반도체 소재·과산화수소가 몸통이고, 포스코퓨처엠은 양극재와 함께 잡힌 숫자다.
그 사이를 흐르는 길 - 전해액
전해액은 양극과 음극 사이로 리튬 이온이 오가는 길, 배터리의 혈액에 해당한다. 이 소재에는 다른 소재에 없는 성질이 하나 있다. 부피가 크고 운송이 까다로워 셀 공장 곁에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해액 회사의 운명은 배터리 3사가 어디에 공장을 짓느냐에 묶인다. 국내 1위 엔켐은 미국과 유럽으로 그 3사를 따라 공장을 늘리는 중인데, 2025년 매출 3,128억 원에 영업손실 784억 원. 규모를 키우느라, 그리고 캐즘의 직격을 맞아 적자를 냈다. 솔브레인도 전해액을 만들지만, 이 회사가 실제로 이익을 부르는 자리는 반도체 소재다. 반도체에서 번 돈으로 배터리 전해액의 적자를 함께 지고 가는 구조다. 혈액을 만드는 자리에서도 돈은 좀처럼 남지 않는다.
게다가 전해액도 한 겹이 아니다. 엔켐과 솔브레인, 그리고 비상장의 동화일렉트로라이트가 완성 전해액을 만든다면, 그 전해액에 녹여 넣는 핵심 염 LiPF6는 후성이, 이온의 움직임을 다듬는 첨가제 LiFSI는 천보가 만든다. 특히 후성의 LiPF6는 앞서 본 불산과 형석의 사슬이 끝나는 자리다. 형석에서 뽑은 불산으로 만드는 그 리튬염을, 후성이 국내에서 만들어 중국 의존을 조금이나마 덜려 한다. 다만 이 층들을 통틀어도 배터리 전해액에서 두툼한 흑자를 부르는 회사는 없다. 솔브레인과 후성이 흑자인 건 각각 반도체 소재와 냉매·특수가스라는 다른 사슬 덕이고, 배터리 전해액만 떼어 보면 여기도 적자다.
| 회사 | 자리 | 매출 | 영업이익 | 이익률 |
|---|---|---|---|---|
| 엔켐 | 전해액 국내 1위 | 3,128억 | -784억 | -25.1% |
| 솔브레인 | 전해액(반도체 겸) | 9,234억 | 1,336억 | 14.5% |
| 후성 | 전해질 염 LiPF6·불소화합물 | 4,716억 | 253억 | 5.4% |
| 천보 | 전해질 첨가제 LiFSI | 1,338억 | 37억 | 2.8% |
| 동화일렉트로라이트 | 전해액(비상장) | 769억 | -96억 | 적자 |
※ FY2025 연결(동화일렉트로라이트는 비상장). 후성·솔브레인·천보 매출엔 반도체·냉매·특수가스 등 배터리 밖 사업이 섞여, 흑자는 대개 그쪽 몫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게 있다. 솔브레인도, 후성도, 앞의 한솔케미칼도 하나같이 반도체 소재와 배터리 소재를 함께 만든다. 우연이 아니다. 둘의 뿌리가 같은 정밀화학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원자 몇 겹을 깎고 쌓는 일이고 배터리는 이온을 담고 나르는 일이라 겉모습은 달라 보이지만, 둘 다 불순물 하나가 성능을 죽이는 초고순도 화학이라는 점에서 같다. 특히 불소를 다루는 솜씨(후성의 반도체 특수가스와 배터리 리튬염), 과산화수소와 전구체를 정제하는 솜씨(한솔케미칼), 식각액과 전해액을 합성하는 솜씨(솔브레인)는 두 산업에서 거의 그대로 쓰인다. 그래서 이들에게 배터리 소재는 아주 새로운 사업이 아니라, 이미 가진 화학 역량을 옆 사슬로 한 칸 넓힌 것에 가깝다. 앞 편 반도체 상류에서 본 정밀화학의 세계와 이 배터리 소재의 세계가,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라는 뜻이다.
불을 막는 얇은 막 - 분리막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맞닿아 불이 나지 않게 사이를 막는 얇은 막이다. 배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술 문턱이 가장 높은 소재로 꼽힌다. 그런데 바로 그 분리막에서 이 사슬의 가장 참혹한 숫자가 나온다. 습식 분리막을 만드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2025년 매출 2,619억 원에 영업손실 2,464억 원, 매출보다 큰 손실을 냈다. 이익률로 치면 마이너스 94%다. 캐즘으로 주문이 끊기며 공장 가동률이 무너진 탓이다.
기술의 벽이 아무리 높아도, 그 벽 안의 마당이 통째로 마르면 이렇게 된다. 게다가 값싼 중국 분리막이 그 좁아진 시장마저 파고든다. 가장 어려운 소재를 만드는 회사가, 가장 크게 무너진 자리에 서 있다.
분리막을 만드는 국내 상장사는 사실상 둘뿐이다. 습식 분리막 1위 SK아이이테크놀로지와 2위 더블유씨피. 기술 문턱이 워낙 높아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좁은 고리인데, 문제는 그 좁은 고리마저 캐즘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더블유씨피 역시 2025년 매출 1,108억 원에 영업손실 1,276억 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처럼 매출보다 큰 손실을 냈다. 기술의 벽이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깊은 적자가 나온 셈이다.
| 회사 | 자리 | 매출 | 영업이익 | 이익률 |
|---|---|---|---|---|
| SK아이이테크놀로지 | 습식 분리막 1위 | 2,619억 | -2,464억 | -94.1% |
| 더블유씨피 | 습식 분리막 2위 | 1,108억 | -1,276억 | -115.2% |
※ FY2025 연결. 국내 분리막 상장사는 사실상 이 둘이다. 기술 문턱은 높지만 캐즘으로 가동률이 무너졌다.
여기서 습식이라는 말을 잠깐 풀어 두자. 분리막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습식과 건식으로 나뉜다. 습식은 원료에 기름을 섞어 필름을 뽑은 뒤 그 기름을 빼내며 아주 작고 고른 구멍을 내는 방식이라, 얇고 정밀해 에너지를 많이 담는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에 쓴다. 앞의 두 회사가 바로 이 습식의 강자다.
건식은 기름 없이 필름을 잡아 늘려 구멍을 내는 방식이다. 공정이 단순하고 값이 싼 대신 구멍이 덜 고와, 주로 값싼 LFP 배터리와 ESS에 쓴다. ESS는 전기를 모아 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대형 배터리 설비다. 그런데 앞서 봤듯 시장은 지금 그 LFP와 ESS 쪽으로 옮겨가는 중이고, 건식 분리막은 중국이 강하다. 한국이 공들여 쌓은 습식의 벽이, 정작 수요가 건식으로 기울며 힘이 빠지는 셈이다.
마당이 옮겨가는 중
그럼에도 이 사슬에는 새로 열리는 마당이 있다. 전기차가 주춤한 사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가 불러온 대형 배터리, 이른바 ESS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다만 이건 낮에 남은 전기를 밤에 쓰려고 쟁여 두는 그런 저장이 아니다. 전기를 하마처럼 먹는 데이터센터는 한순간도 멈춰선 안 되는데, 전력망이 그 폭증하는 수요를 미처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정전에 대비한 백업으로, 또 AI 연산이 만드는 들쭉날쭉한 전력 스파이크를 받쳐 평준화하는 완충기로 쓰인다.
ESS에 들어가는 리튬 수요만 2025년에 71%, 2026년에 다시 55% 늘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미국이 2025년부터 배터리 소재에까지 중국산 배제 규정(FEOC)을 걸면서, 그 틈으로 한국산 리튬인산철 양극재가 비집고 들어갈 북미 시장이 열렸다. 엘앤에프 같은 회사가 수천억을 들여 이 새 양극재 공장을 짓는 것도 그래서다. 값이 새어 나가는 사슬에서, 회사들은 마당이 옮겨가는 쪽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기고 있다.
ESS만이 아니다. 배터리 업계가 그다음 마당으로 점찍은 것이 로봇, 특히 사람 모양으로 걷고 일하는 휴머노이드다. 서비스 로봇 시장이 2030년 200만 대를 넘고 그 절반이 휴머노이드가 되리라는 전망 속에, 배터리 3사는 2026년 인터배터리에서 나란히 로봇용 배터리를 전면에 걸었다. 삼성SDI는 뒤에 볼 전고체를 휴머노이드의 게임체인저로 내세웠고, LG에너지솔루션은 홈로봇과 드론에 들어갈 원통형 배터리를 앞세웠으며, 현대차와 로봇 전용 배터리를 함께 개발하기로도 했다. 다만 이 마당은 아직 씨앗이다. 로봇이 자동차만큼 배터리를 먹으려면 몇 해가 더 걸리고, 그사이 회사들은 ESS라는 지금의 마당으로 버텨야 한다.
이 사슬이 알려 주는 건, 3부의 명제에 붙는 각주다. 돈은 가장 좁은 고리에 남는다고 했지만, 그 고리가 반드시 내 나라 안에 있는 건 아니다. 이 배터리 사슬에서 가장 좁고 무서운 고리는, 리튬을 정련하는 중국의 공장들이다. 사슬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결국 광물이라는 맨 밑바닥에 다다르게 된다. 앞 편 반도체에서 나는 이익은 한국에 남는데 그 목줄, 즉 장비와 소재는 밖에 있다고 적었다. 배터리는 거기서 한술 더 뜬다. 돈이 가장 많이 남는 자리 자체가 아예 국경 밖, 중국의 리튬 정련 공장에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목줄이 밖이었다면, 배터리는 금맥까지 밖이다.
그런데, 그 그릇은 안전한가
여기서 잠깐 멈춰야 한다. ESS가 배터리의 새 마당이라고 했지만, 이 마당은 한 번 크게 불탄 적이 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에서 ESS가 스물여덟 번 불이 났다. 2017년 한 건이던 것이 2018년 열여덟 건, 2019년 열한 건으로 번졌고, 불이 난 것은 전부 리튬이온 방식이었다.
원인은 배터리 결함과 설치·관리 부실이 겹친 것으로 밝혀졌지만, 결과는 분명했다. 한국의 ESS 산업이 제 손으로 세운 마당에서 제풀에 주저앉았다. 그 시절 ESS를 두고 사기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좁은 방에 셀을 빽빽이 쌓아 두는 물건이라, 한 칸에서 불이 나면 옆으로 옮겨붙어 방 전체가 타 버리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26년의 그릇은 안전해졌을까. 절반은 그렇다. 업계는 두 갈래로 답을 찾았다. 하나는 소재를 바꾼 것이다. 에너지를 많이 담는 대신 잘 타던 하이니켈(NCM)에서, 에너지는 덜 담아도 좀처럼 열폭주하지 않는 리튬인산철(LFP)로 갈아탔다. ESS는 전기차처럼 가벼울 필요가 없으니, 한자리에 놓고 굴리기만 하면 되니 무겁고 안전한 LFP가 오히려 맞다. 지금 세계 ESS의 80% 넘게가 LFP이고, 그 LFP의 표준은 앞서 봤듯 중국이 쥐고 있다. 한국 3사도 2026년 들어 뒤늦게 이 LFP ESS로 방향을 틀었다.
삼성SDI가 미국에서 2조 원대 첫 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따냈고,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테네시 공장의 라인 일부를 ESS용 LFP로 바꿔 하반기 양산에 들어간다. 오랫동안 하이니켈로 세계를 앞서던 이들이, 안전이 곧 값이 되는 ESS에서는 중국이 표준을 쥔 LFP로 되돌아온 셈이다.
다른 하나는 감시다. 수냉식 냉각과, 셀 하나하나의 이상을 인공지능이 미리 잡아내는 관리 시스템(BMS)이 의무가 됐고, 한 셀이 나더라도 옆으로 번지지 않게 막는 난연 설계가 들어갔다. 화재 확률은 그렇게 크게 내려왔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2025년에도 국내 한 데이터센터의 전원 설비에서 불이 났고, 관리 부실이라는 오래된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정직하게 말하면, ESS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자주 타지는 않지만 아직 불이 날 수 있는 물건이다. 확률을 크게 낮춘 것이지 0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언제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느냐고 물으면 누구도 특정한 해를 대지 못한다. 다만 그 답이 새로운 발명보다는 LFP라는 이미 있는 선택, 성능을 조금 포기하고 안전을 사는 쪽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안전은 대개 그렇게, 화려한 돌파가 아니라 조용한 타협으로 온다.
그리고 하나 더. ESS가 저장의 모든 답은 아니다. 리튬 배터리는 몇 분에서 몇 시간짜리 저장, 낮에 남은 태양광을 저녁에 쓰는 정도의 단거리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값싼 선수다. 하지만 며칠, 몇 주, 계절 단위로 전기를 쟁여 두는 일에는 맞지 않는다.
그 자리를 노리는 것이 수소, 곧 연료전지다. 전기로 물을 쪼개 수소를 만들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전기로 되돌리는 방식인데, 압축해 두면 몇 달이고 손실 없이 저장된다. 문제는 효율이다. 전기를 수소로 바꾸고 다시 전기로 돌리는 왕복에서, 처음 넣은 전기의 30~40%만 되돌아온다. 절반 이상이 변환 과정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수소는 재생에너지가 발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먼 미래, 남아도는 전기를 계절 너머로 옮겨야 하는 날에나 경제성을 갖는다. 지금 이 순간의 저장은 좋든 싫든 리튬의 몫이고, 배터리와 수소는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라 시간의 길이를 나눠 맡은 사이인 셈이다.
돈은 왜 중국에 남는가
금맥까지 밖에 있다는 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배터리 소재의 사슬을 위로 거슬러 오를수록 중국의 지분은 커진다. 배터리의 심장인 리튬을 소금에서 뽑아 정련하는 자리에서 중국은 세계 수산화리튬의 75%를 쥐고, 음극재의 몸통인 흑연은 70%를 대며, 값싼 LFP 양극재와 그 앞 단계인 전구체는 사실상 세계 표준을 정한다. 양극재를 이루는 다른 금속도 마찬가지다.
니켈은 인도네시아가 세계 광산의 3분의 2를 캐지만 그 제련소 상당수에 중국 자본이 박혀 있고, 코발트는 콩고가 최대 산지이되 캐낸 광석을 배터리급으로 정련하는 건 대부분 중국이다. 요컨대 광물이 나는 나라는 인도네시아·콩고·호주로 흩어져 있어도, 그것을 배터리 소재로 바꾸는 정련이라는 좁은 문은 거의 다 중국 안에 있다.
돈이 남는 자리는 캐는 광산이 아니라 정련하는 손이고, 그 손이 중국의 것이다. 심지어 이 소재들을 셀로 말아 내는 장비마저 중국이 40% 넘게 수출한다. 한국 회사들이 정교하게 소재를 만들어도, 그 재료를 캐고 정련하는 맨 위 칸은 거의 다 중국 안에 있는 것이다. 2025년 중국이 흑연 수출을 조인다는 말 한마디에 세계 배터리 업계가 술렁인 것도 그래서다. 돈이 남는 자리를 넘어, 사슬을 언제든 끊을 수 있는 자리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악은 값에도 그대로 새겨진다. 배터리 한 덩이를 만드는 데 얼마가 들어가는지 뜯어 보면, 그 격차가 우연이 아니라 구조임이 드러난다.
| 항목 | 중국 | 한국 |
|---|---|---|
| 완성 LFP 셀 값(2026) | 약 52~55달러/kWh | 하이니켈 위주라 LFP는 이제 진출 (NCM 약 67달러/kWh) |
| 핵심 원료 | 리튬 정련 75%·흑연 70%·LFP 양극재 표준을 자국이 보유 | 대부분 중국·해외서 수입 |
| 물류 | 광물·소재·셀 공장이 국내에 집적, 운송이 짧다 | 원료·소재를 수입해 운임·관세·재고를 진다 |
| 규모·가동률 |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 높은 가동률 | 캐즘으로 가동률이 낮아 고정비 부담 |
| 전기·인건비 | 낮다 | 상대적으로 높다 |
※ 완성 셀 값은 2026년 업계 추정 대략치. 팩 기준으로도 중국 LFP 약 84달러 vs 삼원계 약 128달러로, 북미·유럽 팩은 중국보다 44~56% 비싸다.
표를 위에서 아래로 읽으면, 중국 셀이 싼 건 어느 한 가지 때문이 아니다. 원료를 자국에서 캐고, 소재 공장이 그 곁에 붙어 물류가 짧고, 세계 최대 규모로 돌려 단가를 낮추고, 전기와 인건비까지 싸다. 네 겹의 이점이 층층이 쌓인 값이다. 한국은 이 가운데 어느 층에서도 앞서기 어렵다. 값싼 LFP 셀은 이제야 만들기 시작했고, 그 LFP의 원료 표준마저 중국 것이다. 값으로 정면에서 겨루는 싸움은, 시작하기 전에 이미 기울어 있는 셈이다.
한 가지 오해를 덧붙여 짚어 둘 만하다. 중국의 배터리 장악이 순전히 정부 보조금 덕이라는 생각이다. 절반만 맞다. 중국이 자국 안에서 전기차에만 번호판을 쉽게 내주고 세금을 깎아 주며 거대한 내수를 키운 것은 사실이고, 그 대규모 내수가 CATL과 BYD를 세계 최대로 길러 낸 밑거름이었다. 하지만 그 보조금은 이제 걷히는 중이다.
중국은 구매 보조금을 진작 없앴고, 전기차 취득세 면제도 2026년부터 절반으로 줄였다. 그런데도 흔들리지 않는다. 세계 1위 CATL은 2025년 순이익을 42% 늘려 10조 원을 넘겼고, 영업이익률은 16%를 웃돈다. 보조금이 아니라 셀 자체로 그렇게 남긴다. 정책은 씨앗이었을 뿐, 지금 중국을 떠받치는 건 규모와 값싼 LFP와 위아래를 다 쥔 수직계열화다. 그러니 보조금이 사라져도 이 장악은 풀리지 않는다. 오히려 내수가 식으면 그 값싼 물량이 더 세게 세계로 쏟아진다.
그럼 공장을 옮기면 되나
그래서 한국 소재 회사들은 짐을 싸서 밖으로 나간다.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중국산을 배제하는 조건에 보조금을 걸자 그 틈을 노려 미국에, 유럽이 역내 생산을 요구하자 헝가리와 폴란드에 공장을 짓는다. 삼성SDI의 헝가리 기지가 벤츠에 배터리를 대고, 에코프로비엠이 그 헝가리 라인을 통해 유럽 완성차로 양극재를 넣는 식이다. 관세와 보조금이라는 벽을, 벽 안으로 들어가 넘는 전략이다.
그런데 이게 값이 새는 구조를 정말 막아 주는가. 냉정하게 보면 절반만 그렇다. 공장은 옮길 수 있어도, 그 공장이 쓸 원료를 캐고 정련하는 맨 위 칸은 옮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조차 흑연의 중국 의존이 너무 심해, 중국산 배제 규정을 흑연에 대해서만은 2026년 말까지 미뤄 줬다. 공장을 미국에 지어도 그 안에 들어갈 흑연은 여전히 중국에서 사 와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해외 공장은 짓고 돌리는 값이 국내보다 비싸고, 하필 전기차 캐즘과 겹쳐 2025년 말부터 한국 소재사들은 미국·유럽 공장의 계약 취소와 투자 축소를 잇달아 공시했다.
미국의 규제 완화와 유럽의 수요 후퇴까지 겹치며, 벽 안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이 도중에 멈춰 선 것이다. 결국 해외 생산기지는 관세와 보조금이라는 정책의 벽은 어느 정도 넘게 해 주지만, 값이 상류로 새는 근본 구조, 원료의 목줄을 중국이 쥔 것 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우회로일 뿐, 사슬을 되찾아 오는 길은 아니다.
그럼 원료를 직접 캐면 되나
공장을 옮기는 것으로 부족하다면, 아예 원료를 직접 확보하면 어떨까. 실제로 한국은 그 길로도 움직였다. 포스코그룹이 대표 주자다. 2018년 아르헨티나의 리튬 염호를 사들여 리튬 사업에 뛰어들었고, 추가 인수까지 더해 지금 매장량 기준 1,500만 톤어치 리튬을 확보했다. 전기차로 치면 7천만 대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그렇게 캔 리튬을 배터리용 수산화리튬으로 정련하는 국내 공장도 세워, 연 4만 3천 톤, 전기차 100만 대분규모의 생산 체계를 갖췄다. 지금까지 전량 수입에 기대던 고순도 수산화리튬을 국내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2026년 들어 아르헨티나 염호는 가동률 70%를 넘기며 월 단위 흑자로 돌아섰고, 호주 리튬광산과 아프리카 흑연광산까지 포스코는 원료의 맨 위 칸으로 거슬러 오르고 있다.
의미 있는 진전이다. 다만 이것으로 값이 새는 구조가 뒤집혔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규모다. 연 4만 톤은 세계 리튬 수요의 한 조각일 뿐, 중국이 쥔 수산화리튬 정련 75%에 견주면 아직 작다.
다른 하나는, 리튬을 캐도 그 리튬을 배터리 소재로 바꾸는 데 필요한 화학까지는 아직 남의 것이라는 점이다. 리튬을 정련하고 전구체를 만들려면 황산이 들고, 전해질의 핵심 염(LiPF6)을 만들려면 불산이 든다. 그 불산의 원료인 형석, 그리고 LiPF6에 꼭 들어가는 삼염화인·오염화인 같은 기초 화학물은 국내 생산이 거의 없어 중국에서 사 온다. 광석을 캐는 맨 위 칸을 겨우 밟았더니, 그 광석을 녹이는 산과 그 산의 원료라는 더 깊은 칸이 또 중국 안에 있는 셈이다. 사슬은 그렇게, 거슬러 오를수록 한 칸씩 더 깊은 곳에서 중국을 만난다.
직접 캐는 것 말고, 그냥 다른 나라에서 사 오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도 자연스럽다. 원광 자체는 실제로 다변화가 가능하다. 리튬은 호주와 남미, 니켈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흑연은 아프리카에서 캘 수 있고, 미국의 중국산 배제 규정이 그 탈중국 소싱을 부추기고 있다.
다만 여기에도 함정이 둘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대로 병목이 광산이 아니라 정련이라는 점이다. 호주에서 리튬 원석을 사 와도 그것을 배터리급으로 정련하는 자리가 여전히 중국이면, 원산지만 바뀔 뿐 목줄은 그대로다. 진짜 대체는 정련까지 밖에 지어야 완성되는데, 포스코가 리튬에서 겨우 그 첫발을 뗀 정도다. 다른 하나는 광물마다 난이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리튬은 광산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어 그나마 다변화가 쉽지만, 흑연은 광산부터 중국이 압도하고 전해질 원료인 형석도 마찬가지라 대체할 자리 자체가 드물다. 결국 다른 나라에서 가져오는 길은 열려 있으되, 값싸고 빠르게 중국을 대신할 정도는 아직 아니다.
캐는 것 말고 되뽑는 길도 있다. 다 쓴 배터리에서 리튬과 니켈을 회수하는 재활용, 이른바 도시광산이다. 폐배터리를 잘게 부순 검은 가루에서 금속을 뽑아내면 광산도 정련소도 거치지 않고 상류를 조금 되찾을 수 있다. 성일하이텍이 그 자리에 서 있다. 다만 아직은 이르다. 전기차가 대량으로 폐기되려면 십 년은 더 걸리고, 그때까지는 되뽑을 폐배터리 자체가 많지 않다. 성일하이텍도 2025년 매출 1,946억 원에 영업손실 545억 원을 냈다. 재활용은 언젠가 상류를 되찾는 문이 될 수 있어도 지금은 아직 열리는 중인 문이고, 그 재활용 기술과 정련에서도 앞서 달리는 건 다시 중국이다.
사슬을 통째로 펼치면
‘금맥까지 밖에 있다’라는 말이 엄살이 아님을 확인하려면, 사슬을 한 토막이 아니라 통째로 펼쳐 보면 된다. 지금까지 완제 셀과 4대 소재,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을 하나씩 들여다봤다. 그런데 배터리라는 그릇은 그것만으로 되어 있지 않다. 전자가 흐르도록 깔아 주는 동박이 있고, 성능을 조금씩 밀어 올리는 첨가제가 있고, 소재들을 실제 셀로 말아 내는 장비가 있고, 다 쓴 셀에서 금속을 되뽑는 재활용이 있다. 한국 회사들은 이 고리마다 하나씩 서 있다. 앞서 본 소재들까지 한자리에 통째로 펼쳐, 각자가 무엇으로 먹고사는지(포지셔닝)와 2025년 성적표를 위에서 아래로 한 줄씩 늘어놓아 본다.
| 고리 | 회사 | 무엇으로 사는가 (포지셔닝) | 매출 | 영업손익 | 이익률 | 순이익 |
|---|---|---|---|---|---|---|
| 셀 | LG에너지솔루션 | 파우치·46파이 원통형(지름 46mm 원통형 셀), 셀 규모와 수율(불량 없이 제대로 만들어 내는 비율)로 산다 | 23조 6,718억 | 1조 3,461억 | 5.7% | 808억 |
| 셀 | 삼성SDI | 각형(네모난 금속캔형 셀)과 ESS, 프리미엄 셀로 산다 | 13조 2,667억 | -1조 7,224억 | -13% | -5,849억 |
| 셀 | SK온 | 파우치 하이니켈(NCM9, 니켈을 많이 쓴 고성능 양극재), 규모로 버틴다 | 6조 9,782억 | -9,319억 | -13% | 적자 |
| 양극재 | 에코프로비엠 | 하이니켈 양극재, 니켈을 높여 산다 | 2조 5,316억 | 1,433억 | 5.7% | 916억 |
| 양극재 | 엘앤에프 | NCMA 하이니켈, 테슬라·LG에 얹혀 있다 | 2조 1,549억 | -1,568억 | -7.3% | -5,347억 |
| 양극재·음극재 | 포스코퓨처엠 | 양극재와 음극재를 함께, 수직계열로 산다 | 2조 9,387억 | 328억 | 1.1% | 365억 |
| 음극재 | 대주전자재료 | 실리콘 음극재, 남이 아직 못 하는 새 자리 | 2,546억 | 207억 | 8.1% | 209억 |
| 전해액 | 엔켐 | 전해액 국내 1위, 규모를 키우는 중 | 3,128억 | -784억 | -25% | -706억 |
| 전해액 | 솔브레인 | 반도체 소재로 벌어 배터리 적자를 버틴다 | 9,234억 | 1,336억 | 14% | 840억 |
| 분리막 | SK아이이테크놀로지 | 습식 분리막, 가동률이 무너졌다 | 2,619억 | -2,464억 | -94% | -2,114억 |
| 동박 | SKC (SK넥실리스) | 동박을 얇게 뽑지만 돈이 무너졌다 | 1조 8,400억 | -3,050억 | -16% | -7,194억 |
| 동박 |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 하이엔드 일렉포일, 그래도 적자 | 6,775억 | -1,452억 | -21% | -1,672억 |
| 동박·전지박 | 솔루스첨단소재 | 유럽 생산 거점이 무겁다 | 6,161억 | -733억 | -12% | -1,384억 |
| 첨가제 | 천보 | 전해질 첨가제(LiFSI)라는 좁은 자리, 그래도 적자 | 1,338억 | 37억 | 2.8% | -600억 |
| 장비 | 피엔티 | 극판(전극 물질을 바른 배터리 속 얇은 판) 코팅·롤투롤 장비, 누가 이기든 판다 | 7,449억 | 956억 | 13% | 695억 |
| 재활용 | 성일하이텍 | 폐배터리에서 금속을 되뽑는다, 아직 적자 | 1,946억 | -545억 | -28% | -805억 |
※ FY2025 연결 기준(DART 전자공시). SK온은 2024년 오일 트레이딩 법인을 합병해 법인 연결 매출이 배터리 사업을 훌쩍 넘어선다. 그래서 SK이노베이션이 공시한 배터리 부문 매출·영업손익을 적었다. 순손익은 부문 단위로 따로 공시되지 않아 ‘적자’로만 표기했다. 삼성SDI 순손실은 중단영업손익을 포함한 연결 총계, 영업손익은 연결 영업손실이다. 솔브레인·SKC·솔루스첨단소재·포스코퓨처엠은 배터리 밖 사업(반도체 소재·화학·전자재료 등)이 실적에 함께 잡힌다. 전해액의 동화일렉트로라이트(동화기업 계열, 비상장)는 매출 769억·영업손실 96억·순손실 118억.
표를 위에서 아래로 훑다 보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개별 숫자가 아니라 방향이다. 적자가 너무 많다. 앞 편 반도체의 상류에서는 좁은 자리를 지킨 회사마다 20%, 50%씩 돈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셀도, 분리막도, 동박도, 첨가제도, 대부분이 적자이거나 겨우 1~5%를 번다. 돈이 어느 한 좁은 고리에 남기는커녕, 한국이 선 사슬 전체가 2025년 한 해를 손실로 통과했다. 분리막의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매출보다 큰 영업손실을 냈고, 동박의 세 회사는 나란히 붉다.
그 붉은 바다에서 돈이 남은 자리는 셋뿐인데, 하나같이 배터리의 본체가 아니다. 대주전자재료는 실리콘 음극재라는, 아직 남이 잘 못 하는 새 소재의 좁은 자리를 지켜 8%를 번다. 피엔티는 극판을 코팅하고 마는 장비를 파는데, 셀도 양극재도 다 적자인 해에 혼자 12.8%를 남겼다. 누가 이기든 곡괭이는 팔리기 때문이다. 솔브레인은 14.5%로 가장 두껍지만, 이건 배터리로 번 게 아니다. 이 회사가 이익을 부르는 자리는 반도체 소재이고, 배터리 전해액은 오히려 적자를 함께 지고 가는 쪽이다.
그러니 한 줄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2025년 한국에서 배터리 소재로 돈을 부른 회사는, 엄밀히 말해 배터리로 값을 부른 게 아니었다. 곡괭이를 팔았거나, 남이 아직 못 하는 새 소재의 좁은 틈에 서 있었거나, 아예 다른 사슬에서 벌어 온 돈으로 배터리의 적자를 메웠다.
정작 셀과 양극재와 동박이라는 그릇의 본체에서는, 돈이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앞에서 배터리는 금맥까지 밖이라고 적었는데, 사슬을 통째로 펼쳐 보니 그 말이 조용히 맞아떨어진다. 이 붉은 숫자의 행렬은, 값이 위의 중국 광물과 아래의 완성차 양쪽으로 다 빠져나간 뒤에 남은 빈 사슬을 찍은 사진 한 장이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
| 회사 | 직원수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 | 1인당 매출 | 1인당 영업이익 |
|---|---|---|---|---|---|
| LG에너지솔루션 (셀) | 12,922명 | 약 1억 1,200만 | 8.2년 | 약 18.3억 | 약 1.0억 |
| 삼성SDI (셀) | 12,826명 | 약 9,500만 | 12.6년 | 약 10.3억 | 약 -1.3억 (손실) |
| SK온 (셀) | 3,822명 | 약 9,340만 | 7.3년 | — | — |
| 에코프로비엠 (양극재) | 1,192명+ | 약 6,100만 | 4.7년 | 약 21억 | 약 1.2억 |
| 엘앤에프 (양극재) | 1,924명 | 약 6,040만 | 4.3년 | 약 11.2억 | 약 -8,100만 (손실) |
| 포스코퓨처엠 (양극재·음극재) | 2,979명 | 약 8,700만 | 8.7년 | 약 9.9억 | 약 1,100만 |
| 대주전자재료 (음극재) | 357명 | 약 6,870만 | 6.9년 | 약 7.1억 | 약 5,800만 |
| 엔켐 (전해액) | 398명 | 약 6,260만 | 2.9년 | 약 7.9억 | 약 -2.0억 (손실) |
| 솔브레인 (전해액) | 1,133명 | 약 9,340만 | 9.7년 | 약 8.2억 | 약 1.2억 |
| SK아이이테크놀로지 (분리막) | 319명 | 약 1억 1,410만 | 9.1년 | 약 8.2억 | 약 -7.7억 (손실) |
| SKC (동박) | 172명 | 약 1억 640만 | 9.3년 | — | — |
|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동박) | 591명 | 약 7,180만 | 13.8년 | 약 11.5억 | 약 -2.5억 (손실) |
| 솔루스첨단소재 (동박·전지박) | 198명 | 약 9,460만 | 4.1년 | — | — |
| 천보 (첨가제) | 135명 | 약 5,080만 | 4.2년 | 약 9.9억 | 약 2,700만 |
| 피엔티 (장비) | 591명 | 약 6,560만 | 5.0년 | 약 12.6억 | 약 1.6억 |
| 성일하이텍 (재활용) | 332명 | 약 6,000만 | 4.7년 | 약 5.9억 | 약 -1.6억 (손실) |
* 직원수·평균 연봉·평균 근속은 DART 사업보고서 ‘직원 현황’(2025)의 남녀 가중평균이고, 1인당 수치는 FY2025 실적을 그 직원수로 나눈 어림값이다. 대부분 국내 별도 인력 기준이라, 해외 생산·판매 법인이 큰 삼성SDI·엔켐 등은 1인당 매출이 다소 부풀려진다. ※ SKC는 지주 성격의 모회사 기준(172명)이고 동박 인력은 자회사 SK넥실리스에 있다. SK온은 인력이 별도 법인(3,822명)인데 매출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부문 기준이다. 솔루스첨단소재는 생산 거점이 유럽·캐나다에 있어 국내 인력이 198명뿐이다. 이 셋은 1인당 지표를 생략했다. 대주전자재료 직원수는 사업보고서 성별 총계 기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 연봉에는 이익 급증기의 성과급이 반영돼 있다. 에코프로비엠 직원수는 국내 기준으로 해외법인 인력이 빠져 있다. 엘앤에프는 영업손실(-1,568억)을 그대로 사람 수로 나눴다.
이 표에서 눈을 붙잡는 건 연봉도 매출도 아니고 근속이다. 삼성SDI나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처럼 12년, 13년을 넘긴 회사도 있지만, 표의 아래쪽 소재 회사들로 내려갈수록 숫자가 젊어진다. 엔켐은 2.9년, 천보는 4.2년, 엘앤에프는 4.3년. 앞의 사슬들에서 15년, 17년 같은 숫자를 보다가 여기로 오면, 이 사슬의 상당 부분이 얼마나 젊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엘앤에프의 1,924명은 지금 한 사람당 8천만 원 남짓의 손실을 등에 지고 있다. 본인 연봉보다 큰 손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남아 새 양극재 공장의 도면을 그린다. 캐즘이라는 틈의 시간을, 건너편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시간으로 버티는 셈이다. 벽이 완성된 산업의 시간표가 근속 15년이라면, 벽을 아직 쌓는 중인 산업의 시간표는 이렇게 생겼다. 이 젊은 근속이 언젠가 두 자릿수가 되는 날, 이 사슬의 벽도 함께 완성되어 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때에도 값이 여전히 상류로 새고 있다면, 이 표는 조금 쓸쓸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판을 바꿀 카드는 - 전고체
여기까지 읽으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이 기울어진 판을 통째로 갈아엎을 카드는 없는가. 몇 년 전부터 그 카드로 불려 온 것이 전고체 배터리다. 지금 배터리는 리튬 이온이 액체 전해질 속을 헤엄쳐 오가는데, 이 액체가 곧잘 불이 났다. 전고체는 그 액체를 고체로 바꾼다. 타지 않는 고체 전해질을 쓰니 화재 위험이 원천부터 사라지고, 같은 부피에 에너지도 더 담긴다. 삼성SDI가 목표하는 전고체의 에너지 밀도는 리터당 900와트시로, 지금 전기차 배터리(600~750)를 훌쩍 넘는다. 앞에서 본 ESS의 화재 문제를 근본에서 지울 수 있는, 진짜 다음 세대의 그릇이다.
그래서 정말 오고 있는가. 절반은 온다. 삼성SDI는 2028년이던 양산 목표를 2027년 하반기로 오히려 한 해 앞당겼고, 수원에 파일럿 라인을 깔아 시제품을 굴리는 중이다. 다만 대량으로 싸게 만드는 일은 여전히 난제라, 2026년 인터배터리에서 삼성SDI가 전고체를 처음 올린 무대는 전기차가 아니라 로봇과 휴머노이드였다. 값이 비싸도 되는 작은 시장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게다가 중국은 2026년부터 전고체를 얹은 차를 내놓겠다며 세계 최초를 선언했다. 이 새 판에서도 한국은 이미 추격하는 자리에 서 있다.
그런데 전고체가 온다 해도, 이 편이 짚어 온 구조적 단점을 다 풀어 주지는 못한다. 화재는 분명히 잡는다. 하지만 값이 상류로 새는 문제는 그대로다. 왜 그런지는 전고체가 무엇을 바꾸는지 보면 드러난다.
전고체가 손대는 건 딱 두 자리다. 액체 전해액을 고체로 바꾸고, 흑연 음극을 리튬메탈로 바꾼다. 그런데 정작 배터리 값의 가장 큰 덩어리인 양극재와 그 원료 리튬은 그대로 쓴다. 앞에서 본 그 양극재·리튬 상류가 전고체에서도 고스란히 중국의 것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새로 바뀌는 두 자리마저 남의 손에 있다. 고체 전해질의 핵심 원료인 황화리튬은 일본 이데미쓰코산이 도요타와 함께 양산을 선점했고, 흑연을 대신할 리튬메탈 음극은 중국 간펑리튬이 이미 시험생산에 들어갔다. 한국도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이 황화리튬 증산에 뛰어들었지만, 연 수백 톤 규모로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정리하면 이렇다. 안 바뀌는 자리(양극재·리튬)는 원래 중국 것이고, 새로 바뀌는 자리(고체 전해질·리튬메탈)는 일본과 중국이 먼저 가 있다.
소재를 갈아 끼워도, 돈이 남는 상류의 주소는 바뀌지 않는 것이다. 전고체는 그릇을 더 안전하고 더 좋게 만들 수는 있어도, 돈이 어디에 남느냐 하는 이 사슬의 오래된 지형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안전이라는 벽은 넘되, 돈이라는 벽은 그 너머에 그대로 서 있다.
그런데 돈이 국경 밖으로 새는 사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몸통은 우리가 만드는데, 그 심장을 남이 쥐고 있는 사슬도 있다. 다음 여행은 흙을 파고 건물을 부수는 거대한 노란 기계, 건설기계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