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라는 영화가 있다. 10년 만에 돌아온 감독, 700억 원이라는 한국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 칸 경쟁부문. 첫날에만 33만 명이 들어 올해 최고의 오프닝을 기록했고, 사흘 만에 122만을 넘겼다. 여기까지는 성공한 영화의 흔한 숫자들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흔치 않은 사정이 하나 있다. 이 영화를 배급한 회사의 모회사도, 이 영화가 걸린 극장 체인도, 지금 법원의 회생절차 안에 있다는 것이다. 법원이 빚을 조정해 회사를 살리는 절차다. 관객이 낸 표값은, 회생채권이라는 그물 위를 흘러간다. 그리고 그 그물의 주인은, 이 책이 여행해 온 어떤 회사보다도 사슬을 많이 가진 그룹이었다.
사슬을 다 가진 그룹
중앙그룹의 사슬을 펼쳐 보면 이렇다. 신문, 방송, 콘텐츠 제작, 그리고 극장과 영화 배급. 뉴스가 태어나서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영화가 걸리기까지, 콘텐츠라는 물건이 지나가는 거의 모든 마디를 한 지붕 아래 모은 것이다.
5부 내내 나는 사슬의 한 고리를 쥔 회사들을 찾아다녔다. 이 그룹은 고리를 하나가 아니라 전부 쥐고 있었다.
5부의 명제대로라면, 이 그룹은 가장 부유해야 했다. 돈은 사슬의 집중된 고리에 남는다고 했으니, 고리를 다 가진 자에게는 남는 게 넘쳐야 마땅하다. 그런데 2026년 6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이백육억 원의 도화선
6월 12일, JTBC가 206억 원의 유동화차입금을 갚지 못했다. 그룹 전체 차입금 2조 8천억 원에 비하면 1%도 되지 않는 돈이다. 그런데 이 작은 구멍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계열사들이 서로의 빚을 보증하고 서로에게 돈을 빌려주며 얽혀 있던 탓에, 한 곳의 연체가 도미노처럼 나머지 전부의 조기상환 사유가 된 것이다. 이틀 뒤 지주회사를 포함한 계열 네 곳이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하루 뒤 JTBC도 뒤따랐다.
6월 30일, 서울회생법원은 그 네 곳의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JTBC에 대해서는 개시 여부를 보류하고 자율구조조정(ARS) 절차를 밟게 했다. 채권자들과 먼저 협의해 보라는 뜻이다. 신문사는 채권은행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채권단과 합의해 회사를 되살리는 절차다. 그 와중에 한 증권사가 보유한 220억 원어치 기업어음을 갚지 못해 6월 19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만기가 각각 그해 12월과 이듬해 3월로 아직 남아 있던 어음이었는데, 신용등급이 떨어지자 채권자가 앞당겨 회수를 요구한 것이다.
메가박스의 부채비율은 연결 기준 2,212%에 달했고, 한 해 이자 비용이 자본 총계보다 커져 있었다. 자본 대비 빚의 크기를 말하는 지표다.
표로 정리하면 건조하지만, 요컨대 이런 이야기다. 사슬 전체가 빚으로 서로를 떠받치고 있었고, 그중 가장 가는 줄 하나가 끊어지자 전부가 함께 내려앉았다. 약한 고리 네 개를 이으면 강한 사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긴 도화선이 된다.
그룹의 두 핵심 법인이 회생을 신청하기 직전에 낸 지난해 성적을 나란히 놓으면, 이 도화선의 정체가 숫자로 드러난다.
| 회사 (FY2025 · 연결) | 무엇으로 사는가 | 매출 | 영업손익 | 순손익 | 부채비율 |
|---|---|---|---|---|---|
| 콘텐트리중앙 (제작·극장) | 제작과 극장을 한 몸에 묶었지만, 히트의 값은 플랫폼이 가져가고 지나가며 떼는 얇은 몫만 남는다 | 1조 833억 원 | +88억 원 | -931억 원 | 318% |
| 제이티비씨 (방송) | 방송 본체는 별도 기준 흑자로 돌아섰으나, 그룹의 빚과 자본잠식 문턱에 눌려 무너졌다 | 3,737억 원 | -287억 원 | -427억 원 | 2,621% |
※ DART 공시(연결) 기준. 콘텐트리중앙은 제작과 극장을 연결에 포함한다. 한 해 전인 2024년은 콘텐트리중앙이 매출 8,795억 원·영업손실 474억 원·부채비율 385%, JTBC가 매출 3,801억 원·영업손실 386억 원·부채비율 1,440%였다. 회생절차에서 채무와 자산이 다시 산정되는 중이므로, 이 숫자들은 절차 개시 직전의 장부값이다. 메가박스는 콘텐트리중앙의 자회사여서, 앞서 본 메가박스 단독 부채비율 2,212%는 자본이 얇은 극장 부문만의 값이고, 흑자를 낸 제작 부문까지 더한 지주 연결에서는 318%로 희석된다.
표를 읽는 법은 이렇다. 매출은 작지 않다. 제작과 극장을 묶은 콘텐트리중앙은 지난해 1조 원을 넘겼고, 방송의 매출도 3,700억 원을 웃돈다. 영업 단계까지는 오히려 나아지는 중이었다. 콘텐트리중앙은 한 해 전 470억 원이 넘던 영업적자를 지난해 88억 원 흑자로 돌려세웠다.
그런데 그 아래, 순손익 줄에서 숫자가 뒤집힌다. 영업으로 88억 원을 벌고도 900억 원이 넘는 순손실이 났다. 벌어들인 것보다 이자로 빠져나간 것이 훨씬 컸다는 뜻이다.
방송사는 더 아슬아슬하다. 자본이 190억 원으로 쪼그라든 사이 부채가 5천억 원에 가까워, 부채비율이 2,600%를 넘어섰다. 빚이 자본을 넘어서 밑천이 마이너스로 가는 자본잠식의 문턱이다. 본체의 영업은 돌아섰는데 재무가 먼저 무너지는 이 어긋남이야말로, 사슬을 다 가진 그룹이 왜 가장 먼저 쓰러졌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 준다.
마디마다, 돈이 새고 있었다
왜 어느 마디에도 돈이 남지 않았을까. 마디를 하나씩 짚어 보면 답이 보인다.
신문은 광고라는 마당이 말라 버린 지 오래다.
방송은 어떤가. JTBC의 매출은 몇 해 사이 4,381억 원에서 3,737억 원으로 미끄러졌고, 2022년에는 유동성을 마련하려고 예능과 드라마의 지식재산권 279개를 433억 원에 계열사에 넘겼다. 콘텐츠의 저작권과 판권을 묶은 자산이다. 돈이 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산을, 스스로 퍼낸 것이다.
그런데 장부를 들여다보면 묘한 대목이 하나 있다. 지난해 방송사 본체의 영업은, 별도 기준으로 32억 원의 흑자로 돌아서 있었다. 본체는 다시 벌기 시작했는데, 그룹의 빚이 그것을 삼킨 것이다.
제작은 이 책에서 이미 본 풍경의 반복이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요리 예능을 만든 제작사가 이 그룹의 계열이다. 그러나 글로벌 플랫폼에 납품하는 제작은 제작비에 10~20% 안팎의 마진을 얹어 받는 계약이고, 흥행의 초과분과 판권은 플랫폼의 것이다.
한국알콜이 점유율을 쥐고도 값을 못 불렀듯, 제작사는 세계적 히트를 만들고도 값을 못 부른다. 그 프로그램이 비영어권 순위를 휩쓸며 시즌2까지 이어졌어도, 폭발적 흥행의 값은 대부분 플랫폼에 남고 제작사에는 계약된 마진만 돌아온다. 히트작이 그룹을 구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애초에 히트의 값이 이 그룹의 마디로는 흐르지 않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극장. 팬데믹 전 한 해 2억 2천만 명이 들던 마당이 1억 명 수준으로 줄었고, 세 극장 체인이 모두 적자다. 여기는 돈이 새는 정도가 아니라, 마당 자체가 절반으로 접힌 자리다.
태평양 건너의 고리
그렇다면 신문에서, 방송에서, 극장에서 빠져나간 값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상당 부분은 태평양을 건너갔다.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터진 지난 몇 해, 매출의 규모는 커졌는데 정작 만든 사람의 몫은 줄었다. 글로벌 플랫폼은 드라마 한 편의 제작비를 전액 대 주는 대신, 제작사에는 대개 3~10%의 마진만 얹어 주고 지식재산권을 통째로 가져간다. 그 작품으로 두고두고 돈을 벌 권리다. 흥행 뒤에 오래도록 흐르는 2차·3차 수익, 그러니까 재방송과 굿즈와 후속 시즌에서 나오는 돈은 전부 플랫폼의 몫이다.
한국 드라마 한 편이 250억 원 남짓으로 만들어져 플랫폼에 1조 원 넘는 값을 안겼다는 추정이, 이 구조를 가장 극단적으로 요약한다. 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은 플랫폼이 가져가는 화려한 하청이다.
이 책의 명제로 옮기면 이렇다. 돈은 사슬의 가장 집중된 고리에 남는데, 미디어에서 그 고리는 이제 제작도 극장도 아닌 유통 플랫폼이고, 그 플랫폼은 국경 밖에 있다. 중앙그룹이 신문부터 극장까지 국내의 모든 마디를 다 쥐고도 값을 못 부른 건, 정작 돈이 남는 단 하나의 고리를 남이, 그것도 바다 건너의 남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물에서 중국이 그랬듯, 콘텐츠에서는 글로벌 플랫폼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2026년의 제작사들은 뒤늦게 판권을 되찾으려 몸부림친다. 플랫폼에 통째로 넘기는 대신 공동으로 갖거나 스스로 쥐는 계약으로 조금씩 방향을 튼다. 국내 플랫폼끼리 힘을 합치려는 시도도 있어서, 토종 OTT 두 곳은 몇 해째 합병을 논의해 왔다. 다만 그 합병은 3년째 표류하는 사이 두 회사의 누적 적자만 1조 원을 넘겼고, 그동안 글로벌 플랫폼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돈이 남는 고리를 되찾는 일은, 사슬을 길게 늘리는 일보다 훨씬 더디고 어렵다.
같은 사슬, 다른 운명
흥미로운 건, 똑같이 제작부터 유통까지 사슬을 한 그룹이 직접 쥔 회사가 하나 더 있다는 점이다. CJ다. 투자배급과 극장을 함께 쥔 구조가 중앙과 닮았고, 극장 자회사 역시 한 해 천억 원대의 순손실을 냈다.
그런데 CJ는 버텼다. 차이는 사슬 안이 아니라 밖에 있었다. CJ에는 설탕과 밀가루와 물류라는, 이 책의 3부에서 본 그 오래된 사업들이 있었고, 그 돈으로 극장에 1조 원을 수혈했다. 꾸준히 현금을 벌어다 주는 자리다.
중앙의 사슬에는 그런 바깥이 없었다. 신문도 방송도 극장도 전부 마당이 마르는 산업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빌려주는 돈이 수혈처럼 보였지만 실은 도화선이었다.
대조군을 한 칸 더 넓혀 본다. 콘텐츠라는 물건을 다루는 회사들을 늘어놓으면, 돈이 어디에 남고 어디서 새는지가 사슬의 길이와는 무관하다는 게 드러난다.
| 회사 (FY2025 · 연결) | 살아가는 자리 | 매출 | 영업이익 | 이익률 | 순이익 |
|---|---|---|---|---|---|
| JYP Ent. | 소수 아티스트 판권을 직접 소유, 팬덤이라는 좁은 고리에 집중 | 8,219억 원 | 1,552억 원 | 18.9% | 1,606억 원 |
| 에스엠 | 아티스트 판권 소유, 팬덤 굿즈·공연까지 수직으로 쥔다 | 1조 1,749억 원 | 1,830억 원 | 15.6% | 3,594억 원 |
| 스튜디오드래곤 | 드라마 제작 1위 라이브러리, 그래도 플랫폼에 얹힌 얇은 몫 | 5,307억 원 | 304억 원 | 5.7% | 103억 원 |
| CJ ENM | 투자배급·제작·OTT를 묶은 수직계열화의 원조, 돈은 사슬 밖 식품·물류에서 온다 | 5조 1,345억 원 | 1,329억 원 | 2.6% | 170억 원 |
| 하이브 | 레이블을 늘려 덩치는 키웠으나 아티스트 판권 의존이 순손실로 돌아왔다 | 2조 6,499억 원 | 493억 원 | 1.9% | -2,544억 원 |
※ FY2025 연결, DART 공시. 에스엠 순이익엔 지분·자산 처분 같은 영업외 이익이 크게 잡혀 영업이익보다 크다. 하이브는 영업이익을 내고도 아티스트 관련 손상·평가손으로 순손실을 봤다. CJ ENM과 별도로 상장된 극장 자회사 CGV는 매출 2조 2,754억 원·영업이익 962억 원으로 영업 자체는 흑자였으나, 금융비용 등에 눌려 순손실 1,434억 원·부채비율 534%를 기록했다. 본문에서 말한 CGV의 적자가 이 순손실이다.
표를 위에서 아래로 훑으면, 같은 콘텐츠 생태계 안에서도 운명이 갈리는 자리가 보인다. 팬덤이라는 대체 불가한 좁은 고리를 직접 쥔 K팝의 두 회사는 이익률이 두 자릿수로 두껍고, 남의 플랫폼에 얹혀 사는 영상 제작·배급은 히트를 쳐도 한 자릿수의 얇은 몫에 그친다.
하이브는 그 좁은 고리를 레이블 확장으로 넓히려다 오히려 순손실을 봤다. 사슬을 길게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 아무도 대신 못 하는 한 고리를 쥐었느냐가 값을 가른다. 중앙그룹이 끝내 갖지 못한 것도 사슬의 길이가 아니라, 바로 그 한 고리였다.
유튜브를 이길 수 있는가
여기서 한 걸음 물러나, 더 큰 질문을 던져 보자. 그래서 이 전통 미디어라는 것들이, 유튜브를 이길 수 있는가.
먼저 숫자를 보자. 2025년, 유튜브는 한국의 TV 화면 점유율 15%를 넘겼다. 거실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를 보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반대로 지상파와 종편 같은 방송의 점유율은 한 해 만에 20.5%에서 18.5%로, 케이블은 27%에서 23%로 내려앉았다. 방송사의 광고 매출은 20%가 빠졌다. 2026년 조사에서는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이 방송 채널 35%, 유튜브 33.7%, OTT 30.2%로 거의 삼등분됐다. 아직은 공존이다. 그런데 기울어 가는 공존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게 있다. 전통 미디어와 유튜브는 사실 같은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방송사는 자본과 시간을 들여 드라마와 대작과 뉴스를 만든다. 유튜브는 만들지 않는다. 유튜브가 가진 건 콘텐츠가 아니라 유통이다. 수천만 명이 알아서 올린 영상을 알고리즘이 알아서 골라 붙여 주는 자리. 이 편의 언어로 하면, 유튜브는 돈이 남는 그 좁은 고리, 플랫폼을 쥐고 있다.
그래서 질문을 정확히 고쳐야 한다. 품질로는 전통 미디어가 유튜브를 이긴다. 이미 이기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에 얹힌 한국 드라마가 세계를 휩쓰는 걸 보라. 진짜 문제는 품질이 아니라 값이다. 좋은 걸 만들어도, 그걸 실어 나르는 유통을 남이 쥐고 있으면 값을 못 부른다. 품질은 전통이, 값은 플랫폼이 가져간다.
그러니 이렇게 망하면 무슨 소용인가라는 물음은 정확하다. 이게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좋은 걸 만드는데도 그 값을 못 부르면 재정이 무너진다. 재정이 무너지면 다음번엔 그 좋은 것조차 못 만든다.
700억 원짜리 영화도, 100억 원짜리 드라마도, 결국 그걸 감당할 곳간이 있어야 나온다. 곳간이 마르면 콘텐츠 생태계가 밑동부터 마른다. 중앙그룹이 사슬을 그렇게 많이 쥐고도 회생절차에 들어간 건 딱 이 이유다. 신문도 방송도 제작도 극장도 다 가졌는데, 정작 돈이 남는 그 한 고리, 사람을 붙잡아 두는 플랫폼을 못 쥐었다.
그렇다면 답도 거기서 나온다. 유튜브를 정면으로 이기려 들면 진다. 수천만 명이 공짜로 올리는 영상의 바다를 몇백 명의 방송사가 물량으로 당할 수는 없다. 이기는 길은 유튜브가 못 가진 것을 쥐는 것뿐이다.
하나는 아무나 못 만드는 대작 판권이다. 유튜버가 700억 원짜리 영화를, 세계가 볼 드라마를 만들 수는 없다. 그건 여전히 전통의 자리다. 다른 하나는 그것을 실어 나를 자기 플랫폼이다. 토종 OTT들이 힘겹게 버티는 이유이자, 그것들이 밀리면 안 되는 이유다.
품질에 유통을 붙여야 비로소 값을 부른다. 품질만으로는 안 된다. 이 책이 여러 사슬에서 되풀이한 그 문장이 미디어에서도 똑같이 울린다. 돈은, 좁은 고리에 남는다.
거꾸로 선 증명
5부 내내 나는 같은 명제를 확인해 왔다. 돈은 사슬의 가장 집중된 고리에 남는다. 본딩 장비의 70%, 변압기의 병목, 찌꺼기까지 긁어내는 회수율 98.5%.
중앙그룹은 그 명제의 뒷면을 증명한다. 사슬을 다 가져도, 그 안에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좁은 고리가 하나도 없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신문은 포털이, 방송은 인터넷 영상 서비스가, 제작은 플랫폼이, 극장은 거실 소파가 각각 대신할 수 있었다. 네 개의 벽을 가졌지만, 네 개 모두에 문이 활짝 열려 있었던 셈이다.
이 그룹 사람들의 숫자도 적어 둔다. 다만 이번엔 1인당 계산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그룹의 진짜 숫자는 지금 회생법원의 조사위원들이 다시 세는 중이고, 그 답은 올겨울 조사보고서에 실릴 것이기 때문이다.
| 회사 | 직원수 | 평균 연봉 | 상태 (2026년 7월) |
|---|---|---|---|
| 콘텐트리중앙 (제작·상장) | 약 790명 | 6천만 원대 | 회생절차 개시 |
| 메가박스중앙 (극장·배급) | 1,222명 (상용직 약 505명) | 5천만 원대 추정 | 회생절차 개시 · 부채비율 2,212% |
| JTBC (방송) | 540명 | 6,461만 원 | 자율구조조정 협의 중 |
※ JTBC는 2025년 말 사업보고서(정규직 461명·기간제 79명·평균근속 약 4년), 메가박스는 공정위·국민연금 공시 기준(1,222명은 극장 현장인력 포함, 근속 미공시), 콘텐트리중앙은 취업 포털 기준 어림값이다. 실적과 채무는 회생절차에서 재산정되는 중이다.
※ 실적표에서 견준 대조군의 사람 숫자도 같은 자리에 적어 둔다(2025년 사업보고서·DART, 남녀 가중평균). JYP 496명·평균 9,634만 원, 에스엠 765명·7,013만 원, 스튜디오드래곤 179명·9,407만 원(근속 4.8년), CJ ENM 3,105명·8,376만 원, 하이브 893명·9,331만 원(근속 3.0년), CGV 4,096명·5,658만 원(근속 10.8년). 돈이 두껍게 남는 회사일수록 연봉도 두껍다. 다만 이들은 무너진 사슬 바깥에 선 회사여서, 회생 세 곳을 담은 위 표에는 함께 세우지 않았다.
호프
다시, 그 영화 이야기로 돌아온다. 회생절차가 개시되고 보름 뒤, 이 그룹의 배급사는 사상 최대 제작비의 영화를 개봉했다. 칸에서 한국영화 역대 최고액으로 200여 개 나라에 미리 팔았고, 손익분기점은 그 선판매를 반영해도 국내 관객 700만 명쯤으로 추산된다. 언론은 이 개봉을 두고 회사의 존속이 걸린 승부라고 썼다.
물에 빠진 그룹이 띄운 마지막 배. 그 배의 이름이 하필 ‘호프’, 희망이다.
영화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잘되어도 그 돈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는 사실 사이에서, 나는 예매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린 채 잠시 머뭇거렸다. 극장 밖에서는 이 극장의 정산금이 묶인 작은 배급사들과 스태프들이 정부에 호소문을 내고 있었다. 사슬의 맨 끝, 가장 가는 마디들이 늘 가장 먼저 마른다.
이 글이 읽힐 무렵이면 법원은 방송사의 운명에 대해서도 답을 정했을 것이다. 다만 어느 쪽이든, 이 여행이 확인하려던 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벽은 숫자가 아니라 좁음으로 값을 만든다. 사슬을 다 가진 자가, 가장 먼저 무너졌다.
이로써 사슬의 여행이 끝났다. 벽을 하나씩 보았고, 함께 지키는 법을 보았고, 벽 밑의 배관을 보았고, 벽들을 잇는 사슬을 끝까지 걸었다. 벽을 다 가져도 살 수 없었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벽의 목록이 아니라, 벽을 읽는 질문일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그 질문들을 챙겨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