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무엇이 잡히는가. 예전엔 동전 몇 개였고, 요즘은 스마트폰이다. 어느 쪽이든, 손끝에 닿는 그 서늘한 감촉은 결국 땅속에서 온 것이다. 구리와 니켈과 아연, 이름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금속들.
사슬을 거슬러 오르는 여행의 끝은 언제나 같은 곳이다. 땅이다. 반도체도, 배터리도, 플라스틱도, 결국 땅에서 캐낸 무언가로 만들어진다. 이번 여행은 그 맨 밑바닥, 광물과 원자재의 세계로 간다. 그리고 이 바닥에는, 지금까지 본 어떤 사슬보다 기묘한 돈의 흐름이 하나 있다.
광산이 제련소에 돈을 준다는 것이다.
거꾸로 흐르는 수수료
보통의 사슬에서는 아래가 위에 돈을 낸다. 그런데 광물의 세계에서는, 광석을 캐는 광산이 그 광석을 금속으로 바꿔 주는 제련소에 가공 수수료를 지불한다. 제련수수료라 부르는 이 돈은, 제련소라는 고리가 얼마나 귀한지를 보여 주는 온도계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이 온도계가 얼어붙었다. 중국이 제련소를 무섭게 늘리면서 광석 쟁탈전이 벌어졌고, 아연 제련의 기준 수수료는 톤당 274달러에서 80달러까지 무너졌다. 현물 시장, 그러니까 그때그때 즉석에서 사고파는 시장에서는 급기야 마이너스까지 갔다. 제련소가 광산에 오히려 웃돈을 얹어 주고 광석을 받아 오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제련이라는 고리의 값이 사실상 증발한 셈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대의 제련소를 가진 회사는 망해 가고 있어야 맞다. 그런데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수수료가 무너져도 버는 회사
울산 온산에는, 단일 제련소 기준으로 아연과 연(납)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드는 공장이 있다. 고려아연이다. 이 회사의 2025년 성적표는 이렇다.
| 고려아연 (FY2025) | 값 |
|---|---|
| 매출 | 16조 5,879억 원 (+37.6%) |
| 영업이익 | 1조 2,319억 원 (+70.3%) · 사상 최대 |
| 영업이익률 | 7.4% |
| 순이익 | 7,702억 원 (지배주주 7,750억 원) |
| 기록 | 44년 연속 영업흑자 |
본업의 수수료가 반 토막 아래로 떨어진 해에 사상 최대 이익. 비밀은 광석 안에 있다.
아연 광석에는 아연만 들어 있지 않다. 금과 은, 구리, 안티모니, 인듐 같은 금속들이 미량씩 섞여 있는데, 고려아연은 광석에서 금속을 98.5%까지 긁어내며 스무 종이 넘는 금속을 동시에 회수한다. 수수료가 사라져도, 남들이 버리는 찌꺼기에서 긁어낸 은과 금이 이익을 채운다. 그 덕에 이 회사는 한 해 2천 톤이 넘는 은을 뽑아내는, 세계에서 은을 가장 많이 만드는 제련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는 정직하게 짚어야 한다. 이 해의 사상 최대 이익을 만든 건 회수 기술 하나가 아니었다. 마침 2025년 은값이 한 해에만 140% 넘게 뛰며 45년 만의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이 회사는 은값이 온스당 1달러 오를 때마다 이익이 100억 원 안팎씩 불어나는 몸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 해 기록의 절반쯤은, 회수 기술이 아니라 은값이라는 날씨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이 책이 앞서 갈라놓았던 두 힘이 처음으로 포개진다. 반도체에서 나는 값을 만드는 힘을 벽과 날씨로 나눴다. 한미반도체의 43%는 아무도 대신 못 하는 구조가 세운 벽의 마진이었고, 메모리의 48%는 호황이 부풀린 날씨의 마진이었다.
고려아연은 그 둘이 곱해진 자리다. 회수율 98.5%라는 벽이 없었다면 은값이 아무리 뛰어도 그만큼 긁어 담지 못했을 것이고, 은값이라는 날씨가 없었다면 그 벽만으로는 사상 최대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벽은 날씨를 담는 그릇이고, 좋은 날에야 그 그릇의 크기가 드러난다.
돈은 가장 좁은 고리에 남는다는 명제도 여기서 한 겹 깊어진다. 좁은 고리는 값을 스스로 부르지는 못해도, 하늘이 값을 내려 줄 때 그것을 가장 많이 받아 내는 자리다.
여담이지만, 아연이라는 금속의 쓰임을 나는 이번에 처음 제대로 찾아봤다. 철이 녹슬지 않게 입히는 도금이 가장 큰 몫이라고 한다. 가로등 기둥, 고속도로의 가드레일, 함석지붕. 그러니까 아연은 눈에 띄는 금속이 아니라, 다른 금속을 지키느라 저부터 삭아 없어지는 금속이다. 희생양극이라는, 조금 비장한 이름의 용법도 있다. 사슬의 맨 밑바닥에서 올라온 것들의 운명이 대체로 그렇다. 어디에나 있고,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제련이라는 고리는 두꺼운가
고려아연의 성적표 하나만 보면, 제련이라는 고리 자체가 두꺼운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같은 금속을 녹이고 두드리고 되살리는 이웃들을 곁에 나란히 세워 보는 것.
| 회사 | 무엇으로 사는가 | 매출 | 영업이익 | 이익률 | 순이익 |
|---|---|---|---|---|---|
| 고려아연 (제련) | 회수율 98.5%로 스무 종 금속 동시 회수 + 은값 레버리지 | 16조 5,879억 원 | 1조 2,319억 원 | 7.4% | 7,702억 원 |
| 풍산 (비철·방산) | 구리를 늘려 파는 신동에 탄피·탄약이라는 방산 소재를 얹었다 | 5조 486억 원 | 2,974억 원 | 5.9% | 1,472억 원 |
| 이구산업 (동가공) | 황동(구리와 아연을 섞은 금속)·인청동 판을 뽑는 좁은 니치 | 5,078억 원 | 244억 원 | 4.8% | 109억 원 |
| 대창 (동가공) | 황동봉을 뽑아 파는 가공업, 사슬 위에 얇게 얹혀 있다 | 1조 4,702억 원 | 515억 원 | 3.5% | 33억 원 |
| 서원 (동가공) | 황동봉·판을 뽑는 동가공, 값은 구리 시세가 정한다 | 1조 7,136억 원 | 533억 원 | 3.1% | -3천만 원 |
| 대양금속 (스테인리스) | 스테인리스 냉연·가공, 니켈·철 시세 위에 얇게 얹힌다 | 2,235억 원 | 56억 원 | 2.5% | 94억 원 |
| 남선알미늄 (알루미늄) | 알루미늄 압출·창호, 시황에 눌린 범용 가공 | 2,589억 원 | -33억 원 | -1.3% | 36억 원 |
| 영풍 (제련) | 석포 아연제련 + 고려아연 지분을 쥔 대주주, 본업 제련은 적자 | 2조 9,090억 원 | -2,597억 원 | -8.9% | 309억 원 |
| 성일하이텍 (재활용) | 폐배터리를 잘게 부순 검은 가루에서 리튬·니켈·코발트를 되살리는 도시광산 | 1,946억 원 | -545억 원 | -28.0% | -805억 원 |
※ FY2025 연결 기준(이구산업은 별도). 이익률은 영업이익률, 순이익은 지배·비지배 합산 당기순이익. 비상장사 LS MnM은 표에서 제외했다.
표를 훑으면 앞의 의심이 조금 풀린다. 제련이라는 고리가 두꺼운 게 아니었다. 두꺼운 건 고려아연 한 회사였다.
같은 아연 제련을 하는 영풍은 같은 해에 2,597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경영권을 둘러싼 오랜 다툼과 석포제련소의 환경 규제가 겹친 탓인데, 그런데도 장부 맨 끝의 순이익이 309억 원 흑자로 찍힌 건 본업이 아니라 손에 쥔 고려아연 지분의 평가이익 덕이다. 팔지 않아도 값이 오른 만큼 장부에 잡히는 이익이다. 제련이라는 같은 고리에 서 있어도, 회수 기술과 세계 최대의 규모가 없으면 돈은 이렇게 새어 나간다.
구리를 다루는 회사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풍산은 5.9%로 그나마 두꺼운데, 이건 구리를 늘려 파는 신동 덕이라기보다 거기에 얹은 방산, 그러니까 탄피와 탄약이라는 다른 다리 덕이 크다. 순수하게 구리를 사서 봉과 판으로 얇게 얹어 파는 대창과 이구산업과 서원은 3~5%에 그친다. 이 얇음은 뒤에서 볼 상사들의 얇음과 사실 형제다. 값을 스스로 부르지 못하고 구리 시세 위를 미끄러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에 장부가 공개되지 않는 회사가 하나 더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구리를 제련하는 LS MnM이다. 상장을 하지 않아 숫자는 접어 두더라도, 전기로 정제한 순도 높은 구리를 뽑으며 그 안의 금과 은을 함께 회수한다는 점에서 고려아연과 같은 결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성일하이텍의 28% 적자는, 도시광산이라는 근사한 이름이 아직 돈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조용히 알려 준다. 리튬값이 바닥을 친 해에는, 쓰레기에서 금속을 캐는 일도 밑지는 장사가 된다.
그러니 돈은 좁은 고리에 남는다는 이 책의 명제는, 고리를 회사 단위까지 좁히면 한 겹 더 또렷해진다. 돈이 남는 건 제련이라는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남이 못 하는 일을 하는 한 회사다. 고려아연이 쥔 것은 아연이라는 금속이 아니라, 그 금속에서 스무 종을 긁어내는 회수율과 세계 최대라는 규모, 그 둘이 만든 좁은 자리였다.
우리 발밑의 광물
그런데 잠깐. 정작 우리 땅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답은 조금 쓸쓸하다. 한국의 광산 이야기는 이제 두 단어로 요약된다. 폐광, 그리고 석회석.
석탄부터. 2023년 화순, 2024년 장성, 그리고 2025년 6월 도계. 대한석탄공사의 마지막 탄광들이 차례로 문을 닫으며 한 시대가 통째로 끝났다. 이제 나라 전체에 남은 탄광은 민영 한 곳뿐이다.
이 책을 처음부터 읽은 독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첫 번째 벽, 정선의 강원랜드가 바로 그 폐광의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석탄이 죽은 자리에 법이 카지노라는 벽을 세워 줬고, 우리는 그 벽에서 이 긴 여행을 시작했다. 사슬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와서야, 첫 장의 배경이 비로소 완성되는 셈이다.
석탄이 떠난 뒤, 국내 광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석회석이다. 강원과 충북의 산을 깎아 내는 이 흰 돌은, 앞서 본 시멘트 회사들의 그 잿빛 가루가 된다. 시멘트 공장들이 하필 강원도에 모여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금속은 거의 전부 수입하고, 돌을 캐는 나라. 그것이 우리 발밑의 현주소다.
그런데 최근, 이 쓸쓸한 지도에 뜻밖의 불이 하나 켜졌다. 강원 영월의 상동광산, 한때 세계적 텅스텐 광산이었다가 32년간 잠들어 있던 곳이 다시 문을 연 것이다. 깨운 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 자본이었고, 이유는 중국의 텅스텐 수출 봉쇄였다. 죽은 광산까지 되살리는 시대라는 뜻이다. 누가, 왜 되살리는가. 그 답이 이 장의 다음 이야기다.
※ 상동광산을 되살린 알몬티대한중석은 캐나다·호주 등에 상장한 알몬티인더스트리스의 자회사다. 국내 상장사가 아니어서, 비상장 LS MnM과 같은 이유로 앞의 실적표에는 넣지 않았다.
국가가 고리를 쥐는 곳
이 맨 밑바닥에서는, 값을 정하는 손이 하나 더 있다. 국가다.
중국은 2023년부터 갈륨과 게르마늄, 흑연, 안티모니, 텅스텐, 희토류를 차례로 수출통제 목록에 올렸다. 미국은 구리에 관세를 매겼다 풀었다 하며 하루 만에 시세를 20%씩 출렁이게 만들었다. 한국의 핵심 광물 수입은 품목에 따라 80~90%가 중국에 기대어 있다. 배터리 사슬에서 리튬이 그랬고 석유화학에서 셰일이 그랬듯, 사슬의 맨 밑 고리는 이제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쥐고 흔든다.
특히 아픈 곳은 희토류다. 원광을 캐는 일보다, 그것을 금속으로 정제하고 자석으로 배합하는 기술이 훨씬 어렵다. 캐낸 금속을 더 순수하게 다듬는 일이다. 그 정제 고리를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는데, 한국에는 그 고리 자체가 거의 없다. 전기차와 로봇의 모터에 들어가는 영구자석은 열에 아홉이 중국에서 온다.
캐는 자리가 아니라 정제하고 배합하는 자리. 앞선 사슬들에서 돈이 남던 바로 그 좁은 고리를, 이 바닥에서도 중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요즘 한국이 매달리는 것이 제2의 광산이다. 땅에서 못 캐면, 이미 쓰고 버린 것에서 캔다. 폐배터리에서 리튬과 니켈을, 폐영구자석에서 희토류를 뽑아내는 재활용이다. 고려아연은 폐영구자석에서 희토류를 되살리는 합작을,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국에서 희토류를 분리·정제하는 합작을 시작했다. 앞서 본 회수율 98.5%의 기술이, 이제 광석을 넘어 도시의 쓰레기더미로 향하는 셈이다. 캐낼 땅이 없는 나라의, 조금 절박하고 조금 영리한 답이다.
정부도 2026년 초 희토류를 포함한 핵심 광물 대책을 그해의 1호 정책으로 내놓으며 공급망 펀드를 꾸렸다. 국가가 값을 쥐고 흔드는 시대에는, 국가가 직접 판돈을 대는 것 말고 달리 길이 없다.
그리고 그 국면에서 고려아연의 위상이 달라졌다. 이 회사는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서방 세계의 몇 안 되는 탈중국 공급자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참여하는 합작으로 테네시에 대형 제련소를 짓는 계획까지 진행 중이고, 그 과정에서 미국 쪽이 이 회사 지분의 10%가량을 쥐게 됐다. 몇 년째 이어지는 경영권 분쟁의 저울추가, 이제 태평양 건너의 손에 얹혀 있는 셈이다. 광물의 시대에는, 제련소 하나가 외교의 말이 된다.
기술이 있어도, 광물이 없으면
중국이 광물의 값을 정한다는 건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하다. 한국이 반도체와 배터리에 쓰는 핵심광물의 상당수가 여전히 중국 한 나라에 매여 있다. 흑연은 71%, 텅스텐은 약 70%가 중국산이고, 배터리와 반도체 소재로 좁히면 특정 품목의 중국 의존도는 90%를 넘는다.
반도체를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고 배터리를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만드는 나라가, 정작 그 안에 들어가는 광물의 목줄은 남의 손에 쥐여 있다. 앞선 사슬들에서 되풀이된 그 구조가, 여기 맨 밑바닥에서 가장 벌거벗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광물이 안 들어오면 라인은 멈춘다.
중국은 그 목줄을 실제로 당겨 보였다. 2024년 12월, 미국이 반도체 장비 수출을 막자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 안티모니의 대미 수출을 아예 금지했다. 반도체와 야간투시경과 무기에 들어가는 금속들이다. 그리고 통제의 손길은 2026년 들어 태양광 장비와 배터리 소재로까지 번졌다. 광물은 이제 물건이 아니라 외교의 지렛대다.
한국이라고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공급처를 중국 밖으로 넓히고, 광산 지분을 미리 사 두고, 미국·호주 같은 동맹과 묶는 다변화를 밀어붙였다. 성과가 아예 없진 않아서, 한때 중국에 절대적으로 기대던 갈륨은 중국산 비중이 2025년 26%까지 내려왔고 게르마늄도 15%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흑연처럼 여전히 70%대에 붙박인 품목이 훨씬 많다. 다변화란 몇 해에 걸쳐 광산 하나, 계약 하나씩 겨우 떼어 내는 더딘 일이라, 목줄을 당기는 쪽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이 사슬의 결론이 그래서 조금 서늘하다. 값을 못 부르는 자리에 섰다는 건, 남이 마음먹으면 아예 만들 수조차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값을 못 부르는 자의 오래된 기술
이 바닥에는 또 다른 부류의 회사들이 있다. 광물과 곡물과 에너지를 사서 나르고 파는 상사들이다. 이들의 장부는 값을 스스로 부를 수 있는가라는 이 책의 질문에 가장 정직한 답을 준다.
| 상사 (FY2025) | 무엇으로 사는가 | 매출 | 영업이익 | 이익률 | 순이익 |
|---|---|---|---|---|---|
| 포스코인터내셔널 | 미얀마 가스전, 한 해 이익 3분의 1이 가스 한 곳에서 | 32조 3,736억 원 | 1조 1,653억 원 | 3.6% | 6,368억 원 |
| 현대코퍼레이션 | 철강·화학·부품 트레이딩, 값은 시황이 쥔다 | 7조 5,543억 원 | 1,401억 원 | 1.9% | 868억 원 |
| LX인터내셔널 | 자원 트레이딩 + 인니 니켈광 지분, 값은 석탄시황이 쥔다 | 16조 7,063억 원 | 2,922억 원 | 1.7% | 1,583억 원 |
| GS글로벌 | 철강·석유화학 트레이딩과 물류, 얇은 회전 | 4조 1,093억 원 | 523억 원 | 1.3% | 139억 원 |
※ FY2025 연결 기준. LX인터내셔널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0.3% 줄었고, 포스코인터내셔널은 4.3% 늘었다.
이 표에 상사업의 본질이 다 있다. 매출은 어마어마한데, 트레이딩 자체의 이익률은 1~2%다. 100원어치를 움직여 1원 남짓을 남긴다. 그리고 석탄값이 떨어지자 LX인터내셔널의 한 해 영업이익은 40%가 증발했다. 시황이 값을 정하고, 상사는 그 위를 얇게 미끄러져 다닐 뿐이다.
반대로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사상 최대 이익을 낸 비결도 트레이딩이 아니다. 한 해 이익 1조 원 중 3분의 1이 미얀마의 가스전 하나에서 나온다. 옛 대우 상사맨들이 남긴 유산이다. LX는 인도네시아의 니켈 광산을 사들였다. 값을 못 부르는 자는, 결국 값을 부르는 고리의 지분을 사는 것으로 답한다. 상사가 상사이기를 조금씩 그만두는 중이라고 해도 좋겠다.
상사는 아직 필요한가
그러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 이 상사라는 회사들이 지금도 필요한가.
솔직히 무역 중개상으로서는 갈수록 그렇지 않다. 1970년대엔 삼성전자도 현대차도 해외에 물건을 팔려면 상사의 손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 회사들은 자기 이름으로 세계 어디든 직접 판다. 인터넷은 바이어와 셀러를 곧장 잇는다. 남의 물건을 대신 팔아 주고 수수료를 떼던 자리는, 이 편이 내내 말한 그 넓고 값싼 고리다.
그런데도 이들이 아직 살아 있는 건, 무역상이기를 그만두고 다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원의 지주다.
값이 안 나오던 시절에도 이들은 남미와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의 광산과 가스전 지분을 조금씩 사 모았다. 그때는 돈 먹는 하마처럼 보였다. 그런데 배터리의 시대가 오자, 니켈과 리튬과 코발트를 캐는 그 광산들이 갑자기 K-배터리의 목숨줄이 됐다. 남의 물건을 나르던 회사가, 돈이 남는 고리의 주인이 된 것이다.
여기에 하나가 더 얹혔다. 안보다. 중국이 희토류와 흑연을 무기로 쓰는 시대에, 개별 제조사가 혼자 아프리카 오지의 광산을 뚫고 그 위험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그 일을 대신 해 온 것이 상사다. 무역 중개가 아니라 자원 확보와 공급망 다변화의 최전선, 그것이 오늘날 상사가 존재하는 이유다. 상사는 필요 없어진 게 아니라, 필요의 종류가 바뀌었다.
그렇다면 광물 한 톨 제대로 나지 않는 이 나라의 원자재 기업들이 나아갈 길도 분명해진다. 셋뿐이다.
첫째, 고려아연처럼 아무도 못 따라오는 회수 기술과 규모로 좁은 고리를 쥐는 것. 둘째, 성일하이텍처럼 땅에 광물이 없으니 폐배터리라는 쓰레기에서 금속을 되캐는 도시광산으로 가는 것. 셋째, 상사처럼 돈이 남는 광산의 지분을 사서 그 고리의 주인이 되는 것.
셋 다 결국 같은 말이다. 캐는 자리가 아니라, 남이 대신할 수 없는 자리로 올라서야 한다는 것. 땅이 주지 않은 것을, 기술과 자본과 지분으로 대신 쥐는 수밖에 없다.
78억과 370억
이 두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건, 회사가 아니라 사람 단위로 쪼갠 숫자다.
| 회사 | 직원수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 | 1인당 매출 | 1인당 영업이익 |
|---|---|---|---|---|---|
| 고려아연 (제련) | 약 2,120명 | 약 1억 1,100만 원 | 12.3년 | 약 78억 원 | 약 5.8억 원 |
| 포스코인터내셔널 (상사) | 약 1,930명 | 약 1억 4,000만 원 | 13.1년 | 약 170억 원 | 약 6.0억 원 |
| LX인터내셔널 (상사) | 약 450명 | 1억 원 안팎 | 8.6년 | 약 370억 원 | 약 6.5억 원 |
| 현대코퍼레이션 (상사) | 약 273명 | 약 1억 1,700만 원 | 9.9년 | 약 277억 원 | 약 5.1억 원 |
| 서원 (동가공) | 약 108명 | 약 6,300만 원 | 11.8년 | 약 159억 원 | 약 4.9억 원 |
| GS글로벌 (상사) | 약 271명 | 약 1억 500만 원 | 10.6년 | 약 152억 원 | 약 1.9억 원 |
| 대창 (동가공) | 약 335명 | 약 6,600만 원 | 17.0년 | 약 44억 원 | 약 1.5억 원 |
| 이구산업 (동가공) | 약 240명 | 약 6,900만 원 | 9.0년 | 약 21억 원 | 약 1.0억 원 |
| 풍산 (비철·방산) | 약 3,750명 | 약 9,400만 원 | 14.1년 | 약 13억 원 | 약 0.8억 원 |
| 대양금속 (스테인리스) | 약 235명 | 약 6,400만 원 | 6.0년 | 약 9.5억 원 | 약 2,400만 원 |
| 남선알미늄 (알루미늄) | 약 507명 | 약 7,000만 원 | 13.6년 | 약 5.1억 원 | 약 -600만 원 |
| 성일하이텍 (재활용) | 약 330명 | 약 6,000만 원 | 4.7년 | 약 5.9억 원 | 약 -1.6억 원 |
| 영풍 (제련) | 약 780명 | 약 6,400만 원 | 9.7년 | 약 37억 원 | 약 -3.3억 원 |
※ 1인당 수치는 연결 실적을 본사 인원으로 나눈 어림값이다. 1인당 매출이 유독 큰 회사는 연결 매출에 해외·자회사가 포함되거나, 상사·범용처럼 회전이 빠른 사업이 국내 인원과 섞인 것이라 실제 인력의 몫과는 층위가 다르다.
이 표를 잠시 들여다보면 이상한 것이 보인다.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이익이 6억 원 안팎으로 엇비슷하게 모이는 회사가 셋 있다. 고려아연과 두 상사다. 그런데 그 6억 원을 만들기 위해 굴리는 돈이 다르다.
제련소의 한 사람은 78억 원을 다뤄 그만큼을 남기고, 상사의 한 사람은 370억 원을 굴려야 같은 몫을 남긴다. 다섯 배의 물량을, 다섯 배로 얇은 마진으로.
이것이 상사업의 본질이다. 벽이 없는 자는 물량과 정보와 신용으로, 벽이 있는 자와 같은 결과를 짜내야 한다. 그리고 LX의 이익이 한 해 만에 40% 증발했듯, 그 곡예는 시황이 흔들리면 함께 흔들린다. 제련소의 마진을 지켜 주는 것이 회수율 98.5%라는 기술의 벽이라면, 상사원의 마진을 지켜 주는 건 오직 그 자신의 균형 감각뿐이다.
표에 함께 세운 나머지 회사들은 그 6억 원 선에 닿지 못한다. 구리를 얇게 가공하는 대창과 이구산업은 한 사람이 1억 원 안팎을 남기고, 본업이 적자인 영풍과 성일하이텍의 한 칸은 마이너스로 내려앉는다. 같은 사슬 위에 서 있어도, 한 사람이 남기는 몫은 그가 선 고리가 얼마나 좁은지를 그대로 되비친다.
그런데도 이 표의 사람들은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6억 원을 남기는 셋은 연봉이 1억 원을 넘나들고 나머지는 6천만 원 언저리지만, 근속으로 치면 오히려 황동봉을 뽑는 대창이 17년, 탄피를 찍는 풍산이 14년으로 더 길다.
특히 한 명이 370억 원을 굴리는 LX의 사무실을 떠올려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벽 없이 세계의 시황 위를 맨몸으로 미끄러지는 일이, 정작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꽤 안온한 직장이라는 것. 반세기 동안 적자를 모르는 온산의 제련소 곁에서도, 수백억 원을 굴리는 여의도식 트레이딩 데스크에서도, 사람들은 오래 머문다. 맨 밑바닥의 벽도, 벽 없는 곡예도, 결국 시간과 사람으로 지탱된다.
이로써 사슬의 밑바닥까지 다 내려왔다. 돈이 흩어지는 사슬과 남는 사슬, 상류로 새는 사슬과 국가가 쥔 사슬을 차례로 봤다. 내려와서 알게 된 것은, 우리 발밑이 생각보다 비어 있다는 사실이다. 폐광과 석회석의 나라.
나는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다시 만지작거린다. 이 안의 금속 가운데 우리 땅에서 나온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쓸쓸해할 일인지, 아니면 그저 지리의 문제일 뿐인지, 나는 아직 판단을 미루고 있다.
남은 질문은 하나다. 그렇다면 사슬의 고리를 모조리 손에 쥔 자는 어떻게 되는가. 돈이 남는 자리를 다 가졌으니 가장 부유해야 마땅한데, 현실은 그 반대인 곳이 있다. 마지막 여행은, 제작과 배급과 상영과 방송을 전부 쥐고도 무너진 어느 그룹의 이야기다. 다음 여행은, 미디어로 향한다.